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인터넷신문

왜 우리는 지금 최악의 질병을 방관하고만 있는가?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고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19 감염증이 엄청난 전파속도를 자랑하면서 많은 희생자와 여파를 가져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최악의 질병은 단연컨대 코로나19라고 모든 사람들이 한 입으로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세계에는 무려 8억 5000만의 ‘기아’라는 질병의 감염자들이 존재한다. 120억 명의 인구를 먹여 살리고도 남을 식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10살도 안된 아이들이 5초에 한 명씩 죽어가고 수천만 명이 기근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소가 인간보다 배부른 세상을 만든 기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기아는 경제적 기아와 구조적 기아로 구분한다. 기아를 자연도태, 즉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기아는 경제적 기아에만 해당한다. 경제적 기아는 돌발적이고 급격한 일과성의 경제적 위기로 발생하는 기아이다.

 

흔히들 기아를 환경문제와 전혀 별개의 문제로 생각한다. 하지만 경제적 기아는 그렇지 않다. 현재 북아프리카에서는 사막화가 진행 중이고, 자신들의 터전이 사막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이동하고 있다. 그들은 화전 농업으로 사막화를 오히려 더 가속화하고 있고, 브라질에서도 아마존 밀림의 파괴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서 수많은 기아를 발생시키고 있다.

 

 반면, 구조적 기아는 외부 재해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로 인해 빚어지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구조적 기아는 경제적 기아처럼 이해하고 정의하기가 매우 어렵다. 구조적 기아는 부자가 버린 쓰레기를 뒤져 고기 조각, 빵 조각, 반쯤 썩은 채소를 비닐봉지에 담아 가족과 나눠 먹는 세계 빈민가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로 나타난다. 더욱 비참한 것은 이런 배고픔의 저주가 세대에서 세대로 대물림되는 것이다.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린 수백만의 엄마들이 매년 지구 곳곳에서 수백만의 건강하지 않은 아이를 낳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 레지 드브레는 이들을 가리켜 “나면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힌 아이들”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전 세계 곳곳에는 이런 기아를 오히려 무기처럼 사용하거나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1992년부터 유고슬라비아에 걸쳐 일어난 사태가 대표적이다.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이끄는 세르비아군은 보스니아의 수도인 사라예보 시민과 지도자를 복종시키기 위해 시가지를 완전히 봉쇄했다. 서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에서는 테일러 대통령이 수천 명의 적대세력을 포위해 굶어 죽게 했고, 다국적 기업 네슬레 또한 아옌데라는 칠레 대통령의 개혁 정책의 추진으로 인한 자신들의 특권 침해 때문에 그의 분유 구매 요구를 거부하기도 하였다.

 

 

                                            

(밀로셰비치 대통령)                               (네슬레)                                     (아옌데 대통령)

 

 이러한 상황을 중재해야 할 국제기구는 거의 만성적인 자금부족에 시달리고 있고, 전 세계에서 수확되는 옥수수의 4분의 1을 선진국들의 소가 먹고 있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이렇게 식량은 남아돌지만, 부유한 나라들은 식량의 생산을 오히려 제한하고 있다. 생산자들에게 최저가격을 보장한다는 이유에서이다. 선진국인 우리나라 국민들 또한 고기와 같은 음식을 먹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아문제를 고착화시킨 셈이다. 식민지 정책의 흔적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신식민지주의(독립 후에도 정치적, 경제적으로 구종주국이 구식민지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것) 때문이다. 세네갈의 사례를 들자면, 세네갈은 예전에 프랑스 식민지로써 땅콩농사만 하도록 강요받았던 단일경작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지런한 국민들, 비옥한 땅이 있음에도 외국의 식량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아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다행히도 많은 세계인들의 관심으로 기아문제는 점점 해결되고 있다. 하지만 일순간의 금전적 지원은 기아문제를 근본적으로는 해결하지 못한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는 기아의 근본적인 해결방법으로 각국이 자급자족경제를 이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소수가 누리는 행복의 대가로 다수가 배고픈 세계는 불합리한 세계이다. 선진국 국민들은 자신들이 취하고 있는 편리함에 익숙해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이런 폭력적인 사회구조에 관심을 가지며, 그 해결을 위해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 한편, 당사국 국민들은 스스로 완전히 해방된 사회에서 자급자족할 방도를 찾기 위해 모순적인 사회구조를 파악하고 그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사라지지 않을 기아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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