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신영의 정치 칼럼] 전쟁이 남긴 비극 '강제동원'

 

우리는 뉴스나 신문을 통해 각 나라의 갈등과 급변하는 외교 관계를 접한다. 이에 우리는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을까? 아니다. 오히려 현세대에게는 전쟁이란 겪어보지 못한 먼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대한민국은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한 전쟁의 비극을 겪은 지 100년이 지나지 않았다. 전쟁이 발발하면 연령대, 직업, 성별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동원된다. ‘동원’이라는 단어와 관련된 우리의 아픈 역사가 있다.

 

중일전쟁 및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의 성욕 해결, 성병 예방. 치안 유지, 강간 방지 등을 구실로 삼아 열두 살에서 마흔 살까지의 여성들은 ‘근로 일본군 강제위안부’라는 이름으로 강제로 끌려가야만 했다. 대부분의 여성은 공장에 취직시켜주겠다는 말이나 간호사로 근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갔다. 하지만 이는 실상과 달랐다. 끌려간 여성들은 일본군을 상대로 성행위를 강요당하였다. 심지어 전쟁이 막바지에 달했을 때 일본은 자신들의 추악한 행위가 드러나지 못하게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을 집단 학살하기도 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 이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참고: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47385&cid=46623&categoryId=46623)

 

그러나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필리핀과 네덜란드 그리고 국내 피해자들의 증언이 잇달았다. 이러한 증언들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위안부 여성들은 자원해서 온 것이라며 주장하였다. 하지만 1922년 ‘가토 담화’에서 위안소의 설치, 위생관리, 위안소의 관계자 신분증 발급 등에 정부의 관여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에도 일본은 강제동원과 대량학살에 대해 부정해왔다. 하지만 2018년에 개최한 일본군 위안부 국제 콘퍼런스에서 조선인 위안부들이 학살된 후 버려진 모습을 담은 19초 분량의 영상이 공개되었다. 이로써 일본의 주장은 신빙성을 잃게 되었다. (참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02271121001)

 

현재까지도 일본 정부는 진심을 담은 사과나 적극적인 대처를 보여주고 있지 않다. 오히려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들의 위패가 보관된 야스쿠니 신사에 유명 정치인들이 참배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한국과 일본의 감정의 골은 깊어만 간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변방에도 존재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피해자들에 대해 보살핌이 부족하다고 한다.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겪은 피해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촉구해야만 한다.


일부 몇몇 사람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배상금을 위해 투쟁을 하고 있다는 등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잘못된 행동이다. 피해자들이 왜 배상금을 요구하면 안 되는 것일까? 고통받았던 과거의 일들을 배상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왜 피해자에게 금전적인 배상, 어떠한 혜택 없이 온전히 사과만을 바라는 순결한 피해자상 기대하는가. 애초에 우리에게 그런 권리가 있을까.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가 아무리 피해자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하려고 해보지만, 피해자가 겪은 고통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을 100%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섣불리 재단하여 2차 가해를 행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국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지속적인 회담을 통해 각각의 생각을 듣고 차이를 좁혀나가야 할 것이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우리 개개인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시위를 참여하거나 캠페인 활동을 하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무한한 지지를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 누구보다 힘든 시간을 견디고 부당한 일을 알리기 위해 용기를 내 세상에 이 일을 알리었던 많은 피해자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이 현세대들의 과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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