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빈의 영화 칼럼] 맥부기(Mac-Boogie)

 

“맥북이면 다 되지요”. 영어로는 “Mac-boogie(맥부기)”. 이러한 제목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제목만으로 내용을 유추해보았을 때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맥북을 원하는 젊은이의 상황을 솔직하고도 코믹하게 담은 내용일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하지만 영화를 감상하면서 나의 추측은 완전히 빗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상치도 못하게 이 영화는 한국 사회에서의 ‘나이 많은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였다. 맥북을 통해 ‘늙은 여성’들에 대해, ‘진정한 여성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맥북이면 다 되지요>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영화의 배경은 어느 시골 마을이다. 그 마을에 살고 있으며 고등학생 딸과 아들을 두고 있는 중년 여성 효선은 조기폐경 진단을 받는다. 늙어가고 있는 여성으로서 여성성을 잃어가고 있는 그녀의 상황을 ‘폐경’이라는 상태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 알맞고 구체적인 비유라고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조기폐경이 다가오고 있는 효선의 상황을 여러 스트레스가 쌓여있는 그녀의 내면까지 짐작이 가게 하였다. 효선의 조기폐경을 미루기 위해서는 300만 원 정도 하는 호르몬 치료가 필요하다. 천 생리대를 꿰매며 ‘내가 돈 주고 생리대를 산 지가 얼마나 오래된 줄 알아?’라며, 가족들은 듣지 못할 크기의 소리로 혼잣말하는 효선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이제는 쓸모가 없어질 천 생리대가 빨래 건조대에 널려있는 인서트 또한 더욱 인상 깊게 다가왔다.

 

그런 그녀와 대조적인 요소가 영화에서는 많이 등장한다. 남편과 몰래 만남을 가지는 새파랗게 젊은 여자와 어린 딸의 피임약 인서트, 새로운 컴퓨터 ‘맥북’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들까지. 이러한 요소들은 영화 속에서 그녀와 대비되며 늙어가며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듯한 효선의 상황을 훨씬 두드러지게 하고 관객에게 그녀의 심리적인 부담을 더욱 생생히 전달한다. 영화 속 구체적 요소로써 효선의 천 생리대와 딸의 피임약이 맞물려 대치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아들이 사달라고 조르는 맥북의 가격은 자그마치 300만 원이나 한다. 선풍기도 생리대도 쉽게 사지 못하고 있던 이들이 형편에서는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무엇보다 제한되어있는 예산 안에서 효선의 호르몬 치료와 맥북을 동시에 얻을 수는 없다. 효선에게 그 사이에서 수많은 고민과 내적 갈등이 찾아왔을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들은 맥북이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며 사달라고 징징거릴 뿐이다.

 

영화 속에서는 효선을 완벽하게 상징하는 것 또한 나타난다. 바로 효선의 집에서 유일하게 돈이 될 만한 것, 소이다. 그냥 소도 아니고 늙은 소이다. 효선이 이 소를 팔기 위해 시장에 찾아가 보지만 장수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을 제시한다. 다름이 아니라 늙은 소이기 때문이다. 이 금액이 어이없고 답답한 효선은 느닷없이 소 장수에게 마구 성을 낸다. “소가 새끼를 낳는 기계에요? 늙으면 소도 아닙니까?” 하며 괜히 소리를 지르는 효선이 기억에 남는다. 그 소는 효선을 그대로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그녀의 외침이 어딘가 애처롭게 들렸다. 소에게 말까지 건네면서 새끼를 낳아도 한 번 안아보지 못한 채 일만 하던 소를 안쓰러워하던 효선은 소에게 이름을 붙여준다. 바로 ‘맥북’이다. 그 소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잘 되게 해달라는 소망을 담아 지어준 이름이다.

 

 

끝내 효선은 소를 판 돈으로 새 선풍기와 맥북을 사 들고 온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많은 것이 기억에 남지만 효선의 이 독백 대사가 귀에 맴돌았다. “너희들은 새 거가 그렇게 좋냐. 새파랗게 어린 여자가 좋고, 새끼 숭숭 낳는 어린 소가 좋고, 새 컴퓨터가 좋고.” 가족들은 듣지 못할 소리 크기로 나지막이 혼잣말을 하던 효선의 이 말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정말 이 세상은 왜 이렇게도 새 것을 좋아하고 집착하는 것일까. 살면서 딱히 마주하지 않았던 질문에 마주하게 되었고 많은 의문이 나를 따라왔다. 무엇이든지 오래되면, 시간이 많이 지나면 가치를 잃게 되곤 하는 이 현실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시간에게 속아 진정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잃지 않는 삶을 살자고, 새로움에 눈이 멀어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는 삶을 살자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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