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모의 역사칼럼 2] 일제강점기의 신사참배에 대한 우리들의 자세

신사참배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천황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 신사를 세우고 한국인들로 하여금 참배하게 한 일이다. 신사를 중심으로 천황을 신격화하여 자국 국민의 정신적 지배는 물론 군국주의적 침락 전쟁 및 아시아 식민지 지배에도 이용했다.

 

   

1910년 조선이 일본에 최종적으로 병합되면서 한민족은 모든 면에서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특히 종교적인 면에서 탄압과 제지가 들어오면서 초창기 한국교회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제일 거부하고 싶었던 것이 신사참배였을지 모른다. 먼저 신사참배가 제도화되기까지는 조선총독부가 교육과 종교가 분리되어야 하고 기독교 학교의 종교 수업 및 종교적인 활동도 금지시켰다. 하지만 3.1운동 이후로는 총독부가 선교사 회유정책을 펼치면서 기독교 학교의 종교교육을 허락한다. 이 제도 때문에 일본의 문화통치에 속아버린 기독교 학교는 하나님의 학교가 아닌 일본천황을 섬기는 학교가 되었다.

 

일제의 선교사 회유정책의 제일 핵심은 기독교 단체의 법인설립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인설립은 총독부의 제지를 받으면서 종교 보국이란 이름하에 실시된 것이 신사참배다. 기독교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신사참배에 처음에는 반대했었으나 잔혹한 탄압 때문에 순응했고, 전쟁 협력이라는 목적으로 한국의 청년들이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나가는 징병제를 정당화했다. 이처럼 한국교회의 과거 잘못은 회개를 해도 지워지지 않을 만큼 큰 흉터이자 수치다. 이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심각성을 모르는 대한민국의 기독교가 이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서둘러 회개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모든 기독교인들이 변절되어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분이 바로 주기철 목사님인데 그는 신사참배가 기독교 교리에 어긋난다며 신사참배 반대결의안까지 제출하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 당시 목회자들이 힘없이 한낱 인간인 천황을 신으로 받들고 우상으로 섬길 때 주기철 목사님과 뜻을 같이하는 다른 목회자들도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일본의 무력 앞에서도 당당히 맞섰다. 앞으로도 기독교를 탄압하는 국가적 재앙이나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참된 신앙인의 모습으로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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