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빈의 독서 칼럼] 홀로코스트의 아픔, 마우스

아트슈피겔만의 마우스

그래픽 노블로서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아트 슈피겔만의 <마우스>는 홀로코스트라는 무거운 주제를 "하급 문화"로 간주하는 팝 문화 매체로 풀어나간다. 이 책은 두 개의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묶인 작품으로 하나는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이 나치 정권하에서 직접 보고 겪은 나치의 박해와 인간 절멸의 순간들을 들려주는 이야기이며, 두 번째는 극한의 상황을 겪은 아버지와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 아트 슈피겔만이 생활양식과 가치관에 대해 갈등하는 일상을 담고 있다. 이러한 양식을 통해 슈피겔만은 홀로코스트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동시에 작가는 과거의 무게가 현재의 삶을 압도하며 우울함과 고뇌 사이를 오가는 홀로코스트 피해자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그린다. <마우스>에서는 억압 관계가 직관적으로 나타난다. 유대인들은 쥐, 나치들은 고양이로 단순하게 구체화해 상징성은 억압 관계를 더 부각하며 <마우스>만의 특별한 특징이 만들어진다. 단순히 홀로코스트를 나치의 유대인에 대한 만행, 선입견으로만 한정시키지 않고 인간성에 대해서 끝없은 의구심을 품게 하는 소설이다. (소설 <마우스> 참고)

 

 

<마우스>라는 책은 수업 시간에 “제도화된 폭력”이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게 되면서 처음 접해보게 되었다. 아트 슈피겔만은 역사적인 소재를 아버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통해 그래픽 노블로 형상화하는 작가이다. 작가는 민감하고 독자들이 어렵게 느낄 법한 역사적 주제를 그림과 함께 풀어내어 쉬우면서도 통찰력 있는 사회를 비판한다. <쥐>에서 블라덱은 과거에서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나치들을 피해 계속해서 숨고 피해다는 모습을 통해 사회와 개인의 갈등을 그린다. 홀로코스트라는 사회는 유대인을 적대시하며 폭력과 주입을  주변 사람들도 이들을 멀리하고 차별하게 했다. 또한 현재에서도 홀로코스트의 영향으로 인해 하잘것없는 물건 하나, 동전 한 푼에도 병적으로 집착하며 수십년이 지났음에도 과거에 묶여 살아가며 사회와 갈등하는 블라덱의 모습을 통해 이는 확장된다.

 

위와 같은 사회와 개인 간의 갈등은 개인과 개인의 갈등을 초래하기도 한다. 극한의 상황을 겪은 블라덱은 폭력적인 사회 제도가 남긴 잔해,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가치관과 생활양식으로 인해 아들 아티와 충돌한다. 이렇게 홀로코스트라는 참혹한 역사적 사실로 인해 지속적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피해자를 대표하는 블라덱과 이를 직접 겪지 못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젊은이를 대표하는 아티는 서로 다른 가치관을 소유하고 있어 작품 전반에 걸쳐 대립 구도를 형성한다. 이러한 두 세대의 대립을 통해서 작가는 홀로코스트라는 참혹한 사건이 피해자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 동시에 세대 간의 단절을 불러일으키며 갈등을 초래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세대 갈등은 한 흑인이 히치하이크를 시도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아티와 그의 아내 프랑소와즈는 손을 흔드는 흑인에게 호의를 베풀지만 블라덱은 그들은 불편하게만 바라보며 흑인이 알아듣지 못하게 폴란드어로 “검둥이”라고 욕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역설적인 모습을 보고 인물들은 분노하지만 “검둥이는 유대인과 비교도 할 수 없다”도 블라덱은 되받아치며 두 세대 간의 갈등을 보여준다. 이 차별적 시선은 블라덱이 사회와 갈등하며 겪었던 역사적 경험 속에서 터득한 지극히 당연한 생활 방식이다. 궁극적으로 작가는 두 갈등을 그려내어 개인이 폭력적인 사회 환경과 빚은 갈등이 개인의 행동과 사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그로 인해 수십 년 전의 폭력이 현대에서까지 세대 간의 갈등을 야기한다는 점을 고발한다. 

 

이처럼 작품 <마우스>는 제도화된 폭력 속에서 탄생하게 된 홀로코스트의 아픔에 대하여 실제 인물의 이야기의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또한 중심 소재와는 상반되는 만화의 구조로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며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역사적인 사건인만큼, 관심 갖고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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