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빈의 가요칼럼 6] Born to be blue, 쳇 베이커

단짠단짠 ⑥ - 재즈 천재의 비극적 삶



작년 하반기 영화 라라랜드의 흥행으로 뜻밖의 재즈 열풍이 불면서, 주변에서도 재즈곡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이 잦았다. 마니아까지는 아니지만 재즈라는 장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여러 곡을 추천해주면서도 꼭 덧붙이는 말이 있다. “쳇 베이커 앨범은 전곡을 꼭 들어야 해.” 쳇 베이커(Chet Baker), 본명 체스니 헨리 베이커(Chesney Henry Baker). 재즈 애호가들의 영원한 블루인 그의 음악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가 지나온 인생의 길을 알아야 한다.


쳇 베이커는 오클라호마 주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아버지는 전문 기타 연주자였다. 베이커는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하면서 음악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1952, 쳇 베이커는 미국의 재즈 알토색소폰 연주자인 찰리파커(라라랜드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의 사이드 맨으로 재즈계에 입문했다. 그는 찰리파커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아쉬운 건 음악만을 동경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찰리파커는 일생을 마약에 취해 살았고, 베이커는 그를 보고 예술가의 삶이란 저렇게 고독하고 처절한 것이다라고 인식했을 것이라는 평이 많다. 베이커는 1959년 이태리에서 마약 소지 혐의로 처음 투옥된 이후, 약물을 끊어내지 못하고 30대의 꽃 같은 젊음을 병원과 감옥을 오가며 허비했다. 그렇게 길거리를 전진하던 그는 68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깡패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하여 트럼펫터로서는 치명적인, 치아를 잃는 사고가 나고 유럽으로 건너가 은둔생활을 하게 된다. 그렇게 떠난 유럽에서 여러 번 재기를 시도했지만 정상적인 음악 활동을 하기는 어려웠고, 그는 이태리, 네덜란드 등지를 떠돌며 말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80년 초, 베이커는 드디어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그리고 1988,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는 한 호텔의 2층 창문에서 떨어져 추락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매우 수수께끼 같은 죽음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가 자살을 했을 리 없다는 의견들이 많다.


쳇 베이커는 마약 중독과 치아를 잃은 불운한 사고로 인해 외모가 많이 망가졌지만, 한때 재즈계의 제임스 딘이라고 불릴 만큼 매우 잘생겨서 여성 팬들이 굉장히 많았다고 한다. 특히 핏기가 없는, 조금은 예민해 보이는 용모와 함께 반항아라는 명성을 지녀 곧 서해안 쿨재즈의 포스터보이가 되었고, 절제된 연주와 신경질적인 흥분과 애조 띤 감상이 결합된 우수 짙은 스타일로 일반 청중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살짝 높으면서도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는 그의 전성기보다 오히려 오늘날에 더 인기가 있기도 하다. 꼽기 어렵지만, 쳇 베이커의 수많은 명곡들 중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세 곡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Born to be blue>

 

쳇 베이커의 인생과도 같은 곡이다. ‘나는 블루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 블루스, 어두움 두 가지의 중의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역시 그에게 있어 블루는 슬픔과 우울감이 아니었을까 한다. 가사를 보면, 'When there's a yellow moon above me(노란 달이 내 위에 있을 때면)' 'They say there's moonbeams I should view(사람들은 나에게 봐야할 달빛이 있다고들 해)' 'But moonbeams being gold are something I can't behold(하지만 금색 달빛을 난 볼 수 없어)' 'Cause I was born to be blue (왜냐하면 나는 블루로 태어났기 때문에)' 라고 자신의 정체감에 대해 자조적으로 정의를 내리는 부분이 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의 음악과 인생을 평가할 때 블루라는 명칭을 자주 붙이고는 한다. 작년 여름 개봉했던, 쳇 베이커의 인생을 다룬 영화의 제목도 <Born to be blue>이다. 그의 생애가 궁금해졌다면 영화를 감상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My funny valentine>

 

핏기 없이 잘생긴 외모의 트럼펫터가 나지막하게 부르던 이 곡은, 88년에 약물 중독으로 엉망이 된 얼굴의 노인이 지치고 희미한 목소리로 읊조리게 된다. 쳇 베이커의 히트곡이자 마지막 공연의 엔딩곡이였던 <My funny valentine>, 영화 <Born to be blue>에서 언급되었던 마약 중독에 대한 그의 변명에 잠시의 수긍이 가게 한다. 극 중 쳇 베이커는 마약을 하면 자신의 내면의 감정이 음들에 스며든다고 표현한다. 실제 베이커가 한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곡을 들으면 정말 음계마다 그의 방황과 고뇌, 우울함이 잔뜩 묻어져 나온다.

 

<I fall in love too easily>

 

쳇 베이커의 음악에서는 청춘의 냄새가 난다. 재즈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뮤지션은 수없이 많지만, ‘청춘의 숨결을 이토록 선명하게 느끼게 하는 연주자가 달리 있을까?” 무라카미 하루키가 쳇 베이커를 평한 말이다. 이 곡에서는 그의 그런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다. 베이커가 20대 중후반의 나이에 부른 곡. 아직 어둠의 세계에 무너지기 전인 청춘의 가사가 인상적이다. ‘나는 사랑에 너무 쉽게 빠져요. 나는 사랑에 너무 빠르게 빠져요.’ 단순하게 반복되는 이 구절에 청춘의 냄새가 스며있다. 청량하면서도 그의 음울함이 여전히 남아있는, 참 특이한 곡이다.

 

아직도 그에 대해서는 많은 말들이 오간다. 수수께끼 같은 죽음의 전말도 그렇지만, 과연 마약과 함께한 음악의 길이 옳은 길일까, 또 그를 넘어서서 예술의 도덕적 허용치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하는. 영화 <Born to be blue>의 마지막에서 베이커는 사랑하는 연인 대신 자신의 음악, 즉 약물을 택한다. 그 누구도 그에게 마약을 한 것에 대한 용인을 하지는 못하지만, 다수의 재즈 애호가들은 그의 음악이 약물중독으로 인한 쇠락과 고통으로 더욱 빛을 발했다고 한다. 힘없이 툭 내려놓는 연주와 노래가 오히려 델리케이트한 음을 창출해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초창기 음악을 더 좋아하는 팬으로서 나는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기 힘들다. 자신의 몸과 인생을 망가뜨리며 하는 예술이 과연 건강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글쎄, 그에 대해 몇 마디로 정의내리기는 매우 어렵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가 남긴 음악들이 여전히 많은 이들의 청춘을 적시고, 또 이렇게 비오는 날이면 문득 문득 찾아와 감정을 흠뻑 적신다는 것이다. 밖은 여전히 자잘한 천둥소리와 함께 빗방울이 스치고, 나의 이어폰에서는 그가 삶을 읊조리고 있다. 쳇 베이커, 그는 영원한 재즈의 블루이다.





칼럼 소개: 감정의 올을 바느질하는, 덜 여문 글을 씁니다. 음악과 문학, 가요와 시. 장르의 경계를 적당히 허물어가며, 재미있고 다양한 각도의 견해를 담은 '단짠단짠'한 칼럼을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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