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애의 사회칼럼 5] 불편한 시선 속 아름다움

감각적인 기쁨을 주는 대상의 특성으로, 마음을 끌어당기는 조화(調和, harmony)의 상태. 이를 우리는 아름다움이라고 말한다. 언제부터인가 아름다움의 기준이 ‘미’를 중요시하는 기준이 되었을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내면의 조화가 아닌, 타인이 원하는 아름다움으로 바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원한다면 서슴지 않고, 나다움을 포기하고 목 졸라 버리고 만다. 아름다움의 기준과 정의가 언제부터인가 왜곡되고 있었다. 왜곡된 정의로 인해 많은 사람이 방황하며 살고 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고, 나다운 행동을 하고 있지 않은 모습이 되어버렸다. 타인의 칭찬이 단지 좋아서, 그것이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타인의 눈에 비치는 나의 모습이 아닌 거울에 비치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지만 나보다 세상의 왜곡된 ‘아름다움’의 기준과 정의 때문에 가장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장애인’들이다.


Disabled, Useless, Worn-out이 의미들은 장애인들을 나타내는 단어들이다. 필요 없는 존재이며, 고장 난 존재라는 것이다. 정상적이지 않은 하나 때문에 고장 났다고 말하고, 사회에서는 필요 없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과연 정상적인 사람이 있을까? 정상적인 것은 없다. 보통이라거나 전형적인 것은 있어도 정상적인 것은 없다. 이러한 사람이 있어도 특색 없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정상에 가깝다.’라는 것에 대한 가치관을 가능성과 잠재력과 같은 것으로 바꾸기만 한다면 그들은 더욱더 많은 능력을 끌어낼 수 있고, 그들의 귀중하고 값진 능력들을 사회와 함께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없으므로 인한 아름다움이 있다. 각 사람은 다르기에 아름답고, 다르지만 조화를 이루는 것이 사랑스러운 것이다. 꽃들 하나하나도 같지 않고 다르므로 아름다운 것이다. 각기의 모양새가 다른 꽃들이 모여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답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특이하고 뭔가 조금 더 다른 것에 호감을 느끼기만 하지, 실제로 행하지 않는다. 앞에서 보았던 장애인의 정의는 기존의 장애인들을 더 장애인으로 부추기게 된다. 장애인에게는 없었던 마음의 장애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자신 안에 있던 가능성과 잠재력을 마음의 장애 때문에 끄집어 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처럼 사회는 장애인들을 끄집어내지 않고 오히려 내버려 두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진정한 장애란 억눌린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억눌려서 아무 희망도 없는 마음이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아이 같은 호기심이나 상상력도 없는 상태와 같다.

만약 대신에, 마음속에 희망을 품게 하고 자신과 타인의 내면의 장점을 볼 수 있고 호기심과 상상력이 가득하도록 힘을 북돋아 준다면 진정으로 그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가치관을 마음에 품게 된다면 그들은 새로운 현실과 새로운 존재의 길을 만들게 된다.


교육(education)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는 “educe”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이것은 안에 고여 있는 것을 밖으로 뻗어낸다는 의미다. 즉, 잠재력을 끄집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장애인들의 잠재력을 꺼내는 것, 아이들의 가능성을 가능성답게 만들어주는 것, 서로서로 어울려 서로의 숨겨진 것들을 사랑해주는 것. 이것이 교육이다. 그들의 잠재력을 꺼내줄 때 우리 사회는 다르기에 더 아름다워지게 될 것이다.





칼럼 소개 : 사회.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힘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더 알아가기 위해 사회란 분야의 칼럼을 쓴다. 사회는 내가 어떻게 살 것이고, 이곳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스토리다. '사회'라는 세상의 스토리를 읽으며 한쪽 눈을 뜨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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