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터 시티의 우승, 그리고 EPL의 몰락

EPL은 왜 내리막길을 걷는가

지난 3일 레스터 시티가 2015-16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프리미어리그 36라운드에서 레스터 시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맞붙어 11 무승부를 기록했고, 3일 첼시-토트넘 간의 경기에서 레스터 시티의 우승 여부가 확정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2위 토트넘이 첼시와의 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레스터는 남은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우승을 확정하게 되었다. 아래는 레스터 시티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선수단이 환호하는 모습이다.


Leicester City Players Premier League Title Celebration At Jamie Vardy's House Party 2016 


이처럼 레스터 시티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컵을 거머쥐게 되었고, 이는 구단 역사상 첫 우승이다. 과연 레스터 시티는 우승컵을 가질 자격이 있었을까?

 

레스터의 돌풍은 우연이었을까?

 

사실 레스터 시티는 우승 확률이 희박했던 팀이었다. 지난 시즌에는 겨우 강등을 면하며 리그에서 약체로 분류되는 팀이었다.

 

2부 리그에서는 맨체스터 시티와 함께 최다 우승팀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서로의 운명은 달랐다. 맨체스터 시티는 만수르라는 거대 자본의 유입으로 리그 우승 2, 리그컵 우승 1, FA컵 우승 1회라는 커리어를 달성하며 레스터 시티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반면 레스터는 1부 리그와 2부 리그를 전전하며 강등과 승격을 반복하는 등 우승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시절을 지내왔다. 유명한 선수라고는 캄비아소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이번 시즌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이 레스터 시티에 새로 부임하면서 클럽의 운명은 달라졌다. 감독이 이끌어낸 변화는 레스터의 우승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라니에리 감독의 어떤 전술과 운영이 레스터 시티의 우승을 이끌어 낸 것일까?

 

패스보다는 득점을, 밸런스보다는 스피드를

 

라니에리 감독은 레스터 시티의 전술을 확연히 바꾸어 놓았다. 빠른 스피드를 지닌 바디를 공격진에 배치하고 오카자키를 옆에 두며, 마레즈가 프리롤 역할을 하며 역습 상황에서 상대 수비진을 뒤흔들어 놓는다. 거기에 캉테와 드링크워터의 킬패스와 울브라이턴의 스피드까지 더해져 역습 상황에서 엄청난 공격력을 과시한다. 이는 레스터 시티의 볼 점유가 시작됨과 동시에, 바디와 마레즈, 오카자키, 그리고 울브라이턴은 곧바로 앞으로 뛰어나가고 캉테가 킬패스를 뿌림으로써 순식간에 공격진이 늘어나게 된다. 상대 수비는 볼을 점유한 선수를 보면서 바디나 오카자키를 마크하게 되는데, 이 때 프리롤 역할을 하는 마레즈가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패스를 받아 득점하거나 다시 바디 쪽으로 볼을 주어 득점을 하게 된다.

 

'나도 월드클래스'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는 마레즈의 골


위 영상은 25라운드 당시 맨체스터 시티 원정 경기에서 골을 넣는 마레즈의 모습이다. 단연 레스터 시티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영상이라고 생각되는데, 역습 상황에서 골까지 이어지는 모습이 최고라고 할 수 있다.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 상황에서 드링크워터와 캉테의 압박으로 공을 끊어낸 뒤, 드링크워터가 캉테에게 볼을 주면서 역습이 시작된다. 캉테는 맨시티의 수비를 제치고 드리블해 나가는데, 이 때 마레즈와 오카자키, 그리고 바디의 스피드는 상대 수비를 앞서나간다. 수비진이 바디와 오카자키 마크에 신경을 쓰는 사이 마레즈는 편하게 드리블을 하여 득점을 하게 된다. 이처럼 캉테-마레즈-바디로 이어지는 엄청난 스피드의 역습은 상대 수비진을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틀에서 벗어난 포메이션 구성

 

라니에리 감독은 포메이션에 정형화된 배치를 중시하지 않았다. 그는 역습을 중시했고, 상대가 무너지는 타이밍을 포착하여 득점을 이끌어냈다. 레스터 시티는 공격 상황에서 넓게 퍼지지 않았다. 윙어 위치에 자리한 마레즈가 중원에서 프리롤 역할을 넓게 하였고, 울브라이턴과 오카자키가 좌측으로 가며 수비의 시야를 분산시켰다. 캉테가 중원에서 볼을 몰고 나가며 역습을 주도했고, 바디가 패스를 받아 득점했다.

 

레스터 시티의 모든 선수진이 오른쪽으로 치우친 위치에서 공격을 전개한다. 좌측에서 올라오는 선수들 없이 오른쪽에서 공격을 전개하며 공격수인 바디가 왼쪽 빈 공간으로 침투하며 공격을 이끌어 나간다. 이처럼 양 쪽의 윙어들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공격을 전개하는 것이 아닌, 한 방향에서 공격을 하며 마레즈와 바디의 호흡이 극대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첼시의 수비진은 한 쪽으로 몰린 공격을 따라 이동하게 되는데, 이 때 캉테-마레즈-바디로 이어지는 순간적인 패스와 돌파, 드리블을 통해 득점 기회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레스터 시티의 공격은 틀에서 벗어난 방식과, 바디와 마레즈의 스피드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포지셔닝을 통해 많은 득점을 이끌어 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득점들은 승리로 직결되었고, 많은 승리들은 곧바로 레스터 시티에게 우승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레스터 시티의 우승이 과연 좋은 일일지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과연 레스터 시티가 우승한 EPL은 제대로 된 리그가 될 수 있을까.

