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애의 사회칼럼 7] 한 여름날의 봄


주위를 둘러볼 수 있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나를 둘러싼 주위에 있는 것들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드는 것도, 또 그것을 고개 들어 바라보는 순간도 아름답다. 고개를 들지 않고 살면 우리는 아름다움을 잃게 된다. 봄도 볼 수 없고, 나뭇가지마다 초록 잎사귀가 올라오는 것도, 뛰어노는 아이들도 볼 수 없다. 고개를 들지 않으면 내가 걸어온 발자취와 길 사이의 함께 가주었던 잎사귀들, 나를 바라보고 있는 꽃들을 지나칠 수밖에 없다. 자기 자아에만 충실하고,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며, 당연한 것들에 순응하는 이는 고개를 들을 수 없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던 나를 책이 깨웠다. ‘괭이부리말 아이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인생을 그린 이 책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내가 그들을 향해 관심을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며, 당연한 것들에 질문할 때 그들을 볼 수 있다. 우리는 높은 곳으로 가려고 하고, 나에게만 집중하며, 언제나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 책은 이러한 우리의 삶을 점검하게 만든다.


그들은 암흑 같았지만 밝았다. 가난의 끝을 궁핍의 최악을 달리고 있었지만, 밝고, 순진했고, 순수했다. 그들 안에 희망이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굴레에서 그들은 어떤 희망이 있었던 걸까. 책은 말한다. “봄, 봄, 봄, 봄, 봄이 왔어요…….”


한국이 제법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고 가난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도시 변두리의 가난한 동네에서 사는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의 생활은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가난은 사람의 영혼, 육체, 관계를 아프게 한다. 사전에서는 가난을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하여 몸과 마음이 괴로운 상태에 있다.’라 정의하고 있다. 가난이란 개념은 늘 상대적인 의미로 쓰인다. 가난은 단순히 저소득을 말하는 개념이 아니라, 그 가능성이 박탈된 상황이다. 이는 자유와 완전히 반대된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권리를 가지지 못하는 ‘가난’이라는 것은 참 냉정하다.


괭이부리말 아이들 동준이, 동수 아버지는 돈을 벌어오겠다고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고, 숙자 네는 술주정꾼 아버지 때문에 친정에 갔던 어머니가 다시 돌아왔지만, 아버지가 공사판에서 처참하게 죽는다. 동수는 본드(마약)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하며, 명환이네 형제는 재개발로 집을 잃고 갈 곳을 잃는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서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신경림, 가난한 사랑 노래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 결국에는 봄이 온다. 그 봄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 가슴 속에 있다는 것다는 것은 시간을 초월한 희망이다. “봄, 봄, 봄, 봄, 봄이 왔어요....”라는 말은 우리에게 넌지시 질문한다. “봄이 가슴 속에 있으신가요?"



칼럼 소개 : 사회.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힘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더 알아가기 위해 사회란 분야의 칼럼을 쓴다. 사회는 내가 어떻게 살 것이고, 이곳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스토리다. '사회'라는 세상의 스토리를 읽으며 한쪽 눈을 뜨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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