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서의 독서 칼럼] 뉴스의 시대, 시민으로서의 우리의 자세

알랭 드 보통의 '뉴스의 시대'를 읽고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 한 남자가 있었다. 러시아의 시인 니콜라이 네크라소프다. 이는 19세기 러시아의 신문 검열을 풍자한 시 ‘신문열람실’에 나오는 구절로, 시 자체가 그리 유명하지는 않지만 이 시구만은 우리나라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불의가 정의를 대신하고, 민주주의가 밀려나고, 인권이 추락하는 현대사를 겪어내며, 이렇듯 비도덕이 횡행하기에 오히려 더 나라를 사랑할 수 밖에 없던 이들에게 이 말은 일종의 위로가 되어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자신들의 슬픔과 노여움이 언젠가는 나라를 바꿀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는 말이었을 테니 말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이 유명한 시구는 빛을 잃지 않고 여전히 읽는 이에게 어떤 울림을 준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을 해보자면 작은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어떻게’ 슬퍼하고 ‘어떻게’ 노여워해야 조국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만약 혁명을 일으켜 한 나라의 정신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곧장 탱크를 몰고 뉴스 본부로 향하라고 말하는 한 남자가 있다. ‘뉴스의 시대’의 저자, 알랭 드 보통이다. 그는 책의 서문에서, 시민들은 뉴스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배워야 하며, 우리 모두는 뉴스를 잘못 읽고 있다고 주장한다. 쉽게 이해되는 문장은 아니다. 당장 우리 옆에 놓여있는, 혹은 주머니 안에 있거나 손에 이미 들고 있는 핸드폰만을 통해서 우리는 단박에 최신 기사들을 찾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뉴스를 읽는 방법이 있다는 건 대체 무슨 말일까? 그는 그런 독자들의 의문과 반발을 잘 알고 있다는 듯, 6개의 분야로 뉴스를 구분한 뒤 각 뉴스별로 사회에 미치는 영향, 독자들이 보이는 반응, 언론사가 저지르고 있는 과오와 언론의 역할, 현명한 시민으로서의 역할 등을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나는 책을 읽으며 특히 정치 뉴스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흥미로웠다. 저자는 사람들이 정치 뉴스에 느끼는 따분함을 설명하며, ‘철학자 헤겔이 주장했듯, 삶을 인도하는 원천이자 권위의 시금석으로서의 종교를 뉴스가 대체할 때 사회는 근대화된다’고 말한다. 인간의 삶을 주재한다는 미지의 절대자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라 지구 반대편의 소식까지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해주는 뉴스를 생활의 기준이자 사고의 근거로 삼으며 인류는 진보해왔다는 뜻일 것이다. 신의 시대였던 중세에서, 인간이 가진 능력들을 믿었던 근대로. 그러나 저자는 헤겔의 주장에 일부분 동의하면서도 날카롭게 종교와 뉴스 사이의 차이점을 짚어낸다.

 

