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채원의 철학칼럼 11] 인간은 이기적인가

아담 스미스 비판

신선한 요구였다. 시장을 이기심으로 움직이자고 주장하는 것은, 이타심을 갖고 이기심을 배척하라는 기존 사회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요구였을 것이다

 

이 신선한 요구는 주장되었을 당시의 시장에 잘 부합하였고 현재에도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에 도달해서는 이 주장의 기본적 전제인 인간의 이기적 본성에 점차 의문이 생긴다. 인간은 과연 철저히 이익만을 추구하는 존재인가?

 

 

 

 

마이클 샌델은 오늘날의 시장 경제에 포함되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존재함을 강조한다. 만약 우리가 시장 경제를 가지고 있는 형태가 아니라 시장 사회가 되어버린 형태로 변하게 된다면, 그 시장은 우리 사회에서 도덕을 밀어내기 때문이다. 시장이 도덕을 밀어낸다는 것은 곧 도덕이 시장에서 사고파는 상품으로 전락함을 뜻한다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당연히 기대할 수 있어야 할 것들이-예를 들면 규칙의 준수, 배려, 예의 등-사고파는 상품이 된다면, 우리는 타인이 그러한 행동을 할 것을 요구할 때 돈을 지불해야만 한다. 즉 기본적인 윤리를 상대방에게 당연하게 기대할 수 없게 됨을 뜻하고 이는 사회에서 도덕의 부재로 이어진다.

 

 

 

 

로버트 노직이 최소국가론을 주장하며 정부의 중립성으로부터 얻어지는 더 큰 이익을 내세우는 것을 마이클 샌델이 정부의 적절한 규제를 통해 공동선을 실현할 때야말로 사회 속 도덕의 존재에 대한 믿음과 함께 우리 사회가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반박한 것은 같은 논리이다

 

또한, 칼 폴라니는 이기심만으로 운영되는 시장의 실현 불가능성을 말하며 만약 그것이 이루어지려고 하더라도 악마의 맷돌에 의해 자연적으로 붕괴된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가치들을 악마의 맷돌이 부숴버려 사회가 파멸하게 된다는 것이다

 

악마의 맷돌이 나타나기 전에 사람들은 사회 속 이기심을 조절하는 운동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이기심이 아닌 이타심을 불러일으키는 운동을 하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이기심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두 가지 사례로부터 알 수 있다. 첫째는 트롤리 실험이다. 사람들은 어떤 상황이 주어지느냐에 따라 5명의 희생과 1명의 희생 중 선택이 달라진다. 언제나 1명의 희생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이 언제나 최대의 이익, 즉 이기심을 선택하지 않음을 뜻한다

 

둘째는 뉴욕의 택시기사들이다. 연구결과는 그들이 비가 오는 날에는 일찍 퇴근하고 날씨가 맑은 날에는 늦게 퇴근함을 보여준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날에 일찍 퇴근한다는 것은 최대이익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고, 그것은 자신들이 정해놓은 기준점에 도달하기만 하면 이익의 대소 여부에 관계없이 만족함을 뜻한다

 

그래서 행동경제학은 사람들이 이기적·이성적으로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행동함에 주목하고 있다.

 

 

 

사람에게 이기심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더 존재하는가? 현대 시장에서 가장 크게 보이는 한 가지는 바로 이타심이다. 먼저 법을 보자면, 현대 민법의 큰 변화를 통해 알 수 있다. 과거의 법은 자유방임주의를 따랐다. 정부는 중립자로서 존재하며 기업의 활동에 그 어떤 규제도 가하지 않았고, 덕분에 기업은 매우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최소국가의 폐해는 매우 심각했다. 사회 곳곳에서 빈곤, 실업, 빈부격차 등 많은 문제점이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중립자로서의 역할을 벗어버리고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게 된다. 민법의 대원리 중 하나였던 사적 자치의 원칙에 제한을 가했다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에 유용하게 쓰이던 이 원칙을 어떤 상황에서도 계약은 모두에게 공정해야 한다는 계약 공정의 원칙으로 바꾼 것이다. 이것이 지금의 민법 기본 원칙이다. 계약 공정의 원칙은 사회 질서에 부합하는 개인과 기업의 활동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이기심 추구에 법적으로 제한을 가하는 것이다. 법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아담 스미스의 주장에 반박하였다.

 

 

다음은 기업이다. 오늘날 기업이 사회로부터 가장 많이 요구받고, 어느새 기업의 기본적 자세로 자리매김한 것은 사회적 책임이다. 애로우와 보겔과 같은 학자들은 사회적 책임을 오히려 강조했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더 큰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책임을 기업이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 기업 홍보 효과를 발생시키면서 기업이 생산하는 상품의 수요를 늘리게 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익을 위해 사회적 책임을 준수하는 것이니 결국 다시 이기심의 추구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겠지만 그것은 기업이 어떤 마음으로 행동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자신을 자각하고 그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는 사회적 책임의 본 목적을 실현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은 확연히 다르다. 또한, 오늘날과 같은 정보사회에서 소비자는 그것을 구별하지 못할 만큼 아둔하지 않다.

 

현대의 소비자는 그 어느 때보다 윤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경향이 크다. 합리적 소비가 아닌 윤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경향은 소비자가 개인의 이익보다는 환경과 인권 등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자신이 윤리적 소비자라는 부분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우월감을 드러낼 수 있는 현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것이 심리적으로 윤리적 소비를 촉진시키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과 연대해서 윤리적 소비를 하는 움직임은 불매운동, 공정무역 친환경 제품 소비 등 다채로운 모습들로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다.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비자가 이기심을 놓고 윤리, 이타심을 찾게 된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시장은 이기심보다는 이타심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그리고 이 경향은 우리에게 아담 스미스의 이론이 완벽하게 부합하지 않음을 방증하고 있으며 사회 복지 증진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인간의 본성이 성악이든 성선이든 간에 치세의 방법은 사회에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타심을 극대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기심을 극대화할 경우 우리 사회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고, 이미 과거에 그와 같은 현상으로 인한 피해를 우리가 맛보았었기 때문이다

 

이기심을 중심으로 하는 시장 구조는 존재할 수 없으며 시간의 흐름은 시장 구조에 이타심이라는 구동 원리를 추가하였다. 시장 경제는 우리의 소유물일 뿐, 향해야 하는 목적이 아니다.

 

 

칼럼 소개 : 철학은 우리에게 낯선 학문이 아닙니다. 한 가지 논제에 수많은 가치와 관점을 담을 수 있고,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흥미로운 학문이며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는 따뜻한 학문입니다. 칼럼을 통해 쉽고 재미있는 철학으로 한 발짝 다가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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