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연의 과학사 칼럼] 갈릴레이, 현대 과학의 창시자

5월 31일 오전 10시 16분(우리나라 기준 오후 11시 16분) 스페이스 X의 '크루 드래곤'이 민간 회사 주도로 세계 최조로 인간을 우주로 보냈다. 스페이스 X는 테슬라의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민간 우주회사로써, 도킹역시 성공적으로 함으로써 민간 우주발사의 새 역사를 썼다. (참고: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601/101297175/1) 우주 또는 천체학에 관련하여 꿈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미 항공 우주국 NASA에 들어가는 것이 막연한 꿈이자 바람이었다면 이젠 그 바람을 민간 우주회사까지 확장 할 수 있을 것 같다. 

 

5월 31일에 일어난 이 엄청난 일은 분명 현대 과학의 역사에도 한 획을 그었을 것이다. 필자 역시 민간 기업에서 우주선을 발사한다니 우주로 가는 일이 매우 가깝게 느껴졌으며 죽기 전에 정말 우주 여행을 가볼 수 있을까란 희망에 매우 설레었다. 글이 발명되기 전, 돌을 깨서 도구를 만들어 원시적으로 살아가던 인류는 글, 불, 철 등을 만들고, 발명하면서 진보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고 주변의 사물들을 탐구하고 무모한 도전을 하면서 발전하게 되었다. 공룡들이 5억년 가까이 지구에 있었으나 발전을 하지 못한 반면, 인류는 불과 수백년 만에 감히 우주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이는 실로 빠르고, 정말 대단한 발전이다. 200년 전 공상과학 소설에서 쓰이던 우주 여행은 국제, 민간 항공 우주업 덕분에 이제 몇십년 뒤면 상용화가 될 수 있다. 인류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고 생활 양식이 이젠 몇십년 단위로 바뀔 수 있게 된 것은 호기심, 그리고 이에 따른 과학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은 우리를 둘러싼 사물을 정의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인간의 발전의 역사에 땔래야 땔 수 없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를 우주로 데려다줄 '현대과학'이라 하면 대부분 양자역학, 물리학 등과 빛의 속도가 항상 일정하다는 그 유명한 상대성 이론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현대과학은 생각만큼 '현대적'이지 않다. 과학사 역시 고대, 근대, 현대 등 일반적인 역사와 마찬가지로 여러 갈래로 나뉜다. 현대 과학은 놀랍게도 약 500년 전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현대과학의 문의 연 사람은 뉴턴도 아니고, 케플러도 아닌 바로 갈릴레오 갈릴레이이다.

 

 

갈릴레이는 현대 과학의 문을 연 사람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간단하게 그의 업적을 이야기하자면 그는 천문학, 물리학에 이바지하였으며 과학에서 가장 기본 토대인 과학 방법론을 창설하였다. 그 외에 자신의 발견과 우주관에 관한 책들(주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옹호하기 위함)을 썼으며 대중들이 잘 이해하는 이탈리아어를 씀으로써 대중들이 과학 지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하였다.

 

과학 방법론

과학 방법론이란 과학의 서술방법 및 연구방법에 대한 논구이며, 논리적 방법, 수학적 방법, 실험, 관찰, 통계조사 등이 포함된다. 크게 연역 논리학과 귀납 논리학으로 나누어 진다. 키워드를 뽑자면 '가설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으로 제시 하였다. 그는 가설 설정을 제시함으로써 가장 기초이자 중요한 단계를 만들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검증할 단계는 생각지 못했다. 가설을 설정하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이가 법칙이 되고 이론이 되기 위해서는 검증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았던 고대 그리스는 사실 여부를 검증 할 수 없었지만 과학 연구에 필요한 도구들이 비교적 풍부했던 갈릴레오는 가설, 논증을 거쳐 실험까지의 방법론을 정립하였다. (참고: http://www.kmooc.kr/courses/course-v1:ChungbukK+Chungbuk_05+2020_05/course/)

 

