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솔기의 언어 칼럼] 언어에도 계급이 존재하나요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어제 영드 (일명 '영국 드라마')를 봤는데, 남자 주인공 발음이 너무 멋있더라. 나도 영국발음 하고 싶어!' 어릴 적 언니와 함께 유명한 영국 드라마인 '셜록 홈스' 시리즈를 보며 내가 하곤 했던 말이다.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미국식 영어와 발음으로 배워왔지만, 가끔 미디어에서 접하는 영국 발음은 정말 멋있게 느껴졌고,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많은 시수의 외국어 수업을 들으며 영국 발음에 대한 동경심이 생겼다.  그래서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영국 발음은 'T'를 강조한다는 점을 살려 일부러 T 발음을 살려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 문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영국 발음은 영국식 영어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재작년 유튜브 스브스뉴스 채널에서 올린 영국의 계층 간 발음차에 대한 영상은 현재 조회 수 100만을 돌파하며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이 영상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발음은 주로 영국의 소수 중상류층이 사용하는,  현재 영국 전체 인구의 3%만이 사용하는 포쉬 악센트라고 소개한다. 언어에도 계급이 존재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나에게는 당시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 이러한 영어 발음의 변이에 대해 흥미가 생겼고, 오늘은 영어를 중심으로 언어 속에 남아있는 사회문화적 요인에 관해 얘기하고자 한다.

 

 

'신사의 나라'. 우리가 흔히 영국을 부를 때 칭하는 말이다. 신사가 되기 위해선 여러 가지 조건에 부합해야 하는데, 그 조건에는 돈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기, 특정한 여성에 관해 이야기 하지 않기 등이 있고, 이미 알고 있는 농담을 들을 때에 처음 듣는 것처럼 표정을 관리하거나 상대의 말재간에 감탄하는 눈치를 보내는 것 등도 신사의 자질이라고 한다.1 이처럼 신사가 되기 위해선 여러 가지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중에서 하나가 바로 서론에서 언급되었던 '발음'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영국에는 여전히 왕실이 존재한다. 이들은 국가를 직접적으로 통치하진 않지만, 해외여행을 할 때 여권을 소지할 필요가 없거나 돌고래 등 영국 영해에 사는 몇몇 동물들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다.2  이렇게 과거에 나라를 통치했고 현재도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왕실이 존재하다 보니, 영국 사회는 자연스럽게 현재까지도 계급 간 구분이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의 발음을 통해 포쉬 악센트를 사용하지 않고 흔히 노동자 계층이 사용하는 발음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겐 사회적 차별이 가해지기도 한다.

 

이런 영국을 두고 대부분의 미국인은 '영국과 달리 우리 사회엔 계급이 존재하지 않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식 영어도 흑인영어와 백인영어에서 이미 큰 차이를 띄고 있다. 당장 인터넷에 검색해봐도 흑인들만 사용하는 슬랭들이 수두룩하다. 이 뿐만 아니라, 백인영어 내에서도 상류층과 중류층, 하류층으로 구분된다. 1972년 Labov의 뉴욕 East Side 연구에서 계층을 총 10개로 나누어 r, oh, eh, th 발음에 대해 실험했을 때도 높은 계층이 낮은 계층보다 표준발음에 가깝게 발음하고, 계층이 낮을수록 r 발음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결과가 밝혀졌다.3 영국의 대표 작가 조지 오웰의 베스트셀러 '1984'에서 빅브라더가 신어사전을 만들어 사람들을 언어를 통해 지배하려 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도 언어가 사회문화적 영향을 받아 발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언어는 기본적으로 사회의 영향을 받아 발전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짜장면'이 '자장면'과 더불어 표준어가 된 것처럼 시대에 따라 변이하는 양상을 띤다. 과거에는 재력으로만 계급을 나누어 언어가 변화했다면, 현재는 돈을 넘어서 문화적인 요인에서도 언어가 변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의 변이가 사람들을 재력과 출신으로 구분 짓고 상대적으로 낮은 계급이 높은 계급과 동일한 환경을 누릴 수 없게 만든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우리는 영국과 미국에 일개 이방인일 뿐이기 때문에 수 천 년간 뿌리를 내린 계급 간 언어사회를 한순간에 뒤집을 순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전 세계인과 소통하기 위해선 우선은 이러한 언어 속 계급구조를 이해하고, 각 계급의 사람들을 대할 때 그 계급의 언어의 특성에 맞추어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언어 속 뿌리 잡힌 차별을 뿌리 뽑는 그 날까지, 우리 모두 언어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참고 및 인용자료 출처

1.(인용 : http://dobongnoin.or.kr/nanum/33860)
2.(인용 : https://3magazine.tistory.com/103)
3.(참고: http://elearning.kocw.net/document/lec/2012/Hufs/RheeSeongHa/04.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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