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석의 독서 칼럼] 누구나 꽃이 핀다

여러분은 장애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흔히들 장애=병=아픔으로 생각하시고 장애인=아픈 사람으로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장애인의 입장에선 어떨까요? 그들이 비장애인에게 아픈 사람으로 명명되어 마치 비장애인의 도움 없이는 사회에서 못 살아가는 존재이기를 바랄까요? 솔직하게 비장애인의 입장에선 그리 큰 고민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특히 주변에 장애인 친구가 없다면 말입니다.  책 [누구나 꽃이 피었습니다]의 뒤표지를 보면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장애인은 '아픈' 사람이 아니다." 저희가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교육받은 것과 다르지 않나요? 제가 초등학교에서 장애인을 배려한다고 교육을 하며 장애인은 아픈 사람이며 저희가 반드시 배려해야 하는 상대라고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흔히 사회적 약자에 여성과 아동 그리고 '장애인'이 있다는 것에 큰 의문을 품지 않았습니다. 최근 여성과 아동의 인권이 크게 진보했습니다. 21대 총선에 청소년이 투표하기도 하고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한 노력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반면 장애인 분들의 인권은 어떨까요? 

 

 

[누구나 꽃이 피었습니다]에선 13편의 영화와 13개의 장애인 인권과 관련해 장애인인권법센터의 변호사님이 경험하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스스로 글을 쓰지 못하는 지적장애인에게 다그치며 부른 대로 자술서를 쓰게 하였으며, 야구 경기를 보러 갔지만, 장애인 전용 구역에는 비장애인들이 주차하고 주차관리원은 장애인에게 "아프면 집에나 있지"라는 말을 하는 등 아직도 장애인의 인권의 사회적 인식은 크게 발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장애인분들이 합법적으로 최저 임금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최저임금법 제 7조(최저 임금의 적용 제외)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로서 사용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은 자에 대하여는 제 6조를 적용하지 아니한다.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 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 또는 그 밖에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자 즉 장애인분들은 남들보다 느리기에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일하고 남들보다 적은 돈을 받는 셈입니다. [책  누구나 꽃은 피었습니다 ep.1 ep. 3 인용]

 

여러분들은 영화[주토피아]를 아시나요? 작 중 주인공 주디가 사건을 48시간 안에 해결해야 하지만 차량번호 조회를 하는 동물은 나무늘보였습니다. 다른 동물들 역시 붙잡고 있는 사건이지만 나오는 단서가 없어 어려워하는 사건인데 48시간의 촉박한 시간에  나무늘보의 느린 일 처리는 그녀를 애타게 했습니다. 하지만 답답해하거나 애만 태울 뿐 느린 일 처리에 화내지 않았습니다. 단지 주디가 경찰이었기 때문일까요? 아니요 다른 동물들 역시 답답해할 뿐 그들의 느린 일 처리에는 화내거나 나무늘보임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주토피아를 우리 사회와 비교해볼까요?  나무늘보를 장애인뿐만 아니라 한국어를 잘하지 못해 조금씩 멈칫멈칫하는 외국인,  조금 느린 어르신들 이런 분들을 사회에서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나요? 실제로 이런 분들과 일해본 경험이 있나요?  있다면 어떻게 대했나요? 실제로 이런 분들은 일자리 구하기가 많이 힘들 것입니다. 사회는 장애인, 어르신들을 배려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고 외국인이면 경계하는 듯 바라보니까요. [영화 주토피아 참고] 

 

장애인분들은 아픈 사람들이 아닙니다.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출발한다면 비장애인분들보다 더 앞서갈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장애인들이 원하는 배려란 그런 것일 겁니다. 동등한 시선, 동등한 위치 영화 [언터쳐블 : 1%의 우정]에서 필립은 드리스가 심한 장난을 치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데도 그를 해고하지 않고 호감을 가졌습니다. 주변에서는 왜 그를 해고하지 않냐고 물어봅니다. 그러자 필립은 이렇게 답합니다. "바로 그게 마음에 들어. 내가  장애인이라는 걸 잊고 살게 해주거든. 난 보통 사람처럼 대한다니까!"라고 말입니다. 만약 드리스가 주변 사람처럼 필립을 아픈 사람이라 생각하고 대했다면 필립이 드리스에게 호감을 느꼈을까요? 필립이 드리스에게 원한 건 자신을 장애인으로 보지 않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애인은 아픈 사람도, 시설에만, 집에서만 있어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영화 언터쳐블 1%의 우정 인용] 

 

저는 우연한 기회로 몸이 불편한 친구의 도우미를 1년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당시엔 귀찮기도 해서 크게 배려를 안 하고 간단하게 학교 설명을 해주고 이따금 도움반에 데려다주는 정도의 도움만 줬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그 친구를 더 신경 써주고 더 챙겨주었지만, 그 친구의 도우미는 1년 동안 저였습니다. 아직도 종종 보면 되게 반가워 하곤 합니다. 저는 그렇게 신경을 써주지 않았는데 왜 이리 반겨주지라는 의문이 가득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장애인 OOO이 아닌 중학생 OOO으로 봐주길 바랐고 우연히 제가 그 친구의 바람을 이루어주었다는 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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