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메이커 세상만들기' 아쇼카 이혜영 대표와 인터뷰


아쇼카는 어떤 재단입니까?

아쇼카는 1981년 미국에서 설립된 글로벌 비영리 조직으로,설립 당시의 목적은 이 세상을 더 좋은 세상으로 바꾸는데 깊은 통찰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서 투자하고 연결하기 위함이었습니다그리고 그들을 사회혁신기업가(Social Entrepreneur)’라고 부르기 시작했죠현재 세계 최대의 사회혁신기업가 네트워크 조직으로써아쇼카는 급변하는 이 시대에 필요한 사회 전체의 변화를 앞당기기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과 로드맵을 제시하고 확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체인지메이커란 무엇입니까?

체인지메이커(Changemaker)는 사회혁신기업가와는 다릅니다왜냐면 누구나 체인지메이커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또 실제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체인지메이커란 자기 자신과 주변의 세상을 끊임없이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사람입니다그러기 위해서는 주변의 문제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적극적으로 솔루션을 찾고 이를 직접 행동(Do It!)으로 옮기는 일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겠죠


아쇼카는 모두가 체인지메이커(Everyone A Changemaker)' 라는 비전을 가지고 누구라도 변화의 주체로서 협력적으로 문제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 시스템과 문화를 촉진하고 있습니다.

 



이번 경기도학생교육원이 주최한 학생자치회장과정에 참석한 학생들이 체인지메이커’ 과정을 통해 자신과 친구들에게 어떤 역할을 수행하길 바랍니까?

저는 모든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이 체인지메이커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길 바라고나아가 마치 근육을 단련하듯이 학생들이 체인지메이킹을 꾸준히 실행할 수 있는 학교와 사회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특별히 이번에 학생자치회장과정에 참석한 학생들이 각자의 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역할과 책임을 가진 분들이고,이미 체인지메이킹을 하고 있거나 더 잘 하고 싶은 학생들이 여기 모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학생회장 혼자만 잘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기 보다는학교의 모든 학생들이 체인지메이커가 될 수 있는 학교 문화를 만든다면 훨씬 더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 거예요모두가 리더가 되어 더 좋은 학교나아가 더 좋은 지역사회를 만들 수 있다면 멋진 일 아닐까요.

 

어떤 계기로 NGO를 하게 되었습니까?

저는 어렸을 때 문학을 많이 좋아했어요글쓰기도 좋아하고요그랬더니 아버지께서 제가 기자나 교수가 되길 기대를 하셨습니다한국 사회에서 여자로서 자기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직업이 그 정도라고 생각하셨던 것이죠그런데 저는 교수나 기자라는 전통적인 직업 자체에 크게 끌리지 않았어요뭔가 내가 답을 직접 찾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그래서 NGO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북한인권과 난민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NGO에서 2년 정도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당시에 유엔에 가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연설도 하고해외의 탈북자 구출 작전에 참여하기도 했어요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나 기관들의 접근 방식이 여전히 좀 틀에 박혀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좋은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갑갑함이 느껴졌죠고민을 하다가 좀 더 현장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그래서 다소 위험한 일이었지만 직접 중국에 가서 탈북 여성 인신매매 문제를 파악하기 위한 심층 인터뷰도 하고 최종 보고서를 내기도 했습니다이 과정에서 결국 새로운 조직을 설립하기에 이르렀죠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새로운 솔루션을 만드는 일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20대 후반에 스스로 새로운 조직의 리더이자 CEO가 됐던 거죠.

 

그러면 아쇼카를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제가 직접 새로운 조직을 설립하고 난 후 얼마 안됐을 때 아쇼카를 알게 되었어요사실은 아쇼카가 뭔가 새롭고 혁신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 다니는 조직이잖아요고맙게도 제가 하는 일을 보고 아쇼카에서 연락을 줬어요물론 그때는 한국에 아쇼카가 활동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아쇼카 펠로우가될 수 있는 여지는 없었지요하지만 그 덕에 그때 처음 제가 소셜 앙터프러너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어요그전에 사람들이 저를 인권 활동가 아니면 인권 전문가라고 불렀어요그런데 저는 이 말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인권이 저에게 중요한 가치는 맞지만 사실 저는 인권 자체를 위해 인권 활동을 했던 게 아니라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 인권을 활용하고 싶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저에게 인권이라는 딱지를 붙인 거에요. ‘소셜 앙터프러너의 뜻을 알게 됐을 때그것이 저에게 딱 맞는 옷그러니까 제 정체성이라고 느껴서 매우 반가웠지요그리고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낸 수많은 소셜 앙터프러너들이 전 세계에 많다는 사실을 알고 큰 위로가 됐습니다그후5년간 조직을 운영하고개인 사정으로 몇 년간 한국을 떠나 일본에서 살았습니다다시 한국에 돌아와 기존의 조직을 부활시킬까 생각했는데마침 그때 아쇼카가 한국에 설립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주저 없이 아쇼카한국에서 일하기 위해 지원했습니다그리고 지난 3년 좀 넘게 저는 아쇼카 한국의 첫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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