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아의 독서 칼럼] 집단에 휘둘리는 당신을 위한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고 우리 사회가 가진 집단주의의 폐해와 개인주의에 대한 오해를 풀고 개인주의의 긍정적 측면에 대한 신선한 충격을 주고자 작성한 서평식 독서칼럼.

 

 

학교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판사 문유석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게 되었다. 쉽게 예측할 수 없던 이 책은 현재 사회 구조 속에서 개인이 가지면 좋을 마음가짐과 행동양식의 제안서이다. 이 책을 참고해 우리 사회 속 집단주의의 폐해와 개인주의라는 단어에 대한 오해를 풀고 그 긍정적 측면을 소개하여 지속적인 사회 발전에 일조하고자 본 독서칼럼을 작성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동의어로 취급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개인만을 생각하고 집단의 통일성과 번영을 방해하는 부정적 측면에서 개인주의를 인식하곤 한다. 사실 나도 대한민국의 국민인지라 18년 동안 살아온 삶 대부분에서 집단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개인주의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 보게 되었다. 국가라는 큰 틀 안에서 집단의 일부로 살아오고 있지만, 사회 구성원은 결국 개인 한 명 한 명이다. 각자의 생각과 사고방식이 다르고 행동과 가치관도 다르다. 그러므로 전 세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고 갈등을 빚는 것이다. 물론 공동체 내의 부당한 처우나 비인간적인 사건들이 사라지는 것은 너무나도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 목표를 이룩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흔히 그런 말을 한다. ‘나를 잃지 마라.’ 다수와 집단에 휘둘려 나 자신의 본 모습을 잃지 말라는 뜻이다. 나는 개개인이 자신만의 울타리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정도의 개인주의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럼으로써 획기적인 발명이나 고질적인 사회구조가 개편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보다 한 세대 더 빠른 걸음으로 미래 사회를 만나고 있는 일본의 청년들을 더는 사회에 불만을 품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현재 이례적인 행복 지수 최고치를 찍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다른 것일까? 사실 이러한 그들의 행보는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인간은 미래에 더 큰 희망을 걸지 않게 되었을 때 자신의 처지에 만족한다고 한다. (책 ‘개인주의자 선언’ 117p. 참고) 일본 젊은이들은 고도성장기의 버블이 다 꺼지고 고령화 사회로 진보해가는 사회 속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소소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현실에 만족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곧 일본의 성장이 멈춘다는 것을 뜻한다. 일본의 현 상황은 10~20년 안에 우리나라의 상황으로 다가올 것이다. 해결책은 끊임없는 창의성 발현과 모두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개인주의이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는 개인주의를 펼치기 어려운 나라이다. 우리나라는 개인의 자유가 철저히 보장되는 북유럽 국가들과 대비되는 보수적인 집단주의 문화권에 속해왔다. 피라미드식으로 계급화되어버린 대학 입시제도와 상사의 권위가 하늘을 찌를 듯한 회사 내 하향식 의사결정 구조 등이 그 단편적인 예시에 해당한다. 또한, 개발독재 시대에 압축적인 단기 성장을 이룩한 세대가 아직 사회에 많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나서는 걸 죄악시하고 튀지 않아야 한다는 전체주의적인 강박 속에 산다. 누가 뭘 잘했을 때의 칭찬보다 그가 한 가지 잘못했을 때 그럼 그렇지, 하고 달려들어 돌팔매질하는 광기가 훨씬 뜨겁다. (책 ‘개인주의자 선언’ 267p 인용) 따라서 우리는 개인주의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이를 지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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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정보

이승아 기자

동탄국제고등학교 소속 미디어 경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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