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다빈의 뮤지컬칼럼 3] 노란 빛깔 무지개를 기대하며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지난 달 페이스북에 업로드된 한 장의 사진은 14만 ‘좋아요’를 기록하며 미국을 뜨겁게 달궜다. 사진 속에는 미국 유타주에 거주하는 싱글맘 휘트니 키트렐, 그리고 그녀의 아들이 나란히 서서 카메라를 응시한 채 환한 미소를 띠고 있다. 여느 화목한 가족과 같은 모습이지만, 다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휘트니의 얼굴엔 가짜 수염이 그려져 있다는 것. 3년 전 싱글맘이 된 후 자녀들에게 ‘평범한 생활’을 약속하겠노라 다짐한 그녀는 유치원생 아들이 ‘아빠와 함께하는 도너츠’ 행사에 꼭 엄마와 함께 가고 싶다는 말을 꺼내었을 때 남장이라는 방안을 떠올렸다. 그녀는 ‘캐치볼,’ ‘벌레 잡기’와 같은 놀이를 아들과 함께하며 때론 아빠 같은, 때론 엄마 같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한다.


이처럼 사랑, 특히 가족에 대한 사랑은 평상시 생각해보지 못한, 희한한 일을 가능하게 만든다. 사랑하는 그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우스꽝스럽게도 희화하고, 심지어는 자신이 ‘없는’ 삶을 살아가리란 역설적인 다짐에 도달하도록 이끈다. 20년째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뮤지컬 분야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라 불리는 ‘사랑은 비를 타고(일명 사비타)’는 이처럼 조금은 무모한 가족에 대한 사랑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동욱’은 스물다섯의 이른 나이로 부모를 여의고 두 여동생과 남동생을 성심성의껏 뒷바라지한 마흔둘의 맏형이다. 마치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듯한 인자한 미소의 소유자인 그의 취미는 ‘어린 조카와 동생 속옷 빨래….’ 오랜만에 동생들을 볼 생각에 저절로 콧노래를 부르고 갖가지 요리를 준비하며 시작하는 하루가 그에겐 삶의 낙이자 행복 그 자체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족 간의 사랑은 ‘짝사랑’일 경우가 다반사이다. ‘너희들이 곧 나의 행복이야’라고 수없이 되뇌이며 결혼까지 포기한 채 오로지 동생들만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동욱이지만, 정작 동생들에게 그런 동욱의 희생은 ‘귀를 닫고 싶은 잔소리, 부담스러운 집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피아니스트 유망주였던 막냇동생 ‘동현’에게도 형의 희생은 자신을 누르는 부담감이자 집착이었다. 그 무게를 벗어내고자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원양어선 일과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동현이 7년 만에 형 동욱의 집에 불쑥 나타나면서 사비타는 그들의 속내를 조금씩 드러낸다. 비록 껄렁거리는 말투와 건들건들한 자세, 세상만사가 귀찮은 듯 형에게 늘 반항적인 동현이지만, 그 역시 형에 대한 사랑을 놓지 못하는 막냇동생, 피아니스트라는 꿈을 자신에게 투영하며 미래의 옭아매던 형에 대한 미움을 씻어 내지 못하면서도, 매년 형의 생일에는 ‘잘 지내’라는 짧은 한마디의 엽서를 잊지 않았던 동생이었다.


뮤지컬 ‘사비타’가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시대가 변해도 우리 마음속에 한결같은 가치로 자리 잡은 ‘가족애’를 노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차분하고 촉촉이 내리는 비와 같이, 뮤지컬은 은은한 사랑의 향을 전하고,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흠뻑 젖어 들어가면서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을 떠올리며 그 사랑에 다시 한번 더 취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매일 함께하기에 그 소중함을 모르는 가족의 사랑처럼, 밤하늘에 내리는 가벼운 빗줄기에 귀 기울여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비가 그치고 일곱 빛깔의 무지개가 하늘을 채우는 이른 아침, 우리는 아름다운 무지개를 선물해준 어젯밤 빗줄기의 고마움을 떠올리게 된다. 이런 무지개가 바로 어리버리한 웨딩업체 신입사원 ‘미리‘다. “결혼 축하해요!”라는 해맑은 외침과 함께 티격태격 중이던 형제의 집에 등장한 그녀는 폭발적인 에너지, 콧소리 가득한 애교, 그리고 어린아이보다 밝은 미소를 장착한 채 그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무지개 같은 존재가 되어준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가족을 이야기한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황금시간대의 주말 드라마는 정작 내 주위에선 보기 힘든 북적북적한 대가족 이야기이고, 휘트니 키트렐의 이야기가 수많은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지금 세상이 그만큼 지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명 희망의 촛불은 그 빛을 잃지 않았고 달콤한 미래에 대한 약속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국화꽃으로 수 놓인 절망의 길을 걸으며 마주한 역경은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그 여정 속 우리가 목격한 치부의 광경은 세상의 암담함을 그대로 담은 듯했다. 그렇기에 가족애라는 조금은 진부할 수 있는 동욱과 동현의 이야기에 우리는 눈물짓는 것이다. 동욱과 동현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함께 들려주는 아름다운 피아노의 선율 속에서 우리는 내 사랑하는 가족을 떠올리고 1시간 반 남짓의 짧은 시간이 주는 마음의 휴식에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그런 가족 역시 한없이 나약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남을 평가하던 잣대를 스스로 들이대며 ‘더 나은 삶의 길’을 강요하고, 갈등하고, 또 쉽게 상처를 준다. 그런데도 우리는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를 통해 그간 쌓인 모든 아픔을 눈 녹듯 씻어 내린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리란 형용할 수 없는 용기가 수반됨을 이해하기에 고심을 거듭해 뱉은 그 한마디로 ‘누가 잘못했는가’에 대한 의혹을 내려놓는다. ‘사비타’는 제한적인 구성과 단면적인 구성 인물 등, ‘20년 전 작품’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는 아쉬움의 지탄을 견디면서도, 그 오랜 시간 동안, 우리가 모두 절실히 염원한 ‘미안해’라는 그 진실된 한 마디의 기대를 상기시켜 왔다. 그 도덕에 대한 희망을 지금도 지속시켜 주고 있다. 이는 지난 두 해 간 '대한민국'이라는 한 가족이 서로를 헐뜯고 다투며 끝내 고개를 돌렸던 노란 빛깔의 무지개를 당당히 바라볼 수 있으리란 희망이다.

 

우리가 꿈꿔왔던 것 그게 바로 사랑이야

-‘사랑은 비를 타고넘버 사랑

 

 

 

신다빈의 Musi-C-ALL : 뮤지컬에 푹 빠져 사는 철수도, 뮤지컬의 자도 모르는 영희도. 무대 위 작은 세상을 꿈꾸는 이 모두(ALL)를 위한, 고딩 뮤지컬 마니아의 작은 외침 (CALL). 일상에 지친 모두를 위한 뮤지컬(MUSICAL)의 응답을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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