천문학

1609년에 망원경을 처음 접한 갈릴레오는 1610년에 자신만의 망원경을 만들어 여러 천체 현상을 관측하였다. 이 망원경은 상이 똑바로 맺힌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천체를 발견하였으며, 목성 위성, 달의 산맥과 분화구, 태양 흑점을 발견하였다. 이 발견을 통해 그는 지구 외에 다른 중심(목성과 그의 위성들)을 발견함으로써 지구도 달을 동반하여 움직일 수 있다는 결론을 이끌었다.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는 불완전한 지상계와 완전하고 이상적인 천상계로 세상을 나누었다. 따라서 지상계와 천상계에는 같은 법칙이 성립하지 않으며 천상계의 물체들은 그 당시 가장 완벽하다고 믿었던 등속 원운동을 한다고 믿었다. 이는 근대까지 서양의 과학사 발전을 제한하였다. 철학 등의 분야에서 뛰어나기로 칭송받는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이 서양의 과학사를 1500년간 늦추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통한 그의 발견을 통해 지상계와 천상계는 크게 다르지 않음과 이가 완벽하지 않음을 입증하였다. 이 때문에 천상계에도 지상계와 같은 물리 법칙을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갈릴레이는 그의 여러 저서를 통해 지동설을 옹호하였지만, 그 당시 태양중심설을 지지하던 교회 때문에 종교재판을 여러 번 받고 가택 연금도 여러 번 당했다. 재판에서는 그의 생각을 접겠다는 태도를 보였지만 그는 꾸준히 태양의 흑점 등 자신이 발견한 근거를 토대로 지동설을 옹호하였다. (참고: http://www.kmooc.kr/courses/course-v1:ChungbukK+Chungbuk_05+2020_05/course/)

 

물리학

갈릴레이는 물리학에서도 여러 업적을 남겼는데 역학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낙하 운동법칙과 관성의 원리, 진자의 진동주기를 발견하였다. 물론 다른 발견들도 흥미롭지만 필자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실험방법을 사용한 낙하 운동 법칙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1604년 그는 자유 낙하법칙을 발견하였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지지자의 근거에 반론을 많이 했는데, 낙하 속도가 질량에 비례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새로운 두 과학>이라는 저서에 사고실험을 함으로써 반박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를 입증하기 위한 실험은 다음과 같다. 청동으로 만든 구슬이 판의 중앙선에 일정한 간격의 홈이 있는 나무판으로 된 경사면을 따라 굴러가게 한다. 구슬이 이 나무판에 굴러가면 일정한 길이마다 소리가 나게 되는데 청동 구슬이 일정 거리를 굴러떨어지는 걸리는 시간을 잰다. 공이 같은 시간동안 굴러가 탁 소리를 내도록 여러 개의 턱을 설치한다. 이 방법으로 그는 홈을 기준으로 해서 턱과 턱 사이의 간격을 측정하여 경사면 아래쪽으로 갈수록 시간의 제곱에 비례하여 커짐을 알았다. 그 당시 정확한 시계가 없었을 텐데 어떻게 시간을 쟀을까?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갈릴레이는 직접 노래를 불러 직접 박자를 세서 실험을 전개하였다. 홈의 간격을 측정하여 낙하에 관련된 법칙을 알아낼 생각을 하다니 정말 기발한 발상이다.

 

이렇게 갈릴레이의 업적을 학문별로 조금씩 알아보았다. 과학을 시작하는 데에 가설설정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갈릴레이의 실행력에 주목해 보자. 아무리 가치있는 생각을 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직접 검증을 하는것은 대단한 일이며 용기있는 일이다. 과학 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 또는 일상생활에서 자신이 맞는지 항상 의심을 하고 틀림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면 안된다. 만약 갈릴레이가 실패와 오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현대과학의 포문을 열었다고 칭송받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에겐 용기있게 말하되, 책임감있게 입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필자도, 독자도, 현대 과학도 이러한 태도를 바탕으로 더욱 눈부시게 발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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