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겸의 한국사 칼럼] 그들만의 현충일, 우리의 현충일

2019년 6월 6일,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이 날은 어떤 날이었을까.

 

바쁜 일상 속 휴식이 되어 주었던 통칭 '빨간 날'이었을까. 혹은 어떤 이에게는 평소 미뤄두었던 여행을 즐기는 날일까. 또 일부 학교는 금요일까지 재량휴업일로 지정해 공부를 하거나, 학생들끼리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할 귀한 날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6월 6일에 왜 쉬는 거지?"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충일을 잘 지키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현충일 당일날 필자가 방문하였던 전쟁기념관을 비롯해 현충원 등에서 이 날을 기리고 또 호국보훈의 용사들을 추모하였다. 또한 많은 지자체, 건물 등에서는 태극기를 내걸며 호국영령들을 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단체를 비롯한 시민들은 이 현충일을 잘 기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례가 많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사례를 찾아보기 이전에 현충일에 대해서 알아보고 가보자.

 

현충일의 사전적 의미는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쳐 충성한 이를 기념하는 날"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당시에는 북한군과  우리 군대의 교전이 자주 있었기 때문에 큰 전쟁이 될 것이라고 예측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군에 비하면 국군의 무기와 수는 턱없이 부족하였고, 하루도 되지 않아 수도인 서울이 점령당했다. 한 달 후에는 낙동강 바로 앞까지 북한군이 물밀 듯이 들어와서 적화통일 직전까지 갔으나 유엔군의 참전으로 전황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서울을 수복하여 압록강 끝까지 북한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쟁은 고착화되었고,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휴전을 맺음으로서 여전히 이 휴전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13만 8,000명의 군인들이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잃었고, 총 60만 명의 한국인이 죽거나 다치고 실종되었다.  또한 전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군인들이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이름 모를 나라에서 전투를 벌이다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렇게 우리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희생이 있었고, 또 많은 피 위에 이 나라가 세워졌음을 체감하여 이 현충일을 더 잘 지켜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이러한 사례를 보아도 정부 기관마저 현충일이라는 호국영령들을 기리는 일에 무감각한 모습이 보인다.

하물며 정부 기관도 이러한 실수를 하는데 개인이 현충일을 더 잘 기념할 수 있을까. 우리 강토를 지키기 위해 죽어간 호국용사들을 위해서라도 현충일에 좀 더 많은 관심을 쏟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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