 

4의 몰락과 리그간 경쟁력 하락

 

4의 시대는 갔다. 2010년대 전까지만 해도 EPL은 맨유, 첼시, 아스날, 리버풀의 4강 체제였다. 맨유와 첼시는 우승을 다투었고, 아스날과 리버풀이 그 뒤를 따르는 형세였다. 토트넘, 뉴캐슬, 에버튼 등이 중위권에 위치하며 유로파리그에 진출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토트넘이 4위를 차지하고, 퍼거슨 감독의 은퇴 이후 맨유는 하락세를 거듭하였으며, 리버풀의 몰락과 맨시티의 만수르 자본 유입으로 인한 순위 상승으로 사실상 빅4는 해체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빅4의 몰락은 곧바로 유럽 클럽 대항전(챔피언스리그, 유로파리그)에서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데, 실제로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잉글랜드 클럽이 모두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했으나, 2010년부터 2016년 현재까지 결승전에 진출한 잉글랜드 클럽은 단 한 팀(첼시, 2011-12 시즌)뿐이다.


이러한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의 부진은 곧바로 UEFA 리그 랭킹에서 나타났다. 2010-11시즌에서 1위를 달리던 잉글랜드는 2012-13시즌에 스페인에게 1위를 내주게 되고, 2015-16 시즌에 결국 독일에게 밀려 3위로 떨어지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특히 EPL의 수준 하락은 맨체스터 시티의 빅4 진입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몰락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맨유는 퍼거슨 감독의 은퇴 이후 챔피언스리그 진출은 커녕 유로파리그 진출도 힘겨운 상황이 되었다. 더군다나 이제는 유로파에서도 보기 힘든 리버풀과 리그 4/챔스 16강이 한계라는 징크스(?)를 가진 아스날, 그리고 이번 시즌 제대로 망한 첼시는 리그 수준을 하향평준화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물론 1~3위의 챔피언스리그 참가 조건은 같지만, 4위부터는 상위 2팀만이 본선에 직행할 수 있고, 3위 팀은 예선을 거쳐야하기 때문에 4위로 떨어진다는 것은 매우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최근 세리에A의 부활로 인해 지난 시즌 유벤투스가 결승까지 진출하는 등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EPL에게 랭킹 4위는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렇다면 리그 간 경쟁력은 왜 하락하는가?

 

이런 상황에서 맨유, 리버풀의 부진이 계속되는 상황에다가 디펜딩 챔피언 첼시가 초반 극심한 부진에 빠져 현재 9위라는, 믿기지 않는 순위에 위치해 있다. 그렇다면 어느 팀이 그 빈자리를 매꾸고 있는가?

 

바로 레스터 시티와 토트넘, 그리고 웨스트햄이 그 답이다. 레스터 시티는 내로라하는 강팀들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고, 토트넘도 알리-에릭센-케인으로 이어지는 최고의 공격진을 통해 준우승 자리에 오를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 레스터 시티와 토트넘이 1,2위를 차지함으로써 EPL의 수준은 더욱 낮아지게 될 지도 모른다. 실제로 토트넘은 지난 시즌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얻었기에 유로파리그 16강에서 도르트문트와 맞붙었는데, 1차전에서 3:0, 2차전에서 2:1로 총 5:1의 참담한 스코어로 탈락했다. 당시 리그 2위였던 팀이 이렇게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 쉽게 무너졌다는 점에서 리그 간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고 판단된다. 토트넘은 경기력이나 내용에서도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고, 게다가 챔스보다 낮은 유로파리그에서 이러한 수모를 당했다는 점에서 내년 챔스에서는 EPL 클럽들이 16강에 진출조차 못할 수도 있다는 불길한 소문이 돌고 있다

 

물론 레스터 시티는 이번이 첫 챔피언스리그 출전이고, 아직 다른 리그의 클럽과의 대결이 한번도 없기 때문에 어떻게 될 지는 모르기는 하다. 그러나 레스터 시티가 얇은 스쿼드와 바빠지는 일정에 대비하여 체력 관리를 잘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또한, 유로파리그의 경우에도 맨유와 웨스트햄이 6위 자리를 놓고 싸우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웨스트햄이 유로파리그에 진출하게 된다면 강팀들의 몰락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면서 EPL의 하향평준화는 이것으로 증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시즌 유로파리그 결승에 진출한 리버풀이 리그 도중 부임한 클롭 감독의 힘을 받아 우승을 해낼 수 있을지, 그것으로 EPL의 몰락은 아직은 아니다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지가 궁금해진다. 유로파리그 결승전은 5193:45에 스위스 장크트 야곱 파크에서 세비야-리버풀의 경기로 치루어지게 된다. EPL의 몰락이 이번 경기를 통해 결정지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 이 경기에서 좀 더 집중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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