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한동안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구었던 19대 대선이 끝났다. 대선 기간 대선 후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이슈의 중심이 되었지만, 특히 대선 후보자들의 동성애 관련 발언에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가 발칵 뒤집혔던 기억이 난다. 그들의 발언이 성 소수자들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를 드러낸 시대착오적 발언인지 아니면 신의 섭리를 거역한 사회적 병폐를 단호하게 단절한 의미 있는 용기인지,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다만 이러한 소식을 접하면서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뮤지컬에 대해 말하고 싶을 뿐이다.
작년 여름, 버스정류장에서 이 포스터를 만났던 기억이 있다. 강렬한 빨간색의 하이힐 부츠가 ‘킹키부츠(Kinky Boots)’의 첫 ‘K’모양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인상 깊은 포스터처럼 뮤지컬 ‘킹키부츠’는 평범하지 않은 드래그 퀸(Drag Queen),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인간이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또 다른 세상을 어떻게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는지, 그리고 자신과는 다른 이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감싸 안을 수 있는지를 ‘킹키부츠’만의 화려하고 열정적인 춤과 노래를 통해 보여준다.
뮤지컬 ‘킹키부츠’는 W.J.브룩스(W.J.Brooks)라는 신발 공장의 실화를 배경으로 한 매력적인 이야기이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가업인 신발 공장을 물려받은 평범한 청년 찰리가 남들과 다른 자신을 바라보는 주위의 편견 앞에서도 늘 당당한 아름다운 드래그 퀸, 롤라를 만나면서 폐업위기의 회사를 살려낸다는 성공담이다. 그러나 뮤지컬 ‘킹키부츠’는 단순한 성공담을 넘어 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타인을 존중해야 하는지를 담고 있다. 바로 이 점이 뮤지컬 ‘킹키부츠’가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자신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리고 그 다름이 이 사회에서 인정받기 힘든 것일 때, 많은 이들은 비난이 두려워 자신을 숨길 수밖에 없다.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겪어야만 할 시련이 얼마나 큰지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롤라는 그 시련과 아픔을 넘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아버지가 그토록 원하던 권투선수 ‘사이먼’이 아닌 ‘롤라’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이 세상 앞에 당당할 수 있고 목소리 높여 ‘남들과 다른’, ‘나다움’을 노래할 수 있다.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다. 인간의 가치는 그들이 속한 상황이나 그 어떤 조건에 의해서도 평가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은 우리와는 ‘다른 어떤 것’에 집착하며,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배척하고 그들의 가치가 우리와는 다른 것처럼, 우리보다 못한 것처럼 치부해버린다. 우리와 다른 피부색, 우리와 다른 옷차림,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 인간 대 인간으로만 대하는 것이 왜 그리도 힘든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름을 인정하고 다른 그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우리가 모두 가치 있는 것은 자신만의 각각의 ‘다름’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남과 다르므로 내가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팔다리가 없이 태어났지만, 불굴의 의지로 행복의 열쇠를 찾은 행복 전도사 닉 부이치치(Nick Vujicic)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내가 너와 다르다는 것을, 네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자. 그 순간, 나와는 다른 그 사람의 삶이, 내가 경험하지 못하는 그 사람의 세상이 당신의 삶 속으로 들어올 것이다.
신다빈의 Musi-C-ALL : 뮤지컬에 푹 빠져 사는 철수도, 뮤지컬의 ‘뮤’자도 모르는 영희도. 무대 위 작은 세상을 꿈꾸는 이 모두(ALL)를 위한, 고딩 뮤지컬 마니아의 작은 외침(CALL). 일상에 지친 모두를 위한 뮤지컬(MUSICAL)의 응답을 기대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