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아의 문화 칼럼] 우리는 호러물을 통해 무엇을 치유받고 싶어했는가

영화, 게임, 책, 만화 등 장르를 망라한 여러 매체에서 호러물은 하나의 분야로 범주화된다. 코미디, 로맨스, 다큐멘터리와 같은 카테고리에 반해 공포 테마는 비교적 현실과 상충하는 요소들이 다소 있음에도 뚜렷한 개성으로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여름이 오면 많은 이들이 무의식적으로 공포 영화를 떠올리는 것만 봐도 호러 장르가 대중화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실성과 개연성의 결핍과 무관하게 사람들이 공포, 호러, 괴담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사회 환경과 분위기에서 기인한다. 괴담 열풍의 근원지는 대체로 경기침체, 정치 불안 등 암울한 시대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회가 힘들 때 공포물의 수요가 급증한다고 한다. 괴담 역사의 시초가 되었던 1980년대에는 유괴사건, 강간 범죄, 인신매매 등 범죄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범람하던 시기였다. 일본에서도 1990년대 초반 버블경제로 경제 위기가 심화하였던 시기에 호러 장르가 큰 인기를 끌었다. 호러 장르의 성행이 부진했던 우리나라 역시 IMF 사건 이후 ‘여고괴담’, ‘텔미썸딩’ 등의 잘 알려진 공포물들이 발표됐다. 호러 문화의 유행 시기와 사회적 상황의 관계를 통해 알 수 있듯 공포 장르는 단순 비현실을 넘어 사회적 이야기를 함유하고 있다. 아래에 몇 가지 예시를 들어보겠다.

 

노스페라투 공포 영화는 1922년 독일 표현주의의 거장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할리우드 영화 역사상 최초의 장편 흡혈귀영화이다. 대비가 강한 조명을 통한 그림자의 극적인 효과와 배우들의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연기가 인상적인 이 영화는 히틀러 독재정치 시기, 당시의 암울한 독일의 사회적 상황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참고: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70056&cid=42621&categoryId=44431)

 

유명한 빨간 마스크 이야기도 사회적 공포를 반영한 사례 중 하나이다. 1980년대 대중들은 ‘빨간 마스크’에서 여자가 입이 찢어진 이유를 교통사고 또는 부부싸움이라고 유추했다. 그러나 2000년대에는 많은 사람 사이에서 여자가 입이 찢어진 이유가 ‘성형수술 실패’로 해석되었다. 이처럼 같은 괴담임에도 불구하고 시대에 따라 내용이 변질하는 것을 통해서도 공포와 사회 분위기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대중들은 자신이 직면한 사회상황을 대입하여 공포를 해석한다는 사실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앞서 설명한 것 외에도 인종차별 문제를 다루며 사회적 공포를 사유하고 있는 영화 겟 아웃(2007), 인간과 문명의 갈등을 다룬 영화 더 플라이(1986), 현실의 부정부패를 담은 일본 소설 ‘점과 선’ 등 우리의 현실을 공포라는 하나의 장르를 매개로 은유적으로 풍자한 작품들이 많다.

 

위와 같이 현실을 반영한 호러물을 통해 대중들은 은연중 심리적 위안을 얻는다. 또 당면한 사회의 우울한 환경을 공포라는 감정을 통해 잠시나마 잊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호러가 다양한 분야의 매체에서 빠져선 안 되는 대목으로 성장한 것이 아닐까.

 

한국외대 일본어학과 조규철 교수는 “공포 영화는 다른 영화 장르와는 달리 관객에게 기쁨과 통쾌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불쾌감과 혐오감을 주는 장르다. 사람들은 기쁠 때라던가 행복할 때 공포 영화를 보지 않는다. 뭔가 심적으로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고 불만에 가득 차 있을 때 공포 영화를 볼 확률이 높다. 이것은 심리학적으로도 밝혀진 사실이다. 따라서 의도됐든 의도되지 않았든 간에 공포 영화는 항상 사회의 가장 어두운 시기에 나타나 더 어두운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그 시기조차 살만한 가치가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려 준다.”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인용:https://vo.la/f2E0O)공포 장르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유의미하다는 얘기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매운 음식을 먹고 싶은 것과 사회적 암흑기에 사람들이 밝고 자극적인 색깔의 의상을 입고 다니는 것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 코로나 19로 황폐해진 오늘날 사회 속에선 또 어떤 호러물이 대중들의 치유제가 될지 이목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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