[이홍석의 시사칼럼 3] 정중한 용기, 멋있는 용기

어제는 내일을 위해 존재한다


우리나라를 휘감아 놓던 사건이 정리되어가고 있다. 3년 동안 가슴을 졸이게 했던 세월호 사건도 인양되어 해결될 기미도 보이고 박 대통령도 탄핵에서 그치지 않고 조사를 받아 구속까지 강력한 대응을 펼쳤다. 그 누구도 한국전쟁에서 폐허가 되었던 나라가 급속도로 성장해서 스스로 민주주의를 만들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스스로 행동하여 해결해낸다. 이런 면에서 대한민국의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왜 대단한 건지 어떻게 대단할 수 있었던 건지.


1950년대에 미국에서는 버스 보이콧 운동이 일어난다. 그 중심에는 로자 파크스가 있다고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전에 클로뎃 콜빈이라는 한 학생이 똑같은 행동을 했다. 그녀는 학생이었지만 사회에 대담하게 맞섰고 결국엔 법정에까지 서서 결과를 이뤄냈다. <열다섯 살의 용기>라는 책에서는 이 이야기를 설명해 주면서 이 소녀가 그렇게 큰일을 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용기’라고 설명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클로뎃이 만약 경찰관이 주는 처벌이 두려워 가만히 있었다면 절대 세상은 바뀔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당시 상황과 많이 다르기는 하다. 경찰관이 마구잡이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며 차별이 심하지도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비폭력적으로 표현할 줄 안다. 촛불집회를 하면서 한 번의 폭력사태도 일어나지 않았고 시위가 아닌 정치 풍자나 글로 자기 생각을 표현한다. 이런 행동이 가능했던 이유, ‘용기’이다. 클로뎃처럼 불의에 맞서는 용기가 아닌 비폭력적으로 자기 생각을 말하는 정중한 용기이다. 때리지 않고 분위기로 압도하는 멋있는 용기이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우리가 대단하다고 아는 것에서만 끝나면 안 된다. 왜 대단한 건지 어떻게 대단할 수 있었던 건지 알아야지만 다음번 혹시 사회의 불의가 일어날 때 ‘내가 나서야 할 때이다’ 하는 동기를 가지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내일은 어제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어제는 내일을 위해 존재한다’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제 정중한 용기를 한번 보여주었다면 내일은 분명 세상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정중한 용기를 가진 자이다. 그 정중한 용기를 행동으로 자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자랑이 진정한 사회라는 결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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