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원의 가요칼럼 2] 가요는 시대를 담는다

음악을 들으면 세상이 보인다

원더걸스의 히트곡 <Tell me>, 빅뱅의 <마지막 인사>. 제목만 들어도 저절로 멜로디를 흥얼거릴만큼 익숙하고 유명한 곡들이다. 이 두 곡의 공통점은 2007년에 가요계의 인기 차트를 휩쓸었다는 것이다. 자그마치 10년 전 이야기이다.


10년 전 좋아하던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찾아보자. 반가우면서도 낯설고, 조금은 촌스러운 느낌도 들지 모른다. 10년 사이에 시대가 변화하고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10년 전 유행하던 가요 장르와 현대의 인기 장르는 확연히 다르다. 뮤직비디오 속 연예인들의 의상도, 메이크업도, 안무도 모두 시대와 함께 발전을 거듭해온 것이다.


방금 설명한 요소들은 우리의 생활과 함께 변화해온 것들이다. 우리가 선호하는 스타일과 유행하는 트렌드가 그대로 반영되었기 때문에 단번에 눈치채기 어렵다. 하지만 가요 속에는 분명히 그 시대가 녹아있다. 지금부터 귀만 기울이면 시대가 들리고 세상이 보이는 노래 몇 곡을 소개하려고 한다.


1. 일제강점기의 대중가요, <나그네설움>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국마다 눈물 고였다

선창가 고동소리 옛 님이 그리워도

나그네 흐를 길은 한이 없어라

<나그네설움 - 조경환 작사, 이재호 작곡>


이 노래는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로 있던 1940년에 발표된 대중가요이다. 광복 이전 대중가요 중 음반 판매량이 가장 많은 곡으로 알려진 <나그네설움>은 당시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민족의 상황을 나그네에 비유하여 피압박민족의 설움을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외에도 <황성 옛터>, <눈물젖은 두만강>과 같이 일제의 식민통치에 의한 울분과 비탄을 담은 작품들이 많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 불렸던 대중가요 437곡을 자료로 조사한 결과, 순서대로 “울다, 사랑, 눈물, 님, 속, 밤, 가슴, 고향, 좋다, 꿈, 그립다, 마음, 길”라는 단어가 빈도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울다’, ‘눈물’ 등의 단어가 빈도 높게 나타난 것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인 ‘한’의 정서에 시대적인 상황이 적절하게 더해져 나타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 밖에도 잃어버린 조국을 ‘님’이라고 칭하며 ‘그립다’고 표현한 경우가 많다. 또한 ‘밤’이라는 단어는 일제 강점하의 암울한 시대 현실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라는 점에서 당시 우리 민족의 비애를 느낄 수 있다.


2. 클레멘타인 (Oh, My Darling Clementine)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이 가사는 <클레멘타인>이 1919년 3·1운동 직후 한국에 전해지며 음악가 박태원이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변형한 노랫말이다. 원래 <클레멘타인>은 1849년 돈을 벌기 위해 금광을 찾아 서부의 캘리포니아로 몰려왔던 포티나이너(1849년 금광 경기로 캘리포니아에 밀어닥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노래이다. 이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며 영양실조와 인디언의 습격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또한, 자신들이 캐낸 황금이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자본가들의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허탈감에 빠져 '동굴과 계곡에서 금맥을 찾던 한 포티나이너에게 클레멘타인이라는 딸이 있었지…'로 시작하는 자조적인 노래를 부르면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골드러시(19세기 미국에서 금광이 발견된 지역으로 사람들이 몰려든 현상)를 따라 어린 딸과 캘리포니아에 온 어느 사내가 협곡 한가운데에 있는 동굴에 살면서 금맥을 찾다가 계곡에 딸을 잃고 계곡 바위에 주저앉아 딸 이름인 클레멘타인을 부르면서 통곡한 데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클레멘타인>은 포티나이너들이 위험하고 소득없는 광산 일에 지쳐 자위하듯 부른 노래가 퍼지고 퍼져 우리나라까지 오게 된 경우이다. 가사가 번안되어 정확한 창작배경을 모를 수 밖에 없지만, 알고 보면 시대를 반영한 음악이 외국에도 예전부터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3. 도시인


아침엔 우유한잔 간밤엔 소주 한잔

쫓기는 사람처럼 멈추지 않는 시계바늘처럼

꽉막힌 거리를 꽉 채운 자동차 경적소리 학생들 한숨 소리 this is the city life

모두가 똑 같은 표정을 하고 손을 내밀어 악수 하지만

가슴속에는 모두 다른 마음 각자 걸어가고 있는 거야

아무런 말없이 어디로 가는가 함께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


<도시인>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도시인들의 생활을 노래한 곡이다. 반복적인 일상과 업무에 치여 획일화되어버린 도시인들의 모습, 더 나아가서 도시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도시인>의 가사는 복잡하고 숨 돌릴 틈 없는 도시의 일상, 그런 도시에서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메마르고 모자란 감성을 보여준다. 특히, 일만 보고 살아가는 척박한 도시인들을 '회색얼굴의 사람들'이라고 표현하여 생기를 잃고 탁해져만 가는 도시의 이면을 꼬집었다.


