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현의 예술 칼럼] 동물학대를 예술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사람들은 항상 예술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져왔고 더 시대가 나아질수록 그 관심은 더 뜨거워지고 있다. 그리고 비평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작품에 대해 비평하고 평가하면서 예술이 대중들에게 많은 영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또한 예술의 범위가 넓어지고 다양해짐에 따라 작품의 재료도 다양해지고 있으며 재료가 작품에서 큰 부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재료에 따라 같은 주제의 작품이라도 사람들은 감동을 느끼기도하고  불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  충격을 받고 이로 인해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그런데 작품에서 재료를 무제한으로 허용해도 되는가? 그렇다면 동물도 예술의 재료로 사용될 수 있는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동물도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대중들의 인식이 변화함에 따라 어떤 것을 동물 학대로 분류해야 하고 어떻게 금지해야 할지에 대한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예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 동물이 재료로 필요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동물들은 죽기도 하고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를 동물 학대로 보고 금지해야 하는지, 아니면 작가의 표현의 자유로 보고 하나의 예술의 범위로 포함시켜야 할지는 우리 모두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이다. 


이미 많은 작품들이 동물을 주제로, 동물을 재료로 예술작품들을 제작해왔고, 제작하고 있다. 동물을 재료로 작품을 하는 대표적인 작가로는 데미안 허스트가 있다. 그는 동물의 사체를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넣어 전시하는 작품을 제작해왔다. 동물을 그대로 넣기도 하고 단면 부분으로 잘라 속이 다 보이도록 하고 원래 형태대로 이어서 전시하여 사람들이 그 사이를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하기도 하였다. 또한 수천 마리의 나비를 사용하여 화려한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살이 있는 마음속에 존재하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모든 것에 본질을 받아들임으로써 얻은 일종의 편안함 등 ‘죽음’을 주제로 파격적인 시도를 하였다고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동물 학대라고 비난받아왔다.1

 

사체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다면 실제로 살아있는 동물을 재료로 사용하는 사례도 있다. 칠레 출신 예술가 마르코 에바 로티는 살아있는 금붕어 10마리를 믹서기에 넣어 전시하면서 관람자가 믹서기의 버튼을 눌러볼 수 있도록 했다. 버튼을 누르는 순간 금붕어는 산산조각 갈려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전시 중 갈려죽은 금붕어들이 있고 믹서기 전원 차단 요구를 거부한 디렉터는 기소되기도 했지만 금붕어가 즉사하여 느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유로 무죄 선고를 받기도 했다. 코스타리카 출신 예술가 기예르모 베르 가스는 실제 굶어죽어가는 개를 전시장에 묶어 전시하기도 했다. 다행히 전시가 돕고 싶은 관객들이 개를 데리고 갈 수 있는 형태로 바뀌어 여러 개들이 입양될 수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항의와 비난을 받았던 작품이다.2

 

 예술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동물의 생명에 지장을 주면서까지 하는 행위를 예술로 인정할 수 있는가? 그것은 폭력을 휘두르거나 살인을 하고 예술로 보라는 것과 같을 수 있다. 물론 대중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는 것이 동물을 재료로 가능할 수 있지만 만약 재료로 쓰이는 그 동물이 나의 가족과 같은 존재라면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가정은 꼭 필요할 것 다. 이 세상에 작든, 크든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는 말처럼 우리는 모두 예술의 범위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보고 사회의 일원으로써 이런 식으로 희생되는 동물의 생명을 지켜주어야 한다.

 

각주

1.참고-https://namu.wiki/w/데미안%20허스트
2.참고-http://news.karts.ac.kr/?p=5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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