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원의 가요칼럼6] 음악, 영화에 생명을 불어넣다

OST를 들으면 영화가 보인다

 대학교 방학이 시작하고, 중고등학교의 방학 역시 가까워지면서 영화관에 새로운 영화들이 개봉하고 있다. 영화는 사람들의 문화생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적당한 시간과 적당한 돈이 준비되었을 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다.

 익숙해진 만큼 평소 별생각 없이 관람하던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몇 달 전,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보던 중 영화관의 음향사고로 소리가 잠시 끊긴 적이 있다. 외국 영화였기 때문에 자막이 있었음에도 소리가 끊긴 몇 초의 시간 동안 영화가 매우 지루하게 느껴졌다. 인물의 움직임과 자막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는데도 관객들의 불만이 컸던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 해볼 이야기는 다 된 영화에 생명을 불어넣는 음악들에 대한 것이다.



(1) <너의 이름은> ♬_ 전전전세(前前前世)


△ <너의 이름은>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지난 1월, 일본에서의 흥행에 이어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 <너의 이름은>이 최근 더빙판 재개봉으로 다시 한번 관심을 받고 있다. 일본 특유의 청량한 영상미와 흥미진진한 전개, 그리고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한 반전으로 호평을 받은 <너의 이름은>은 그 OST 역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여러 OST 중 하나인 '전전전세(前前前世)'는 영화의 도입부에서 흘러나오며 앞으로 펼쳐질 전체적인 이야기를 넌지시 일러주는 역할을 한다. 시간을 초월하여 두 주인공이 서로 다른 공간에서 겪는 이야기를 다룬 <너의 이름은>은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본다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또한, 다른 시공간이라는 특별한 상황 설정 때문에, 영화는 등장인물의 섬세한 감정 묘사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난관을 풀어나가는 위주로 진행된다. 이처럼 의사소통이 어려운 남녀주인공의 자세한 속마음이 표현되기 힘들다는 한계를 이 영화에서는 노래(OST) 가사로 극복하고 있다. 노래 가사는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서로를 향한 진심과, 하고 싶은 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처음에 들었을 때는 의미를 알듯 말듯 아리송했던 노래 가사를 영화를 보면서 점점 이해해나가는 재미도 함께한다. 후반부에 다시 한번 도입부 OST가 흘러나오며 가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눈치채기 어려웠던, 혹은 잘못 알았던 등장인물들의 속마음을 확인시켜주는 기능 역시 갖는다. 이처럼 영화 OST는 영화 설정으로 인한 내용상의 한계를 극복시키는 장치로 활용될 수 있다.



(2) <하울의 움직이는 성> ♬_ 인생의 회전목마


△ <하울의 움직이는 성>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지브리 스튜디오의 명작 중 하나로 손꼽히며 몇 번이고 재상영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역시 OST가 매우 유명하다. 특히 이 OST의 제목에는 관객들이 놓치기 쉬운 영화 속 숨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 더욱 의미 있다. OST 제목인 '인생의 회전목마'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있는 것일까?

 영화 초반부에서 주인공 소피와 하울의 만남은 다소 엉뚱하게 시작된다. 위기에 처한 소피를 구하러 온 하울은 "여기 있었구나. 한참 찾았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 뒤 소피를 데리고 도망친다. 관객들은 난처할 소피를 위해 아는 사람인 척해주는 하울의 '배려'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전개되어 후반부에 이르게 되면, '인생의 회전목마'라는 제목의 비밀이 풀린다. 영화에 등장하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원하는 세계로 나가는 문을 선택할 수 있는 신기한 기능을 가진 성이다. 어떠한 사건으로 마법에 걸린 후, 하울과의 우연한 재회로 이 성에서 지내게 된 소피는 여러 문 중 하울의 과거로 향하는 문을 열고 나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어린 하울에게 '미래에서 만나.'라는 말을 남기고 현재의 시간으로 돌아오게 된다. 어린 하울은 이때부터 소피를 다시 만나기 위해 찾아다닌 것이다. 하지만 영화 전체를 놓고 본다면, 마법에 걸리기 전의 소피와 하울의 만남, 마법에 걸린 후의 소피와 어린 하울의 만남은 무한히 반복될 것이다. 끊임없이 돌고 도는 영화 속 운명을 OST '인생의 회전목마'에 담아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마법사 하울과 마법에 걸린 소피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 영화는 신비롭고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웅장하면서도 부드러운 멜로디의 '인생의 회전목마'는 이러한 오묘한 영화 분위기를 한층 더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아름다운 영상미가 일품인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여러 장면 중에서도 명장면으로 손꼽히는 부분은 위 사진 속, 하울과 소피가 손을 맞잡은 채 하늘을 걷는 장면이다. 발 아래로 펼쳐진 알록달록한 지붕들과 섬세한 그림들도 장관이지만, 소피가 허공을 향해 발을 한 걸음 내딛자 흘러나오는 '인생의 회전목마'가 아니었더라면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처음 마법을 접한 소피의 몽글몽글한 마음이 음악을 통해 더욱 잘 전달되고 있다.

