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윤의 사회 칼럼] 내성적임이 극복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사람들과 어울려 놀기보다는 혼자만의 시간을 추구하고, 잘 나서지 않는 내성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왜 이렇게 숫기가 없어?' , '이래서 발표나 제대로 하겠어?', '친구가 없는 거니?' 따위의 말들을 듣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에 의기소침해지고, 나의 내성적인 모습을 싫어하게 되었다. 때문에 나는 이전보다 더 활발한 모습을 보여 주고, 발표처럼 나서서 하는 일도 하는 등 외향적인 측면을 기르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던 어느날, 성격이 많이 바뀐 것 같아 보기 좋다는 친구의 말에 나는 문득 내성적인 성격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왜 사회는 내성적인 성격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일까? 

 

'내성적이었던 주인공 A는 이러한 성격의 단점을 극복한 뒤 비로소 행복해졌습니다.’ 여러 청소년 문학 및 아동 문학의 소재로 사용되는 내용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내성적인 아이에게는 숫기가 없다’, ‘그래가지고 잘 살 수나 있겠니?’ 하는 말을 종종 던지곤 한다. 앞서 말한 내성적인 성격을 극복하는 내용이 아동 청소년 문학의 주요 소재로 사용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탓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성적인 성격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국립 국어원 표준 국어사전에 명시된 바로 보았을 때 내성적이라는 단어는 겉으로 드러내지 아니하고 마음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내성적인 사람이라 함은 해야 할 말을 다 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의견을 드러내는 것을 어려워하며 무리에서 크게 존재감을 나타내려 하지 않는 사람 등을 말한다.

  

단어의 뜻으로 보나 , 통념적으로 말하는 내성적인 사람의 특징으로 보나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을 바라보는 타인에게 답답함을 안겨 줄 수는 있지만 피해를 끼칠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 그런데 우리는 왜 내성적임을 혐오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들며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것일까? 필자는 이것의 이유를 예로부터 이어져 온 우리나라의 문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 송년회 , 신년회 등 모임 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의 정서 상 모임에 자주 불참하거나 크게 나서지 않고 가만히 있다 모임이 끝나면 조용히 사라지는 소위 말하는 ‘ 내성적인 사람 ’ 은 사람들 사이에서 잘 어울리지 못하고 흔히 이야기하는 사회 부적응자로 생각된다. 통념 상, 타인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결격 사유가 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내성적인 사람들이 혐오 혹은 비판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정서 특성 중 또 하나로 제시되는 오지랖과 참견 또한 내성적임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데에 한 몫 했을 것이다. 사람의 성격은 10명이 모인다면  10명이 전부 다른, 개개인의 특성이다. 내성적임 또한 그런 성격 중 하나일 뿐인데, 이를 납득하지 못하고 너는 내성적인 성격을 고쳐야 한다’, ‘어떻게 살려고 그러니등 내성적인 성격을 극복해야 한다는 조언을 가장해 너도나도 오지랖을 펼치고 참견하니 이러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내성적인 성격은 성격의 종류 중 하나이기에 장단점을 가지고 있고,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성격 또한 단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사회의 통념적 분위기는 내성적임이 극복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내성적인 성격의 어떤 한 부분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 불이익을 가져다 준다면 그 부분은 보완해야 하겠지만, 내성적인 성격 자체를 극복의 대상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