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예술의 가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최근 현대미술을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묻고 싶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술의 가치와 현대미술은 그 성격과 형태가 매우 다르다. 또 다른 여러 학문과는 다르게 예술의 특성상 예술의 범위를 판단하는 기준은 참으로 모호하기 그지없다. 나 역시도 현대미술을 관람할 때 종종 작품의 의미를 도무지 파악하기 힘들 때가 많았으며 때로는 해괴망측해보이기까지 하는 작품을 보며 이것이 과연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현대미술은 사람들이 인식하는 예술의 가치와 그 성격과 형태가 다르며 다른 학문과 다르게 예술의 범위를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하다. 이를 두고 현대미술은 예술로서 가치를 상실해 허구성이 높다고 주장하거나 기존 작품을 답습했다는 등의 비판이 있다. 그러나 이는 그저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의 부족 탓이라는 반박 역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나는 예술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며 현대미술의 예술적 가치를 확실하게 구분할 필요를 느꼈다. 먼저 현대미술은 예술이 아니라고 하는 입장에 따르면, 먼저, 현대미술은 모방만을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유명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의 작품이 한 광고
전통문화는 과거와 오늘, 더 나아가 미래를 이어주는 주요한 문화적 유산이자 한 국가의 고유한 정체성을 대변해줄 수 있는 소중한 문화이지만 오늘날 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쇠퇴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한류열풍으로 ‘한국적 문화콘텐츠물’ 개발이 덩달아 주목받게 되며 2020년부터 본격적인 신한류 ‘K-Culture’ 담론이 등장하게 되었고 ‘K-헤리티지’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즉, 바로 지금이 꺼져가는 전통문화를 되살릴 기회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통문화 소재가 현대적으로 폭넓게 재창조되기에는 수많은 한계가 존재했고, 전통문화를 계승할 방안을 찾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 되었다. 이때, 미래기술콘텐츠는 역사적 사실 및 당시 사람들의 이야기 발굴 등에 유용하게 활용되는 등 전통문화의 특수성을 존속시키며 정보화 시대 속 대중화에도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등 전통문화를 계승할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미래기술을 활용한 전통문화콘텐츠를 많이 감상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미디어 파사드,VR, AR, 프로젝션 매핑 등을활용한 디지털 실감 콘텐츠로 전시 <태평성시>와 <고구려 벽화무덤> 등을 구현해 전시하였으며 첨단 영상 기술, AI
정보기술의 발달로 우리 미디어는 전형적인 방송 콘텐츠에서 다양한 인터넷 플랫폼으로 변화하며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최소한의 행동으로 쾌락을 소비하는 일명, '스낵컬처' 문화가 점차 발전하고 있다. 어디서나 쉽고 편리하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트렌드가 쉽게 간식을 즐기는 것과 비슷해 '스낵컬처'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러한 간식 문화를 대표하는 콘텐츠로는 우리 MZ 세대가 많이 소비하는 SNS, 모바일 게임, 단편 영화, 웹 드라마, 웹툰 등이 대표적이긴 하나 소설 시장에서는 단편 소설이 인기를 끄는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이러한 문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문화의 변화는 우리에게 스마트 핑거 콘텐츠라고 불리는 문화 콘텐츠의 새로운 소비 스타일을 가져다주었다. 특히 스마트폰이라는 작고 간단한 기기의 등장으로 터치만으로도 모든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스마트 핑거' 시대가 열렸다. 스마트폰을 통한 유비쿼터스 콘텐츠 환경이 조성되면서 수시로 이용할 수 있는 스마트 핑거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됐고, 스낵 컬처는 이제 우리의 주류 미디어 문화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현재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 등 짧고 간단한 미디어 콘텐츠를 주로 찾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며 노동시장은 변화했다. 많은 일자리가 자동화되며 필요한 노동력은 줄었고 노동시장에 사람들이 설 자리는 사라져갔다. 이에 우리의 삶은 고달파졌고 뭘 하고 살아야 하는지 모를 막막한 현실을 맞이했다. 그러나 기존의 패러다임에서는 더 이상 질 좋은 일자리를 생산할 수 없다.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일자리도 변화해야 할 때이다. 우리는 스스로 ‘청년들의 일’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이렇게 노동 시장의 현실이 어려워진 것에 대해서는 지나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집착의 폐해가 컸다. 노동의 가치는 결국 '사람'이 '일'을 하면서 나타나는 가치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는 그 점을 간과하고 지나치게 효율만을 추구하였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노동하면서 사는 것을 힘들어하게 만들었고 사회에 심각한 불안과 우울을 안겼다. '노동'의 진정한 의미조차 잃어버린 지금,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의 끝자락에 도달해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양이 아니라 질을 추구하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새로운 사회를 직접 구축해 나가야 할 시간이다. 그렇다면 우린 이제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걸까? 책, <탈일자리 시대와 청년의 일>에 따르면 먼저,
아이들이 노는 것을 우리는 나무랄 수 없다. 왜냐하면 놀이라는 것이 어린아이들이 자라면서 필요한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놀이, 특히 유아기 시기의 놀이는 아이의 성장과정에 있어서 꼭 필요한 과정이다. 유아기 시기의 아이들은 대부분 유치원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다.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생활하며 유치원 친구들과 서로 노는 과정은 아주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사회성과 책임감 등이 유아기 놀이를 통해 배우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놀이의 중요성을 알고 놀이를 하나의 교육과정으로 보는 나라가 있다. 바로 핀란드이다. 핀란드는 유치원에서 글이나 기초수학 덧셈, 뺄셈 등을 배우지 않는다. 단지 놀이를 통한 교육을 중요시할 뿐 그 외는 신경 쓰지 않는다. 핀란드 부모들도 마찬가지이다. 아이가 글을 읽지 못하거나 덧셈이나 뺄셈을 못한다고 불안해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와 핀란드의 교육의 차이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치원에서 이미 한글과 덧셈, 뺄셈 심지어 구구단까지 모두 알고 초등학교에 입학하여야 다른 아이들에게 뒤처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핀란드의 교육은 조금 다르다. 핀란드에서는 놀이 후 뒷정리를 잘했는가가 더 중요하게 평가된다. 그만큼 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