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진의 사회 칼럼] 모르는 척하다가 모르는게 되기 전에

"너 괜찮아?"라고 상대방이 물어보면 우리는 "아니, 안 괜찮아"라고 하지 않는다. 정말 내가 괜찮든 괜찮지 않든 일단 괜찮다고 한다. 경쟁 사회 속에서 나의 감정을 들켜버리는 기분은 왠지 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화나고 상처받고 속상하지만 애써 그런 내 마음을 모른척한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잘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득 집에 들어왔을 때 꾹꾹 눌러왔던 내 마음이 왈칵 터져버리는 날,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였는데 왜 이렇게 슬픈지 알 수 없는 때가 있다.  얼마나 많은 감정이 모여있으면 이게 슬퍼서 우는 건지, 화나서 우는 건지, 우울해서 우는 건지 내 마음을 내가 모른다. 

 

 

순간순간 상황 속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을 우리는 모르는 척한다.  그 순간에만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나의 진짜 감정을 우리는 애써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면 그 감정들이 서서히 사그라들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쌓인 감정들도 계속 모르는 척 무시해온 사람들은 언젠가 알고 싶어도 알 수 없게 된다. 어떻게 감정을 받아들이고 해소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모르는 척하다가 정말 모르는 게 된 것이다. 

 

'감정이 메말랐다'는 말, 나는 이 말이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말로 들린다. 감정이 메말랐다고 한다면 과하게 이성적이고 감성적이지 못 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감정에 대응하는 방법을 모르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같다. 나는 요즘 방영되는 드라마들이 좋다. 별거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담아낸 드라마들이 많다. 전에는 판타지적이고 영웅적인 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들이 많았다면 최근엔 특별한 사건 없이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작품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고 울었다는 글,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글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드라마를 보면서 사람들은 어쩌면 그 드라마 인물 속에 자신을 대입해 자신이 울고 자신의 마음이 따뜻해지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나는 이렇게 점점 별거 아닌 감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는 무언가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 각자의 노력도 필요하다. 아이처럼 숨김없이 길거리에서 감정을 표현해보라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남들이 괜찮냐고 물어볼 때 정말 내가 지금 어떤지 내 감정에 귀 기울여보는 것, 힘든 일이 있었던 날에는 집에 와서 다시 한번 되새기며 울음이 나면 참지 말고 우는 것처럼 내 감정이 나에게 노크할 때 모른척하지 않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살면서 느끼게 될 수많은 감정들은 나를 한층 성장시킬 수 있는 소중한 기회들이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강하고 화려한 건 말 그대로 빈 껍데기다. 모두가 겉모습을 꾸미는 데는 온 힘을 다한다. 남들이 보는 내 모습이 멋있고 예쁘고 잘나야 하니까. 하지만 자기 내면까지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니란걸, 그 당연한 사실을 빨리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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