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기의 맛있는 IT 칼럼] #17 디지털고등법원의 탄생

익명성을 내세운 디지털고등법원의 탄생을 막아야한다

 

2020년 유튜브를 장식한 주제는 무엇일까? 아직 올해가 한 달 반이나 남았지만, 필자는 무엇일지 알 거 같다. 코로나를 제외한다면 당연히 폭로전일 것 같다. 한 유튜버의 뒷광고 폭로가 신호탄이 되어 줄줄이 폭로가 진행되더니 급기야 군 훈련 관련 콘텐츠 출연진과 관련된 폭로까지 이어졌다. 무언가 폭로가 나오면 사실 여부와는 다르게 자극적인 기사 등이 유포되었고 사실 여부를 두고 극명하게 파가 나뉘는 등 말 그대로 전쟁통이었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유튜브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핫토픽 중 하나였던 디지털교도소에서도 나타났다.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아야 하는 아동 성범죄 등의 중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법적인 처벌을 약하게 받은 범죄자를 정당한 처벌을 받도록 한다는 명목하에 만들어진 디지털교도소는 무고한 사람을 지목하거나 지목당한 사람이 자살하는 등 사회적인 문제로 번져 결국 경찰에게 붙잡혔다.

 

인민재판과 다를 바 없는 디지털고등법원의 재판

 

필자는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매우 유감을 표한다. 대한민국은 엄연한 법치 국가이며 사법 당국이 존재하는 나라이다. 모든 국민은 법의 통제 아래에서 행동해야 한다. 만일 법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문제가 있다면 정치적인 권리를 행사하여 국회에서 법을 개정하도록 요구하면 된다. 우리가 대선, 지선, 총선을 통해 정치인에게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처럼 말이다. 만일 법이 약하다고 사적 제재를 가하는 일이 있다면 이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선 암묵적으로 용납되고 있다. 헌법이 보장한 자유라는,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라는 터무니없는 명분을 가지고 공산주의 국가의 인민재판과 다를 바 없는 디지털고등법원의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 4)

 

과연 헌법이, 표현의 자유가 디지털고등법원을 인정할까? 절대 아니다. 우리나라는 엄연히 무죄 추정의 원칙을 헌법으로 보장하는 나라이다. 누가 봐도 유죄라도 사법 당국의 유죄 판결이 나기 전까진 무죄이다. 하지만 디지털고등법원은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어 저 사람 이러이러한 일을 한 나쁜 사람이야"라고 근거 없이 주장하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구시대적인 속담을 끌고 와 비난한다. 지목당한 사람의 변론 따위는 무시된 채 그냥 비난한다. 만일 그 사람이 어찌어찌하여 무고함을 증명하더라도 그게 끝이다. 지목한 사람도 선동당해 비난한 사람도 그 누구도 사과하지 않는다. 심지어 증명이 잘못되었을 거라는 부정과 함께 계속해서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인민재판과 다른 게 무엇이 있을까?

 

불법적인 법관이 아니라

민주시민으로서의 법관이 되어야

 

필자는 이러한 현상의 가장 큰 이유를 스스로가 법관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법이 약한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법안을 개정해야 하는 국회의원의 노력이 지지부진한 것도 사실이다. 사법부가 아직 구시대적인 판결을 내리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관이 아닌 사람에게 법관의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이러한 현상을 고치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법률을 위반해가면서 디지털고등법원의 법관이 될 일이 아니라 진짜 우리나라 법원의 법관이 되거나, 선거 날 비행기 타고 차 타고 놀러 가지 말고 기표소에서 관련 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에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시민으로서의 올바른 행동이다.

 

필자 같은 경우에도 어떤 현상에 대하여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이 보고 계신 이러한 형식의 기사를 통해 비판한다. 몇 분 정도면 다 읽을 수 있는 기사 한 편을 위해 기자는 몇 날 며칠을 자료조사만 한다. 내가 쓴 한 문장이 잘못되었으면 안 되는데,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선 안되는 데라는 걱정에 싸여 다 쓴 기사를 죄다 지워버리는 일도 빈번하다. 필자가 쓴 이 기사도 10월 6일에 작성을 시작해 이제서야 작성을 마친 기사이다. 그동안 내가 과연 이 기사를 쓰는 것이 옳은가, 나 스스로는 비판받을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자기 성찰을 거쳐 작성했다. 물론 필자도 틀렸을 수 있다. 그래서 기사의 끝머리에 필자의 이메일을 남겨두는 것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틀렸다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언제든지 메일을 보내 정정을 요청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미디어경청의 편집부를 거쳐 정정을 진행한다. 이것이 민주사회에서 올바른 비판의 방법이고 대화의 방법이다.

 

흑백논리에서 빠져나와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니편내편 갈라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모두 나쁜 사람으로 규정하는 방법은 결코 옳은 방법이 아니다. 주호민 작가는 최근 웹툰계에서 있었던 여러 논란에 대하여 '나 자신은 도덕적으로 우월하니까'라는 생각에 의해 시민 독재의 시대가 열렸다며 '사과를 해도 진정성이 없다고 한다. 그냥 죽이는 것이다. 재밌으니까 더 패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직후 주 작가는 사과했지만, 필자는 우리 사회의 현 모습을 잘 꼬집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중에 더 나은 사람은 없다. 모두가 동일한 교육과정을 거처 동일한 이념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내 생각이 맞으니 남의 생각은 틀렸다는 흑백논리에 빠져 건설적인 논의를 하지 못 하는 일은 없도록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는 습관이 필요하다. 만일 미래에도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고 더구나 증가한다면 우리 사회는 무법천지에 소설에서나 볼법한 인민재판이 가득한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