종교는 완전히 신자들의 생활 속에 스며드는 것을 목표로 하므로, 신자들이 종교를 처음 접하며 느낄 지루함이나 당혹감에 민감히 반응한다. 따라서 종교는 단편적인 가르침들을 주면서도 꾸준히 그들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를 상기시키고, 끈기 있게 몇가지 주제를 반복해가며 학습시킨다. 성급히 깨달음을 주려고 시도때도 없이 잡아 놓기 보다는, 매주 정해진 시각에 자신들의 사상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반면에 뉴스는 빠르고, 격정적이고 때로는 혼란스럽다. 뉴스는 종교만큼 친절하거나 엄숙하거나 간절하지 않아서, 시시각각 새로운 정보를 쏟아놓고 가버린다. 그 소식들을 읽어보고 나름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은 모두 개인의 몫으로 돌아간다. 겁을 먹든, 동요하든, 괴로워하든, 기뻐하든, 그것은 대중들의 영역인 것이다. 뉴스는 기본적으로 객관적인 정보를 대중에게 전달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단상을 제공하는 매체이므로, 종교와 같이 그 정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우리가 정보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옳을지 알려주지 않는다. 뉴스는 집값이 나날이 올라 주택난이 심각하다는 내용은 다룰지라도 대도시의 주택난은 왜 국가를 막론하고 만성적인지에 대해 심층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사회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은, ‘사실’에 대한 정확한 보도가 진정한 저널리즘이라는 우리의 통념에 맞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1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현대의 독재자는 뉴스를 검열할 것이 아니라 뉴스가 우리 사회에 흘러 넘치도록 해야 한다는, 마치 가벼운 농담처럼 서두에 던져진 저자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뉴스를 검열하여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들을 삭제하는 것은 구시대적인 수법이다. 몇몇 기사가 뻔히 사라진 채로 뉴스가 나간다면, 사람들은 과연 검열삭제 되었던 기사들이 어떤 내용이었을 지 맥락에 맞춰 추리할 것이다. 반면에 시도때도 없이, 그러나 그 전체적인 맥락이나 인과관계는 전혀 드러내지 않은 채 기사들을 쏟아낸다면 뉴스를 접하는 대중들은 지치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뉴스의 소비자이자 민주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할 이들이 뉴스에 싫증을 느끼고 뉴스를 멀리하게 된다면, 과연 그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렇듯 뉴스의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내 독자들에게 겁을 준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어떤 식으로 뉴스를 읽어야 선동되거나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올바른 시민 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저자가 강조하는 ‘뉴스 사용법’은 간결하다. 바로 뉴스를 능동적으로 읽으라는 것. 우리는 사색보다는 검색이 더 가까이에 있는 사회에서 살아간다. 검색만 하면 우리는 언제든지 원하는 정보들을 접할 수 있으므로, 사색의 중요성은 그리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물량 공세’에 치중하는 뉴스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간접적으로나마 살펴볼 수 있는 현대의 우리는, 사색을 해야만 뉴스에서 맥락을 읽어낼 수 있다. 뉴스가 가리키는 방향들은 검색만으로는 찾을 수 없다. 뉴스가 우리에게 나무들을 보여준다면, 우리는 그를 통해 숲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법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다양한 매체를 이해하고, 서로 다른 형태의 메시지를 분석하고 평가하며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인 미디어 리터러시를 함양해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공교육을 받으며 청소년으로서 보호받는 나이를 지나고 나면 우리는 성인으로서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지고, 미처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뉴스가 갖는 중요성은 훨씬 커져 있을 것이다. 뉴스를 이해하는 건 문학작품을 이해하거나, 미적분 문제를 푸는 것 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그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초등학생 때, 매주 2개씩 신문 스크랩을 해오라는 숙제를 내주시던 담임 선생님이 계셨다. 기사를 골라 요약하고 내 생각을 적는 거였는데, 초등학생들에게는 꽤나 고역이었다. 반 아이들이 해온 숙제 중에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들을 다룬 기사보다는 짧고 가벼운 내용의 기사가 대부분이었고 숙제 검사를 하는 날 아침에 급히 다른 친구의 것을 베끼는 애들도 있었다. 나 역시 신문 읽기가 재밌어서라기 보다는 숙제라는 의무감, 그리고 숙제를 열심히 해가면 들을 수 있던 선생님의 칭찬 때문에 스크랩을 해갔던 것 같다. 선생님은 가끔 진지한 어투로, 신문을 읽을 줄 알아야 세상을 볼 줄 안다는 취지의 말씀을 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흔한 일기 쓰기가 아니라 신문 스크랩을 시키신 그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뉴스를 읽는 것, 나아가 사회 현안에 대해 생각해보고 나름의 평론을 써보는 것을 가르치고 싶으셨던 것 같다. 만약 지금의 나에게 그런 숙제가 내려진다면 그때보다는 훨씬 진지한 마음으로 임하리라 생각한다. 뉴스를 읽는 법은 아주 간단하게 들리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으며,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데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언론사들이 매일같이 쏟아내는 기사들, 그 간결한 텍스트와 몇 장의 사진에는 우리가 마땅히 느껴야 할 정당한 슬픔이나 노여움을 쉽사리 찾아낼 수 없다. 그러나 그 기사를 접하는 우리는 그 속에서 시사점을 찾아내어 슬퍼하고, 또 노여워 하며 나라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뉴스가 단편적으로 다루는 사회의 모순들을 찾아내 우리 사회가 띄는 전체적인 모습을 읽어내고, 비록 이상적인 모습은 아닐지라도 그렇기에 더더욱 소속감을 느끼고 사회에 공헌하려는 의지를 갖게 된다면, 우리는 이상적인 뉴스 소비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출처]

 

1. 참고: 알랭 드 보통,  『뉴스의 시대』, 문학동네, 2014, p.4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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