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재의 법학칼럼1] 선거권에서 찾은 정치 참여 부진의 원인

‘헌법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중 제24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

‘헌법 제4장 정부 중 제67조 1항: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


‘선거권’은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을 선발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주어진 보편화된 참정권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계속 이 권리를 통해 정권에 참여하여 대한민국을 유지해왔다. 참정권의 대표적인 사례인 선거권이 위에 제시한 헌법의 정신에 따라 ‘국가의 이미지’ 형성에 한껏 이바지했다.


그러나 병신년(丙申年)의 막바지와 정유년(丁酉年)의 초부터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을 살펴보면, 사실 누구라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을 것이다. 대통령 직무수행체제에서 밝혀진 다수의 부패한 형상은 역대 최고의 정치 스캔들이었고, 그 어디에서도 선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말 그대로 ‘새 역사’인 셈. 


이 상황에 이르러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형성되어왔던 ‘불신’을 폭발시켰다. 불신의 출발점은 ‘정치권의 비리’였지만, 그 양상은 ‘선거권 연령대 인하’,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 각양각색의 분야를 바로잡기 위한 행동으로 확대되어갔다. 그리고 지금 가장 떠오르는 ‘선거권 연령대 인하’, 이 점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선거권의 확대가 정치에는 얼마나 큰 여파를 끼칠까?’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아닌 물질 만능주의에 뒤덮인 ‘왕국의 부활’로 그 막장 역사를 드러내면서, 대선에 관심이 쏠렸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목된 키워드(Key Word)는 다름 아닌 선거권이었다. 선거권은 헌법 제24조에 명시된 국민의 권리이다. 이를 ‘공직선거법’으로 확대하여 공고히 했었고, 지금은 이 상세한 내용은 ‘공직선거법 제2장 선거권과 피선거권 중 제15조(선거권) 1항’에 명시되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세 이상의 국민은 대통령 및 국회의원의 선거권이 있다. 다만, 지역구 국회의원의 선거권은 19세 이상의 국민으로서 제37조 제1항에 따른 선거인명부작성 기준일 현재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에 한하여 인정된다.”


지금 국회에서는 선거권 인하(만 18세)를 위해 청소년 대토론회(18일)가 열리는 등의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예전과 달리 정치에 높은 관심을 보이며, 정치 행태를 비판하는 청소년들이 많아지면서 이를 참정권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필자는 선거권의 확대가 ‘정치권’에 큰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말하자면, 선거권은 ‘공직자’를 뽑는 데에서만 견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선거권이 공직자를 선출하는 데에 있어서 큰 영향을 발휘하는 것과 더불어 그 중요성과 소중함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선거권을 확대하기 위해 미국, 영국, 프랑스와 같은 외국에서 ‘프랑스 혁명’, ‘차티스트 운동’ 등의 시민운동이 일어났었다는 외국의 역사와 ‘공직선거법 제1장 총칙 중 제6조 3항: 공무원·학생 또는 다른 사람에게 고용된 자가 선거인명부를 열람하거나 투표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보장되어야 하며, 이를 휴무 또는 휴업으로 보지 아니한다.’를 위해 전태일 노동자님께서 희생하셨다는 점, 그리고 투표의 편의를 위해 공휴일 지정 및 온라인 선거 확대 등의 노력이 이를 입증해준다.


그런데도 필자가 선거권의 연령대 확대가 정치계에 절대적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 당시’만 지나면 다 끝난 것으로 아니까.


대선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 보여주기 식의 ‘민심 챙기기’가 성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심은 국민이 잘 살고, 행복해지게 하기 위해서는 꼭 챙겨야 한다. 당연히 국민의 삶을 뼛속까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정작 정치인들은 언론의 힘만을 이용하여 “~에 가서 국민의 삶을 공유했다.” 식의 기사를 내보내기에만 열중한다. 진심으로 국민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대선에서 어떻게든 고지를 점령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셈이다.


‘선거 외에 참정권은 왜 실현되지 않는가?’ & ‘선거는 고도의 전략이다!’


분명 우리는 ‘공직자를 뽑고 나면, 그 이후로 시민 단체를 포함한 여러 방법으로 정치계를 견제해야 한다.’고 사회 시간에 배웠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일상에 휩쓸리고 지쳐 이를 행사하지도 못하고 있으며, 설령 시간이 있더라도 이미 에너지를 많이 빼앗긴 탓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참정권을 실현하기 어렵다.


선거권에 비중을 둔 것도 하나의 고도화된 전략이다. 최근 온라인 투표가 신설되면서 이젠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투표할 수 있다. 그리고 정부는 ‘유권자의 날’이라고 하며 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 당시에 유행했었던 연예인 설현(AOA)을 모델로 하여 공익 광고를 내보내기까지 했다. 게다가 이를 위해 선거일을 공휴일로 지정하기까지 했고, 이를 휴무·휴업으로 인정하지 않기까지 했다.


선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민이 이를 활용할 수 있게 지침을 정부에서 만들어준 것이다. 물론 이것 자체가 잘한 것이기는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선거권’에 정신을 쏠리게 한 것이다. “선거에만 참여해도 정치 견제에 이바지하는 것이다.”라고 선전을 하면서 투표를 독려했다. 이 말 자체에서 정부의 속셈은 드러난다. 저 말을 좀 뒤집어서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선거에만 참여해도 견제에 이바지하니까 그 외의 것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라는 뜻이다. 얼마나 전략적인가! 선거권을 강조하여 시선을 쏠리게 하고, 그 외의 경우에는 시민들을 다시 바쁜 일상 속에 던져버림으로써 견제의 위력을 약화하는 모습이! 


그리고 이것 말고도 공휴일로 선거일을 지정하다 보니 그 날을 휴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날을 통해 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들도 많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투표는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린다. 이렇게 정부는 물리적인 압력을 가하지 않고도 선거권을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한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으로 보이니 더 전략적인 셈이다.


‘필자의 생각’


애당초에 ‘공직선거법’, ‘헌법 제24조’ 등이 제정된 이유도 국민의 참정을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최근 현황은 어떤가? 대부분의 국민은 법령으로서, 정책으로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요구해 놓고는 정부가 대책을 내놓으면 그걸로 만족하기만 한다. 비판은 볼 수 없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가 되어 그저 정부에 그대로 따를 뿐이다. 그러니 어떻게 제대로 된 견제가 활성화되겠는가?


선거권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정치 참여에 대한 인식이 먼저 활성화되어야 한다. 단순히 일시적인 유권자의 날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정책을 시행하기에 앞서, 의무적으로 토론회를 개최할 수 있게 법령 제정이 필요하다고도 본다. 정치 참여의 기회가 확장되려면, 단순히 투표에서만 끝나서는 안 되니까.




칼럼소개 : 선거권 연령 인하라는 단어가 언론에서 많이 다뤄지고 있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면서 선거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대두한 것이다. 그러나 선거가 정치 참여의 전부일까? 이 글에서는 단순히 선거라는 것만으로 정치 참여에 이바지한다는 생각 자체를 비판합니다. 그리고 선거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진정한 의미를 서술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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