이 노래는 넥스트(N.E.X.T)가 부른 것이 원곡이지만 오늘은 싸이(Psy) 버전의 <도시인>을 소개하려고 한다. <도시인>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완곡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직설적으로 그들의 문제를 지적한다. 그래서인지 가사뿐만 아니라 싸이의 뮤직비디오와 무대 퍼포먼스 역시 독특하고 파격적이다. 싸이의 <도시인> 뮤비는 '회색빛의 빌딩들 회색빛의 저 하늘 회색얼굴의 사람들'이라는 가사가 무색하지 않게 일부분을 제외하고 모든 장면이 흑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흑백 화면 속 사람들은 인간보다는 마치 로봇에 가까운 모습으로 등장하여 로봇처럼 행동한다. 공장에서 찍어낸 모조품들처럼 똑같이 움직이고 똑같이 살아가는 것이다.


한편 싸이는 '2006 올나잇 스탠드'공연과 2013년 열린 단독 콘서트 'HAPPENING'에서 형광색 옷과 가면을 쓰고 나와 인상적인 <도시인> 무대 퍼포먼스를 보여준 바 있다. 어두운 무대 위에서 온몸에 형광색 의상을 두른 싸이와 백댄서들은 다소 사이버틱한 모습이다. 거기에 가면까지 착용하여 자아를 잃고 획일화된 도시 생활에 익숙해져 가는 도시인들의 모습을 완벽하게 묘사했다.


<도시인>은 1993년에 발매되어 20년도 더 된 곡이다. 하지만 꾸준히 재발매 되고, 리메이크되어 아직도 우리에게 익숙한 노래로 남아있다. 이것은 무분별한 도시화가 얼마나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으며, 아직 해결되지 않은 사회 문제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도시인>은 여유, 개성, 생기를 잃어가는 우리 시대의 일부분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4.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Yellow ocean



흐르는 세월 속 잊지 않을 세월, 호
우리의 빛 그들의 어둠을 이길 거야 
Yellow Ribbons in the Ocean.
진실은 침몰하지 않을 거야
Yellow Ribbons in the Ocean. 
Ocean. Oh shine

<Yellow ocean> 가사 中


2014년 4월 16일,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또한,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단원고등학교 학생들과 승객들을 태운 채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승객 300여 명이 사망, 실종된 비극적인 참사였다.


엉뚱한 교신으로 인해 초기 대응시간인 골든타임의 지연, 승객과 배를 버리고 도망친 무책임한 선장과 선원들, 소극적인 구조 활동과 뒤늦게 이뤄진 대처들로 수많은 희생자를 낳아 전 국민을 충격과 슬픔에 빠지게 했다. 또한 세월호에 대한 진상 규명이 지연되며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물결이 쏟아졌다. 자연스럽게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곡도 만들어졌다.


윤민석 작곡가가 무료로 배포한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세월호 참사 이후 미흡했던 대처와 다 밝혀지지 않은 그 날의 이야기를 잊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곡이다. 네 개의 문장으로 이뤄진 짧은 곡이지만 가사에는 묵직한 힘이 있다.


방송 <힙합의 민족2>에서 가수 치타와 장성환은 직접 작곡, 작사한 곡 <Yellow ocean>으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안타까움과 추모의 마음을 전했다. 노래 중 '시간이 흘러가도 잊지마 잊지마'와 같은 가사를 통해 2년이 지났지만 그날의 참사를 절대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볼 수 있다.


이처럼 기억해야만 할 시대적 사건을 노래로 만들어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노래로 만들어진 세월호 참사는 시대가 흘러도 계속해서 재생되고 불리며 사람들과 함께할 것이다.


5. 민중의 노래 (Do You Hear The People Sing?)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

심장박동 요동쳐 북소리 되어 울리네

내일이 열려 밝은 아침이 오리라


이 노래는 19세기 전반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 <레 미제라블>의 OST가 원곡이다. 특히 프랑스 혁명이 벌어지던 시기에 일어난 봉기가 주요배경이다. 이 시대의 프랑스는 봉건사회이자 신분제 사회로, 제1, 2, 3신분으로 나누어져 제3신분에 대한 억압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다. 평등을 내건 채 지속되는 불평등한 신분제, 즉 구제도의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다.


노래 속 제3신분인 민중들은 극소수의 제1, 2신분인 성직자와 귀족들을 향해 자유와 평등을 외치고 있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도 민중들은 위풍당당하게 국기를 휘저으며 <민중의 노래>를 부른다.


한국에서 영화 <레 미제라블>의 OST로 잠깐 떴다 사라진 이 노래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다시 떠올랐다. '최순실 게이트'란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으로, 이에 반발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광화문을 중심으로 도심에서 일어난 시위 물결이 점점 퍼지며 우리말로 번역한 <민중의 노래>도 함께 퍼져나갔다. 시위 현장과 SNS 등에서도 <민중의 노래>가 떠오르고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과 부합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과거의 한 시대를 담은 노래가 다른 나라의 현대 시대 상황과 일치하여 재사용된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한 경우로 볼 수 있다.


가요는 시대를 향유한다고 한다. 소개된 노래들처럼 가사 속에 직접 시대상을 반영한 곡들도 있지만, 흔한 유행가라고 해서 시대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사에 쓰인 표현들, 리듬과 같이 청각적 요소뿐 아니라 뮤직비디오, 안무, 의상 등의 시각적 요소를 통해서도 시대 일부분을 표현할 수 있다.


역사는 흔적을 남긴다. 노랫말 속 지나온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있듯 현재 우리가 사는 이 시대도 후대에 반드시 노래로 남겨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는 바르고 청렴한 사회를 위해 다 같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칼럼소개 : 가요로 창조된 문화는 세상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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