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서의 독서 칼럼] 세계 시민으로서 우리의 자세

장 지글러의 '유엔을 말하다'를 읽고

이 책의 저자인 장 지글러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사회학자로, 식량 조사관으로서, 또 인권이사회 자문위원으로서 평생을 유엔에 몸담았던 사람이다. '유엔을 말하다'는 그런 그의 경험담과, 유엔의 창립 역사를 엮어 현재 유엔이 안고 있는 병폐를 기술한다. 국제 정치에서 작용하는 힘과 자본의 논리, 양극화, 정치 스파이와 암투, 감시와 공작, 전쟁의 위협 등은 세계 평화를 유지해야 할 유엔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을 저자는 담담한 어조로, 아주 자세히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흥미롭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 유엔의 민낯을 마주하며 객관적인 시각으로 유엔을 바라볼 수 있었다.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전 세계인이 고통받고 있을 때,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은 ‘국제 연합’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각 나라가 연합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고 전쟁과 같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를 막고자 하는 단체를 창설해, 자신들 세대가 겪고 있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장 지글러가 말하는 유엔의 모습을 ‘들으며’, 현재의 유엔은 루스벨트와 처칠이 기대했던 유엔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도덕적으로 무엇이 옳은지, 우리가 함께 쟁취해야 할 것이 정말로 무엇인지는 무시되는 경우가 많고, 누가 더 힘이 세고 돈이 많은가가 우선시된다.

 

물론 이와 같은 씁쓸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유엔을 좀먹는 비리들을 지적하며, 권력을 가진 소수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다수의 힘을 믿고 있다며, ‘우리가 함께’ 승리를 쟁취해야 할 것들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그 누구도 소외되거나 뒤에 남겨지지 않는 세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가’ 말이다. 나는 깊이 공감했고, 동시에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과연, 떳떳할 만큼, 세계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있을까?’ 우리가 3초에 한 명씩 사망한다는 기아 문제에 대해서, 개발도상국의 자립을 저해하는 선진국 자본가들의 펀드에 대해서, 교묘한 암투와 공작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무고한 일에 대해서 무관심한 건, 우리와 그들을 별개의 존재로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의 세계 질서에 이의를 제기하려면, 연대의 힘을 보여주려면, 가장 먼저 동일성에 대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 고통을 받는 이는 내가 아니라 화면 속 누군가라 할지라도, 우리는 마땅히 고통을 느끼고 그들과 함께 싸워 줄 의지를 갖춰야 한다고 믿는다. 저자가 비판한 그 모든 폐단은, 국제 시민사회의 결집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저자의 지적에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TV에서 국제구호단체의 광고를 볼 때마다 마음 아파했지만, 그 이상의 노력을 취한 적은 없었다. 이 책은 나에게 반성의 기회를 주었고, 나는 타인의 고통에 고개를 돌리지 않을, 그들의 권리를 위해 함께 일어설 용기를 얻게 되었다.

 

언론이 범람하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기에는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이 흘려 보내주는 정보를 그저 주워 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무엇이 옳은지 판단할 힘을 잃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유엔을 말하다'는 나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저자의 건설적인 비판이었다. 그는 유엔을 비판하는 것으로 약 350쪽 분량의 책을 채웠다. 그러나 그것은 비관이 아니라 긍정에 가깝다고 느꼈다. 그는 유엔의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나는 그 점이 매우 인상 깊었다.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은, 그저 주위의 것을 비판하고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 바꾸어야 할지에 대한 사색을 빼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사회로 나아가서, 독립적인 주체로서 정확히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무엇이 되어 무얼 하든지 간에, 교정이 필요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면, 비판만 하고 나서 입을 다무는 회의주의자가 될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사회 변화를 위해 내가 가진 능력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적극적인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가치는, 세계시민 의식을 함양하도록 돕는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시민 의식을 갖춘다는 것은 전 세계 사람들이 국제적인 철학과 감각을 가지고, 세계 일원의 권리와 의무를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계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물리적인 국경을 넘어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도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 외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국내의 일처럼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나와 무관한 일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많다. 더욱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우리 모두 세계 시민으로서 국제 사회의 문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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