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애의 사회칼럼 2] 불편한 미래 속 좀 더 나은 '각자의 미래'

고령화+저출산+저성장, 그리고 정해진 미래


마치 점묘화와 같이 사람 한명 한명으로 이루어져 있는 사회. 점 하나라도 빠지면 한 폭의 그림이 아닌 만큼, 점 자체가 중요하다. 점 하나의 색과 채도가 있으므로 그림이 존재한다. 이는 사람 한명 한명이 있으므로 사회가 존재한다는 명제로 성립된다.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사람의 태어남과 죽음이 자리 잡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들이 태어나고, 이동하고, 죽는 현상이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는 이미 어쩌면 많이 들었을 수도 있다. 고령화와 저출산이라는 실타래와 같은 문제들 말이다. 나이를 먹어 가는 인구가 늘어가고, 태어나는 인구가 줄어간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본질적인 인구 문제다. 인구의 수가 뭐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고령화와 저출산이 결합한 사회가 우리의 미래다. 그래서인지 이대로 가다간 20XX년에 한국이 없어진다.'는 식의 묵시록 같은 예언만 난무하며, 객관적인 자료들과 온갖 통계들은 암울할 미래에 대해서 선언한다.

 

저출산 문제는 국가적 위기다. 우리나라는 지난 40년간 출산율이 지속해서 감소해왔고 특히 2002년부터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으로 출산율이 하락했다. 그뿐 아니라 사망률도 같은 기간 동안 계속 감소하면서 평균 수명이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에서 가장 높은 국가들 가운데 하나로 이동했다. 당연히 인구의 연령구조는 현재의 다이아몬드 형태에서 곧 역삼각형이 될 것이다. 기존 사회구조가 이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다. 저출산 현상을 본 젊은 층은 이에 대해 상대적으로 개인은 경쟁이 치열하지 않으니 취업은 쉽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 고령화까지 함께한다면 쉽지 않다. 노후자금이 부족한 고령자들은 오래 일할 수밖에 없게 되고, 세금 부양이 증가하여 젊은 층과 일자리 경쟁을 불사하게 된다. , 저출산과 고령화가 동반되어 세대갈등을 낳게 된 것이다.

 

인구의 변동과 변화는 보편화한 사회기준들을 부숴버렸다. 이는 4인 가구라는 단어로도 쉽게 알 수 있다. 결혼과 출산이 줄면서 그동안 사회의 기준이었던 4인 가구가 더는 사회의 기준이 될 수 없게 된 것이다. 가족에 대한 기존의 기준이 흔들리면서 소비문화도 바뀌기 시작했다. 4인 가구라는 틀 속에서 벗어나 대형마트보다는 소형 마트와 편의점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더 크게는 부동산 시장까지 변화되고 있다. 인구는 시장이다. 교육 시장 또한 예외 없다. 대학들은 학생이 없는데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4년제 대학이 모두 저출산 세대로 채워지는 때는 2024년이다. 학생들은 2013년의 약 114만 명보다 39% 줄어든 수가 된다. 이렇게 되면 대학은 문을 닫거나, 교수를 줄이거나 할 수밖에 없는 실정에 놓인다. 이제는 옆집 아주머니의 말을 들을 때가 아니라 정해진 미래에 대비한 교육을 해야 할 때이다.

 

청년 실업으로 인해 이미 프리타족 그리고 니트족들이 퍼지고 있다. ‘프리타라는 말은 프리랜서와 아르바이트의 합성어로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서비스 산업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하며 생활하는 것이다. 니트족(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즉 학생도 아니고 취업자도 아니고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무직자를 뜻한다. 서둘러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저출산 세대도 니트족이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취업하느라 힘들고 세금 내느라 힘들 바에야 차라리 적게 벌고 마음 편하게 살겠다고 할지 어떻게 아는가. 그렇게 되면 국가재정에 또 악영향이 갈 것이고, 다시 악순환이 시작된다.

 


지금까지 본 한국의 미래가 밝다고는 말하지 못할 듯하다. 그렇다면 한국의 미래는 우울하기만 한가? 아니다. 그런데도 변화할 가능성은 여전히 충분하다. 인구학적 시각을 가지고 보면 문제의 원인과 미래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으니, 그에 따라 변화 정책과 전략을 잘 마련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국민이 필요하다. 인구는 인구 개개인이 마치 점묘화같이 어우러져 사회를 형성한다. 의식 있는 개인이 의식 있는 인구를 만들고 의식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규모의 인구라도 어떻게 조합되었느냐에 따라서 사회는 발전하거나 쇠퇴한다. 나라의 교육수준과 연령, 인종, 가구구조, 지리적 분포, 고용상태에 발전하거나 쇠퇴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미래가 불편한 진실처럼 보이지만 불편한 진실이 정해진 미래라면, 정해진 미래 속 좀 더 나은 나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점묘화를 가까이서 보면 조금은 어지럽다.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멀리 떨어져 완성된 그림을 보면 모두가 감탄한다. 처음에는 무엇인지 모를 듯한 점들이 모여서 큰 그림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무엇인지 모를 듯한 점들이 나중에는 그림을 만들어내었던 것과 같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현재라는 시간의 개념으로부터 끌어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질 미래가 있음을 알고 자신의 정해질 미래를 펼쳐나가길 원한다. 모두가 현재를 바라볼 때 미래를 바라볼 수 있다면 누구나 자신의 정해질 미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칼럼 소개 : 사회.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힘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더 알아가기 위해 사회란 분야의 칼럼을 쓴다. 사회는 내가 어떻게 살 것이고, 이곳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스토리다. '사회'라는 세상의 스토리를 읽으며 한쪽 눈을 뜨길 소망한다.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