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원의 문학 칼럼] 비좁은 그릇을 넓히는 일

이성복 시인의 <그 여름의 끝>을 읽고

누군가 고등학생이 되어 생긴 변화에 관해 묻는다면 우선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올라갔고 내신공부, 대회 준비 등 해야만 하는 것들에 치여 하고 싶은 것들을 포기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됐다 답할 것이다. 또한 시험을 보고 점수와 등급이 나오면, 이에 일희일비하며 자신의 한계를 그 안에 가두게 됨으로써 자신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거나 모든 일에 무력감을 느끼는 일도 생겼다. 이러한 답변을 듣고 필자가 새삼스러운 엄살을 부리는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면에는 그만큼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책임감 있게 해내는, 힘든 일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필자의 노력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것처럼 모두에게 힘듦의 기준은 사뭇 다를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지쳐 포기하고 싶은 생각과 무력감은 반갑지 않은 손님처럼 찾아온다는 사실은 매한가지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앞선 답변에서처럼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내가 배우고 성장한 일을 찾아보는 것이다. 이는 필자가 공유하고자 하는 이성복 시인의 시집 <그 여름의 끝>의 서문에 ‘비좁은 그릇을 넓히는 일로 표현된다.

 

 

이성복 시인을 알고 있는 학생들은 많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능이나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지 않기 때문인데 근래 읽은 시집 중 가장 마음이 움직인 시인이다. 그의 시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시집 <그 여름의 끝>은 연애 시적인 형태로 대개 세상에 대한 시인의 깊은 이해, 자신과 타자 사이의 일어나는 사랑과 애정의 중요성에 대한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어려운 수사 표현이나 단어가 아닌 비교적 평이하고 순탄하게 읽히는 문체로 쓰여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단순하다 볼 수 있는 사랑 이야기에서 삶을 관통하는 깨달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이 시집에 묘미라 느껴진다.

 

특히 시집의 제목과 동일한 ‘그 여름의 끝’이라는 시에서 그러했는데 이는 시집의 서문에서 필자가 한없이 위로받은 ‘비좁은 그릇을 넓히는 일’과 이어진다 할 수 있겠다. 시에서의 여리디여린 ‘백일홍’이 여름이 다 가는 동안 폭풍과 자연의 거대함을 지나왔지만, 그의 ‘절망은 절대 쓰러지지 않았다’고 나타난다. 여기서 절망의 우두컨함은 필자에게 의문점을 제기했다. 우리는 보통 절망은 쓰러져야만 좋은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인은 우리의 절망이 외부의 힘으로 꺾이지 않아서 되려 다행이라 이야기하며 결국 참다운 절망은 자신의 내면에서 쓰러지고 반성하고 복기하는 일련의 과정이 지나야만 비로소 이겨낼 수 있는 것이라는 필자의 감상을 끌어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시험에서 실수하거나 대회에서 상을 타지 못하는 등 어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함에 의한 방황은 절망을 안겨주지만 그런 절망이 외부의 힘에 의한, 어떤 절대적 어둠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또 얼마나 다행일까. 그러니, 외부의 기준이 아닌 내가 가진 기준으로부터 단 몇 밀리라도 그릇을 넓혀가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이 <그 여름의 끝>을 읽고 각자가 지닌 절망의 끝과 밝은 희망의 시작을 꿈꾸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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