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윤의 시사 칼럼] 과연 '수 싸움'이 집회의 전부일까

언론의 의무

우리나라의 정치는 광장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18 민주화 운동 때도 광주의 청년들은 거리로 나와 민주화를 촉구했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광장에서 모였다. 시민들을 광장에서 서로를 다독이며 용기를 얻기도 했다. 지난 2016년 일어난 '촛불혁명' 때도 마찬가지이다. 국민들은 광화문 거리로 일제히 나와 정의 실현을 이야기했고, 대통령 탄핵이라는 결과를 이끌어 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광장에서는 대립하는 두 세력이 걷잡을 수 없는 '맞불 시위'와 수 싸움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 문제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각자의 의견을 내세우고 있는 것은 아직 검찰 개혁이라는 중요한 의제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국회의 무능함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집회와 이에 맞서는 두 세력 간의  수 싸움, 맞불 성격의 시위에 불을 붙인 것은 언론이라고 생각된다. 진보와 보수의 성격을 띠는 두 신문사의 기사를 보았을 때 주가 되었던 내용은 '집회 참석자 수' 였다. 진보 성향의 언론에서는 집회 참가자 수가 200만명에 육박했다고 보도를 하였고 보수 언론사에서는 참석자 수가 너무 많이 부풀려졌다고 보도했다. 두 신문사 모두 혈안이 되어 서로를 비판하기에만 바빴다. 

 

'집회'의 사전적 정의는 '여러 사람이 어떤 목적을 위하여 일시적으로 모이는 것' 이다. 검찰개혁 집회와 조국수호 집회도 각각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단순히 수로 상대편을 누르는 것이 근본적인 목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언론은 광장에 사람들이 모인 이유가 무엇인지, 이 목소리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정부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낱낱이 조사해 국회의 결정을 촉구했어야 한다. 집회의 본질은 어느 쪽의 참석자가 더 많았는지가 아닌 그 내용과 집회를 통한 사회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손석희 저널리즘'의 저자인 정철운 미디어오늘 기자는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교장선생님보다 양호선생님이 더 미웠다. 양호선생님이 없었다면 나는 그저 '미친 개'에 한 번 물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국회의 무능함은 국민들을 광장으로 내몰았고 갈라지게 했다. 하지만 이 갈등을 심화시키고 부추긴 것은 언론이었다. 저자는 애국 조회 시간에 복도를 돌아다녔다고 자신을 때린 교장선생님보다 양호선생님에게 더 분노가 치밀었다고 했다. 양호 선생님은 학생을 구타하는 교장 선생님에게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그 상황을 바라만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 국민들에게 언론은 양호 선생님과도 같은 존재일 것이다. 검찰 개혁과 같은 중요한 사안에 대한 국회의 조속한 행동을 지속적으로 촉구하는 것이 언론의 의무이지만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채 오히려 국민들을 부채질했기 때문이다.

 

언론은 눈에 보이는 숫자만을 보도해서는 안 된다. 주어진 사안의 본질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할 때, 마침내 언론은 '살아있는 권력 견제' 라는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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