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모의 역사칼럼 4] 광해군의 일생과 그에 대한 평가

광해군의 불우한 세자시절

 

광해군은 조선의 15대 왕으로 14대 임금 선조와 그의 후궁 공빈 김 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후궁의 장남도 아닌 차남이 왕의 자리인 용상에 앉은 과정은 다이내믹했다. 선조는 정비인 의인왕후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고, 자신이 총애하는 후궁 인빈 김 씨 사이에서 신성군이 있기 때문에 그를 세자로 책봉한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선조와 같이 의주로 피난한 신성군은 피난 도중 죽고, 선조는 공빈 김 씨의 포악스러운 장남 임해가 아닌 광해를 세자로 선택한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왕이 후계자를 선택할 때 명나라 황제의 최종적인 허가를 얻어야 했기에 명나라는 장남 임해를 두고 차남 광해를 왜 후계자로 세우냐며 광해를 세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선조는 후계자 문제로도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이때 선조는 자신보다 서른두 살 어린 인목대비를 후궁으로 들이고, 자녀 영창대군을 얻는다. 영창대군은 두 살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의 적자이기 때문에 정통성이 있어서 광해군은 세자의 자리에서 밀려날 두 번째 위기를 맞는다. 이 문제로 조선의 조정은 영창을 지지하는 소북과 광해를 지지하는 대북으로 나눠졌다.

 

그러나 선조의 마음은 영창대군에게 향했기 때문에 영창대군을 반대하는 대북파를 유배시키고 조정에서 힘을 쓰지 못하게 숙청을 단행했다. 하지만 선조가 갑자기 서거하게 되면서 소북파는 인목대비에게 수렴청정을 요구했으나 대비는 영창이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광해를 계획대로 왕에 오르게 한다.

    

아쉬운 광해군의 정치적 결함

 

광해가 왕이 되자 숙청되었던 대북은 다시 부활했다. 그들 중에는 정인호, 이이첨, 허균이 있었고, 대북파 외에도 다른 세력이었던 남인과 서인에게도 정치세력의 화합이 필요하다며 조정의 요직을 공평하게 준다. 이런 정치세력의 조화와 연합 구도는 광해군이 즉위 초 업적을 쌓을 수 있는 좋은 작업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좋은 화합의 모습은 오래가지 못했다. 북인 남인 서인의 정치세력은 문묘 종사를 두고 갈등을 일으킨다.

 

이것으로 인해서 정치구도는 심각하게 대립하고 여당과 같았던 북인은 광해군을 등에 업고 본격적으로 권력을 휘두른다. 먼저 그들은 타 정치세력의 명분이 되는 왕족 즉 임해군과 영창대군 인목대비를 제거하려고 광해군을 이용해서 두 대군을 왕의 손을 이용해 제거하고, 여자이기 때문에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았던 인목대비는 별궁에 가두고 폐위한다.

 

 

자신들이 명분으로 일어설 수 있는 왕족들이 사라진 남인과 서인은 자신들을 항상 정치적 적수로서 노리고 있는 대북파에게 먹잇감이나 다름없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리고 대북파는 그들을 대거 숙청하고 조정의 권력을 꽉 잡는 동시에 내면적으로도 광해군의 마음까지 잡으면서 왕이 자신들만 의지하게 만들었다. 광해군의 최대 실수가 바로 이것으로 생각한다. 본인이 어려운 시절 자신을 지지해주었던 정당을 냉정한 정치판에서 너무 밀어주다 보니 대북파가 오만해져 인조반정의 원인을 타 세력에게 제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서인은 정치판의 불공정함과 광해군의 대북파가 저지른 인목대비와 두 대군을 죽인 패륜행위를 명분 삼아 반정의 정당함을 알리고, 16대 임금의 자리에 오를 사람을 능양군으로 선택했다. 능양군은 선조의 손자이자 선조의 후궁인 인빈 김 씨의 아들(정원 군)의 둘째 아들이다. 그들은 서인 대신들의 사병을 모아 반정을 일으키고 창덕궁으로 쳐들어가 광해군을 왕위에서 쫓겨나게 하고 강화도로 유배를 보냈다. 나중에는 제주도로 유배를 보내고 광해군은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광해군에 대한 올바른 재평가

 

 

광해군이 폭군인가 아니면 중립 정책으로 전쟁의 위험에서 백성들을 구제한 슬기로운 군주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많이 있지만 그의 정치적 상황이나 심리적인 상황을 이해했을 때 그는 자신의 어려운 즉위 시절에도 항상 백성들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조선의 몇 안 되는 참된 성군이었다. 오늘 날의 역사적 평가의 대다수도 그를 성군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세종이나 정조 대왕처럼 완전히 국민 모두에게 인정받는 왕은 아니다. 광해군이 재평가 되어 모두가 인정하는 성군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