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다빈의 뮤지컬칼럼1] 달동네 골목에서 희망을 만나다

뮤지컬 ‘빨래’

매일 밤 촛불이 켜진다. 평범한 우리 소시민들의 분노가 피어 오른다. 보이지 않았던 큰 권력의 힘으로 부당하게 농락당해 온 우리 삶을 보고, 모두가 눈물을 삼키고 있다. '노력만 하면 우리의 내일은 분명 밝으리'라는 믿음으로, 내일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온 하루하루가 억울하고, 점점 살기가 힘들어지는 세상에서 힘든 오늘을 버텨 낼 힘이 이제 더는 우리에겐 없는 듯하다.

 

십 년 넘게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빨래는 이처럼 힘든 오늘을 버텨내며 살아가는 달동네 단칸방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몽골 출신 이주노동자 '솔롱고'와 고향을 떠나 서울로 상경해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나영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주변 이웃들의 삶과 애환을 소박한 감성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무지개 꿈을 찾아 한국으로 온 주인공 솔롱고가 이주노동자로서 경험하는 불평등의 벽을 넘어, 뮤지컬 빨래는 훨씬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지 절단 장애를 가진 자녀의 노모, 비정규직 노동자, 자녀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혼녀 등 우리 사회의 소외된 약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제도적 문제를 서정적 노래와 감칠맛 나는 유머로 그려내며,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다가오게 한다.

 

인종과 민족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가진 이들로부터 폭행을 당한 솔롱고도, 청춘을 바쳐 일해 온 서점에서 사장에게 바른 말 한마디 했다고 부당해고를 당한 지숙도, 그런 지숙의 억울함을 말하다 하루아침에 창고로 쫓겨난 나영도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아니,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부당한 해고와 이유 없는 폭행에도 그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다만 그 상처를 지워내고 덜어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꿈을 꾼다. 내일은 다를 거라고.

 

그들을 괴롭히는 가장 큰 고통은 가난도, 외로움도, 고향에 대한 향수도 아니다. 그들을 억누르고 짓밟는 가진 자들의 횡포이다. 그리고 그 끔찍한 횡포에 맞설 힘이 없다는 처량하고 한심한 현실에 대한 박탈감, 좌절, 그리고 분노일 것이다.

 

이처럼 뮤지컬 빨래는 힘없는 소수가 그들의 배제되고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노래하고 있다. 그들이품푸고 있는 아품의 얼룩을, 아픔의 때를 어떻게 지우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짓누르는 삶의 고통을 긴 한숨과 한바탕의 울음으로 털어내고 희망으로 승화시켜 견디고 있다. 이것이 바로 뮤지컬 빨래가 우리 모두에게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모든 인간이 견뎌내야 할 삶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 고통이 사라질 내일을 믿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우리는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절대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생명력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세상의 흐름에 자신의 삶을 맡겨보는 관조와 순종을 배워야 할 것이다.

 

뮤지컬 빨래속의 그들에 비하면 나의 힘듦은 부끄럽고 미안할 정도이다. 내가 힘들다고 하는 것은 그저 투정 정도의 수준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나를 비난하지 않는다. 공부에 지친 나에게 너무 힘들겠구나, 진짜 수고했어.”라고 말하며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만 같다. 바짝 마른 보송보송한 이불 빨래를 내 어깨에 따스하게 감싸주면서 이렇게 말해주는 것만 같다. “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 시간이 흘러 빨래가 마르는 것처럼 슬픈 네 눈물도 마를 거야.”

 

뮤지컬 빨래를 보는 동안 끊임없이 진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하지만 그 눈물 속에서 미소 또한 멈추지 않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그건 그 속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뮤지컬 빨래가슴 터질 듯 행복한 슬픔을 노래한다. 극장을 나선 후에도 모든 배우가 마음을 모아 우리에게 들려준 그 노래가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바람이 우릴 말려줄 거예요, 당신의 아픈 마음 우리가 말려 줄게요.”



 

칼럼소개 : 뮤지컬에 푹 빠져 사는 철수도, 뮤지컬의 ‘"’"자도 모르는 영희도. 무대 위 작은 세상을 꿈꾸는 이 모두(ALL)를 위한, 고딩 뮤지컬 마니아의 작은 외침(CALL). 일상에 지친 모두를 위한 뮤지컬(MUSICAL)의 응답을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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