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나의 시사 칼럼 2] 정의의 여신상의 비밀

정의의 여신상이 안대를 벗고 법전을 든 이유

외국의 정의의 여신상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질서와 계율의 상징인 테미스(Themis)의 딸로서, 오늘날의 정의의 개념에 가장 가까운 여신이다. 정의의 디케에 형평성의 개념이 추가되면서 오늘날 정의의 여신인 유스티치아(Justitia)가 탄생하였다. 오늘날 정의를 의미하는 JusticeJustitia에서 생겨났다. 외국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한 손에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쥐고 있다. 저울은 법 집행에 있어 편견이 배제된 평등을 상징한다. 법 앞에서는 모든 것이 평등해야 한다. 평등한 법 집행을 하겠다는 뜻으로 평형저울을 들고 있다. 한마디로 형평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칼은 칼은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는 뜻으로 국가의 위하력(겁을 주어 범법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상징한다.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지 않으면 따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엄격히 집행하도록 해야 한다. 정리하자면 '법의 엄격한 집행'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선악을 판별하여 벌을 주는 정의의 여신상은 대개 두 눈을 안대로 가리고 있다. 가린 눈이나 눈가리개는 사적 편견이나 차별 없이 공정하게 집행하겠다는 뜻이다. , ‘공정성을 뜻한다. 그냥 눈을 뜨고 본다면 사람을 차별하지만, 눈을 감고 사람을 판단한다면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의의 여신상 저울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우리나라의 정의의 여신상

 

우리나라의 정의의 여신상은 안대를 끼고 있지 않다. 사회에서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까지도 찾아내고 보호하겠다는 의미이다. 또한,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다법전은 말그대로 법전에 의한 법적용을 뜻한다. 법은 법전에 의해 기억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를 알아내다

 

과연 법대로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일단 법이란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만든 규칙이기 때문에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법의 사각지대는 언제나 존재하고 어떤 법규든 손해 보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다. 법이란 악용될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뜻이다. 이번 블랙리스트 재판에서 김기춘 3, 김종덕 2, 신동철과 정관주 16개월, 조윤선은 집행유예 석방으로 1심 판결이 나왔다. 작년 국정농단으로 시끄러울 때, 한 포크레인 기사는 최순실에게 격분한 나머지 대검찰청으로 돌진한 사건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안대를 벗은 우리나라는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서 있는 것은 맞나? 작가 정을병은 1974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단편소설 '육조지'를 발표한다. 그 소설에 등장하는 육조지란 이런 내용이다. "집 구석은 팔아 조지고, 죄수는 먹어 조지고, 간수는 세어 조지고, 형사는 패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진다" 즉, 힘없는 사람들은 법의 언저리에만 가도 조져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이뿐일까. 우리 사회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여전히 많은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다. 

 

대한민국 정의의 여신상이 안대를 벗고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는 것인지 그 이유를 드디어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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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