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빈의 독서 칼럼] 부모를 선정하는 면접, 페인트

우리가 우리의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부모가 있다. 우리에게는 가족이 있다. 우리와 흔히 '가장 가까운 존재'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우리는 가족이라고 부른다. 'Lottery of birth'라는 철학적 개념에서는 모든 사람은 자신이 어느 환경이나 상태로 태어나고 자랄지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선천적 자본, 인종, 성별 등에 대한 개인의 책임은 물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누가 내 부모로 적합할지 평가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이희영 장편소설, '페인트'는 이러한 '부모 면접'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일단 이 제목 '페인트'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는 부모 면접을 뜻하는 'Parent's interview'와 발음이 비슷해서 생성된 은어로 부모와의 면접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의 배경은 NC 센터라는 센터인데, 어렸을 때 부모한테서 버려진 아이들이 보내진 곳이다. 아이들은 이름은 각자가 태어난 월에서 따온 이름들로 지정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제누는 1월(January)에 태어났다. 또한 같은 월에 태어난 사람들을 구분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 뒤에 고유의 번호가 붙여지는데, 방금 언급한 제누의 고유 번호는 301이며 따라서 공식적으로 '제누 301'이라고 불린다.

 

이 책의 주인공인 제누 301은 부모 면접에 오는 부모들에 싫증을 낸다. 부모 면접으로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주는 사람들에게는 국가 차원에서의 혜택이 주어지는데 대부분 이 혜택을 받기 위해 가식적인 웃음과 세속적인 의도로 아이들을 대하고 제누 301은 이를 매우 싫어한다. 그러던 어느날 제누 앞에 처음으로 아무런 가식이 없는 순수한 상태의 사람들이 부모 면접을 보러 오는데 이들은 1차 면접 때도 매우 서툴렀고 대놓고 자신의 의도가 국가 혜택이라는 것을 밝힌다. 이를 본 모든 사람들은 이들을 부모로 삼는 것을 반대하지만 제누 301은 이들을 마음에 들어 한다. 이로 합숙 이전의 3차 면접까지 가게 되는데 여기에서 제누 301은 면접 대상자에게 친구가 될 것을 제안한다. 

 

이때, 제누가 친구가 될 것을 제안한 이유는 대상자가 싫거나 신뢰도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다름이 아닌, NC 센터에 조금이나마 더 남아 있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먼 훗날, 제누가 NC 센터를 나가게 되면 둘이서 친구처럼 지낼 것을 약속하고 제누는 부모 대상자와 헤어지게 된다.

 

이 전반적인 제누의 이야기 뒤에는 제누의 가드(guard), '박'의 이야기가 있다. 나는 박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박은 유년 시절, 술에 취해 일상을 보내는 아버지한테 술병으로 맞아가며 학대를 당하는 생활을 하였다. 이 경험을 계기로 박은 NC 센터에 취직하게 되고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을 하게 된다.  박은 NC 센터에서 생활하다가 자신의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일을 쉬겠다는 결정을 하게 되는데, 이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발소리만 들려도, 술 냄새만 풍겨도, 무서워서 숨이 막혔어. 아버지는 내게 거인이었고, 괴물이었고, 악마였어. 그런 괴물이 지금 늙고 병들어 뼈만 남을 미라가 되어 있더라. 의사가 그랬어, 한달을 넘기기 어렵다고. 그 말을 듣는데 기분이 이상하더라. 그렇게 아버지가 죽기를 바랐는데, 어서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기도했는데, 그런데 왜 웃음이 나오지 않지?1

 

모든 어른의 내면에는 어린아이가 내재되어 있다고 한다. 과연 박 안에는 어떤 아이가 내재되어 있었을까? 아버지가 죽기를 바랐다고 말하지만 결국 아버지에게 학대가 아닌 사랑과 정성을 원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 책을 읽고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되게 단순해 보이지만 매우 어려운, 역설적인 관계가 바로 가족인 것 같다. 우리는 가족을 선택할 수는 없다는 것에 불평하기도 하지만 가족을 결정하기도 쉽고 단순한 일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였다. 사회의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작은 공동체인 가족, 가족이 서로 유대감을 형성하고 화목한 관계를 유지한다면 우리 사회가 화목해질 것이라는 얘기가 있듯, 우리 사회에서도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여러 노력과 행복 증진을 위한 우리들의 생활을 기대한다.

 

1. 인용: 이희영, '페인트', p.139~140中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