 OST 제목 속에 담긴 비밀을 확인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러 가자. 영화를 보고 나면 한동안 '인생의 회전목마'를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3) <캐리비안의 해적> ♬_ He's a pirate


△ <캐리비안의 해적-죽은 자는 말이 없다>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나오는 편마다 흥행에 성공하며 큰 인기를 자랑하는 시리즈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이 벌써 다섯 번째 이야기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편으로 지난 5월 개봉하였다. 할리우드의 명배우 '조니 뎁'이 주인공 '잭 스패로우'역을 맡아 천연덕스럽고 우스꽝스러운 해적 연기를 보여준다. 다소 허술해 보이는 이 해적은 바다 위의 온갖 사건사고의 주범으로 갖은 실수를 달고 다니며 과연 최고의 해적이 맞나 싶은 의심을 품게 하지만, 항상 절체절명의 순간에 영웅처럼 나타나 극적 전개를 이끌어 간다.

 이때마다 흘러나오는 OST가 바로 'He's a pirate'인데, 웅장하고 급진감 넘치는 이 노래는 해적의 위용을 전혀 찾아볼 수 없던 잭 스패로우의 등장을 장엄하게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위기에 빠진 동료 해적을 구할 때, 사형 집행 직전의 순간 빠져나갈 때, 또는 다른 해적선과 싸움에서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릴 때 등등 그의 활약을 부각해야 하는 장면마다 'He's a pirate'이 흘러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He's a pirate'는지금까지 나온 다섯 개의 시리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OST로, 잭 스패로우의 등장을 빛내주는 곡이다. 또한 관객들에게 친근하게만 여겨졌던 캐릭터의 영웅적 면모, 즉 그의 공로를 웅장하게 강조해주는 역할을 한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를 모두 챙겨 본 사람이라면 이제 'He's a pirate'이 흘러나올 때 새로운 극적 반전을 예상할 수 있을 만큼 이 OST는 <캐리비안의 해적> 영화에 없어서는 안 될 곡이 되었다. 다음 시리즈에서는 블랙 펄 호의 선장 잭 스패로우가 OST 'He's a pirate'과 함께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매우 기대된다.



(4) <겨울왕국> ♬_ Let it go


△ <겨울왕국>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2014년, 애니메이션 뮤지컬로 디즈니 스튜디오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영화 <겨울왕국>은 아직도 그 OST가 여기저기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900만 관객을 돌파한 <겨울왕국>은 엘사와 안나 자매가 진정한 사랑을 찾아 얼어버린 왕국의 저주를 푸는 이야기이다.

 엘사는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마법을 쓰지만 이를 제어하지 못해 갈등을 겪는다. 스스로 두려움이 생긴 엘사는 아무것도 없는 외로운 산속에 들어가 혼자 살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능력을 원망하며 왕국을 떠나는 과정에서 유명한 OST 'Let it go'가 탄생한다. 'Let it go'는 엘사가 깊은 산속에 들어가는 길에서 다칠 사람이 없는 허공에 마음껏 마법을 부리며 부르는 노래이다. 그동안 마법을 쓰지 못해 겪은 고충과 힘들었던 속마음, 그리고 앞으로의 다짐을 담아 부른 이 노래는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낸다.

 어린아이를 주요 타겟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뮤지컬 영화는 동심을 지켜줄 해피엔딩과 교훈성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겨울왕국>은 이 OST 속에 아름다운 교훈을 담고 있다. 자신을 압박하는 주변의 시선을 떨쳐내고 당당한 겨울왕국의 여왕으로 거듭나는 엘사의 모습에서 아이들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자신을 억압하던 왕국에서 벗어나 삶을 개척해나가는 엘사의 모습에서 분명 느끼는 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자신감이 부족할 때, 용기를 얻고 싶을 때 <겨울왕국>을 보며 'Let it go'를 따라 불러보자!



(5) <미녀는 괴로워> ♬_ Maria


△ <미녀는 괴로워>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2006년 개봉한 김용화 감독의 영화 <미녀는 괴로워>는 외모지상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따끔히 지적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뛰어난 가창력을 가졌지만 뚱뚱하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모습을 감춘 채 노래하던 주인공 한나가 전신성형으로 예쁘고 날씬한 미녀가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이야기이다. 외모로 인해 360도 달라진 주변 사람들의 태도에 내적갈등을 겪으며 남 모르는 고충을 겪던 한나는 큰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심이 실현되던 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전의 괴로움을 떨쳐버리듯 'Maria'를 열창한다. 희망찬 가사를 들으면서 한나가 마음고생한 지난 날들과 앞으로의 당당한 삶을 떠올릴 수 있다.

 이처럼 <미녀는 괴로워>의 OST인 'Maria'는 외모지상주의로 인한 한나의 내적갈등이 극에 달하는 영화의 절정 부분에서 답답함을 뻥 뚫어주며 갈등이 해소됨을 표현한다. 희망적이고 당당한 노래 가사를 통해 주인공의 위기 극복을 알리는 것이다.



 소개된 영화들뿐만 아니라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들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OST가 있을 것이다. 영화는 아름다운 영상미, 섬세한 연출, 배우들의 연기력도 중요하지만, 음악이 더해질 때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아무리 뛰어난 CG 기술을 사용해도 그 상황에 몰입시켜줄 적당한 음악이 없다면 영화는 그래픽만 돋보이는 썰렁한 영상물에 불과할 것이다.

 앞으로는 영화를 볼 때 대사, 효과음뿐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어떤 노래가 나오는지 관심을 두고 감상해보면 어떨까? OST를 통해 영화를 더욱 깊이 감상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OST를 통해 영화 속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칼럼소개: 가요로 창조된 문화는 세상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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