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다연의 영화칼럼 1] <보이후드> 지금이 순간이 되는 것이다.

12년의 순간들을 3시간으로 보다.


평점 9.5의 어마어마한 영화


네이버 영화 기준 기자·평론가 평점이 9.5로, 평점을 짜게 주기로 유명한 기자와 평론가들이 준 평점 치고는 굉장히 높은 평점을 기록했다. 또한 관람객과 네티즌들의 평점도 8점 후반대로 높은 편에 속했다.



그런데 이러한 평점들은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이름 앞에서 너무나도 당연해 진다. 조금 생소한 이름이라고? 그의 작품들은 전혀 생소하지 않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영화 '스쿨 오브 락'을 만들어냈으며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 일명 '비포 시리즈'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이쯤 되면 9.5점의 평점이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12년간의 촬영,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성장'.


이 영화는 실제로 12년에 걸쳐 촬영을 했다고 한다. 12년씩이나 촬영하며 담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혼가정에서 자란 소년 메이슨의 성장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누구나 청소년기에 겪었을 법한 평범한 일상과 일탈, 반항, 진로에 대한 고민과 혼란 같은 것들로 말이다.

 

하지만 평범한 만큼 지루할 위험도 컸다. 러닝타임은 2시간 45분이었고, 정말 평범하디 평범한 소년이 나와서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보여줄 뿐이었으니까. 그런데도 내가 이 영화를 끝까지 보고 글까지도 쓸 수 있었던 데에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의 '평범하지 않은 성장'이라는 요소가 큰 역할을 해냈다.



메이슨은 이혼과 재혼을 반복하는 엄마 밑에서 꿋꿋하게 성장한다. 영화 자체에서는 이를 부각시키지 않지만, 누구나 느낄 수 있도록 확실히 보여준다. 물론 성장이라고 해서 대단한 대학교에 들어가거나, 엄청난 재능을 발견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메이슨이 안정적이지 않은 환경에서도 묵묵히 '좋은 사람'으로 거듭났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이 '평범하지 않은 성장'이 <인터스텔라>에 맞먹는 러닝타임을 커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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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지금 나의 모습일지도.


평범한 일상 속의 순간과 기억들을 담은 영화이니 만큼 공감되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진로라는 주제가 영화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대학 진학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영화를 보다 보니, 진로에 대한 고민이 제일 많이 보였다.


특히 메이슨이 진로 결정에 있어 갈등하다가, "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 뭘 하고 싶어?"라는 교수님의 질문으로 인해 꿈에 대한 확신을 갖는 부분이 가장 공감됐다. 나 또한 진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고, 그 해답을 친구의 한마디 질문에 의해 찾게 됐기 때문이다. 그 질문도 역시 '내가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 질문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정말 허를 찌르는 질문이었다.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꿈들은 '내가 뭘 하고 싶은지'가 아니라 주변을 의식하고, 나를 타인의 시선 속에 맞춰 생각해낸 꿈들이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영화에서 교수님의 질문은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던 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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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just thought there would be more."


메이슨의 엄마는 결국 3번째 남편과도 이혼하여 홀로 남는다. 그리고 그녀는 메이슨을 대학에 보내면서 이런 말을 한다.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 이 말은 그녀의 복잡한 모든 심경을 모두 대변하며, 다시 한 번 더 떠올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메이슨은 청소년기의 모든 것들과 작별하고는 대학교로 떠난다.


입학 첫날, 메이슨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가지 않고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하이킹을 간다. 그리고 "순간을 붙잡으라는 말이 있잖아. 나는 그 반대라고 생각해. 순간이 우리를 붙잡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시간은 영원하잖아. 늘 지금이 순간이 되는 거지." 라는 대사와 함께 영화는 엔딩을 맞는다. 마지막 대사는 <보이후드>를 완벽하게 완성시킨 대사라고 할 수 있겠다.


엔딩 장면은 주인공이 노을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끝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맞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며 열린 결말로 끝나는 이 부분은 묘한 아쉬움과 애틋함을 남긴다. 마치 오래 알던 사람과 작별하는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이 영화는 조만간 한 번 더 보게 될 것이라고 확언해 마지않는다.





칼럼소개: 지나가며 잊혀지고 사라지는 여운을 잡아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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