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영의 사회 칼럼 I] 수능이 바보를 양성하는 시험인가요

수능이 전혀 쓸모가 없다고? 고등학교 3학년이 말하는 "수능"

 

유튜브에 들어가면 매번 알고리즘에 뜨는 영상이 있다. 외국인 유학생이 비판하는 한국 수능,  외국인도 못 푸는 영어 영역 등의 - 좋게 말하자면 "한국 수능은 역시 어려워" -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한국 수능은 쓸모가 없어" 식의 영상들 말이다. 영어가 모국어인 국가에서 왔다는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런 영어, 실생활에서 안 써요. 이런 거 배워봤자 시간 낭비예요." 아래에는 동조하는 댓글만 수천 가지, "맞아. 이런 식으로 배울 필요 없어." 하지만 아무래도 다들 잊고 있지 않은가. 수능은 실생활을 위한 시험이 아니다.

 

한국의 교육 제도가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교육에 과열된 학부모, 이상하리만치 커진 인터넷 강의 시장, 다양한 활동을 해 볼 기회 없이 내신과 모의고사 시험에 집중하느라 진로를 위한 시간을 쏟을 수 없는 학생들.  하지만, 한국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이해를 마냥 못 할 구조도 아니다. 일제 강점기가 끝난 후 제대로 국가를 추스를 틈도 없이 전쟁이 발발하였고, 휴전에 돌입한 이후에는 경제의 급격한 부흥과 쇠퇴를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국민은 "교육"만이 사회적 신분 상승을 위한 길이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몇십 년간 반복된 결과물이 바로 현 교육 제도이다.  비록 정상적인 형태는 아니지만,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결과물임에는 틀림없다.

 

흔히들, 한국의 교육 방식의 대체재로 '북유럽식 교육'을 말하곤 한다.  정형적인 수업 대신 토론을 하고 체험 학습을 하며 아이들에게 꿈을 좇게 하라는 주장인데, 말로만 들으면 누구든 한국의 교육보다 북유럽식 교육이 좋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국가의 교육제도든 문제가 있다. 각 국가에 최적화된 교육 방식을 차용하고 있음에도 잡음이 나오는데, 아무런 준비도 안 된 한국에 당장 '참여형 교육'을 들어오는 게 맞는 일일까?  한국의 중학교에서는 자유 학기제, 자유 학년제를 차례대로 도입하였고 고등학생을 대상으로는 자유로이 수업을 선택해 들을 수 있는 학점제를 실시하려는 예정하에 있다.  당장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효과가 미미하지만, 안정화 된 이후에는 대학 입학 전 아이들이 자신의 진로를 찾기 위한 좋은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수시 제도를 통해 갖가지 교내 활동과 대회에 참가하여 역량을 기를 기회도 있다.  항상 유튜브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아이들을 기계로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는 뜻이다. 한국의 교육은 점차 변화하고 있다, 한국의 속도와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여서 말이다.

우리는 이제 외국인이 지적하는 한국의 교육 방식에 주눅들 필요는 없다. 그런 지적을 한다는 행위 자체가 교육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수능은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의 줄임말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가기 위한 전형 중 한 가지로, 교과 성적 및 교내 활동 위주로 평가하는 수시 제도와 다르게 정시라고 불리며 수능 시험의 성적만으로 평가한다. 수능 영어가 실생활에서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말해주어라, 당연하다고. 학생의 학습 능력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인데, 어떻게 일상에서 사용되는 단어로만 출제하겠는가? 영어가 모국어임에도 불구하고 시험 문제를 풀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수능 영어가 미련함을 보여주는 지표가 아니다. 변별력이 뛰어남을 보여줌과 동시에 다른 국가와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리해서 말한다. 수능은 로봇을 키워내기 위한 시험이 아니다. 다른 국가의 교육 제도가 이상한 것도, 한국의 수능과 수시 제도가 이상한 것도 아니다. 결국 각자 자국에 맞는 방식을 채택하여 여러 차례 시도하며 문제를 없애 나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우린 주어진 환경에 맞게 만족하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면 된다.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힘내라고 외치며, 이만 이번 칼럼을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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