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말있어요

편견으로 판단해 드립니다?

지금 이대로, 나는 나대로

  


어릴 적 한 번쯤 나만 아는 지우개나한테 뭐든 지울 수 있는 지우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상상 한 적 있다나 오늘 영어시험 망쳤어……. 하루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내가 왜 그랬지, 조금 더 고운 말로 달랠 수 있었는데등등, 이미 저질러진 일을 두고 후회하고, 잊어버리고 싶어 하고, 시간을 돌리고 싶어 한다. 그럴 때마다, 더욱 간절히 나만 아는 지우개를 갖고 원한다.


한 아이가 말한다. “엄마, 나 커서 어떤 기억이든 지울 수 있는 걸 만들 거예요!” 엄마는 그런 아이가 귀엽다는 듯이 웃으며 말한다. “그래, 우리 아기는 커서 꼭 그런 사람이 되렴.”


하지만 중·고등학생이나 직장을 다니는 어른이 저러한 물건을 만들겠다고 한다면 돌아오는 시선은 싸늘할 것이다. “하루를 살아가기도 벅찬데 무슨 쓸데없는 상상이야! 애도 아니고.” 상상은 누구나 할 수 있는데 말이다.

    

   

어린아이가 상상을 한다. 학생과 직장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상상을, 투명인간이 되는 상상을, 순간 이동을 하는 상상을 한다. 상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때문에 ‘상상은 어린아이들만’이라고 말하는 건 편견이다.


예를 들어, “아파트는 잘 사는 사람이, 빌라는 못사는 사람이 살아야 해” 또는 “소득이 많은 사람은 소비도 많이 해야 해” 라고 정해진 적 없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뿐 누군가가 정해 준 말이 아니다. 정해지지도, 정해주지도 않았지만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그걸 편견이라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 물론 지금도 어리지만, 타임머신 개발이 언제 되는지 검색해 본 적이 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편리함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나중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있는 건 엄청난 핸디캡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일에 더 완벽히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 편견이었다. 준비만 잘한다면 타임머신은 필요 없다. 결과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으므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있는 건 오히려 역효과가 된다. 그리고 결과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누구에 의해 바뀌는지는 상관없다. 결과는 미지하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 보자. 바쁜 하루하루를 살면서 우리는 보람을 느낀다. 바쁜 하루란 일이 많다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바쁘게 살아야만 보람이 높을까? 누구도 그렇다고 정하지 않았다. 보람은 말하는 이의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다. 적은 일을 해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보람이 높다.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많은 일을 하는 사람보다 만족감도 크다. 정해진 건 없다. 편견도 없다. 그러니 오늘, 내일에 급급해할 필요가 없다.



여기 바쁜 하루를 사는 A와 B라는 친구 두 명이 있다. A는 하루에 5시간 공부하고, B는 하루에 3시간 공부한다. “A는 볼 때마다 공부하고 있더라. 분명히 공부를 잘 할 거야.”, “B는 매일매일 놀기만 하더라. 공부는 도대체 언제 하는지 모르겠어.” 위에 내가 들었던 예시와 유사한 경우다. 무엇이 기준이냐에 따라 다르다. 공부량이 많아야만 공부를 잘할까? 공부량보단 높은 집중력이 관건이다. A가 5시간을 공부해도 그 시간만큼 집중하지 않는다면 3시간을 공부하는 B와 다를 게 없다.


사람들이 나를 판단하는 시선은 여러 가지다. 문제는 시선, 즉 '그 기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는지’ 에 따라 달라진다. 일이든 활동이든 각자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다르다. 남들과 다르다고 잘못된 게 아니다. 틀에 얽히지 말고, 당당해지자. 나를 판단하는 기준에 기죽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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