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밸런타인데이, 경칩

초콜릿 대신 은행알

사랑이 싹트는 시기, 봄. 유난히 봄에 사랑이 피어나는 이유는 각국의 사랑을 전하는 날이 봄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대 로마에서는 2월 15일 "루페르카리아"라는 축제 날, 총각이 아가씨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뽑아 사랑의 짝짓기를 했다. 이와 같은 2월 15일, 히말라야 고산족들은 활쏘기 대회를 열어 아가씨가 마음에 드는 사수를 지명하는 행사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들 흔히 아는 밸런타인데이는 2월 14일, 서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좋아하는 이성에게 초콜릿을 전하며 사랑을 확인하는 날로써 오늘날까지도 전해져 오고 있는 기념일이다.

 

조선 시대에도 조선만의 밸런타인데이가 있었다. 바로 24절기 중 세 번째 절기인 경칩이다. 경칩은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는 시기로, 3월 5~6일경부터 춘분까지를 가리킨다. 서양에서는 초콜릿이 사랑의 징표였다면, 조선에서는 은행알이 초콜릿을 대신했다. 은행나무는 천 년 이상을 암수가 마주 보며 결실을 보기 때문에 은행나무 앞에서 서로 마주 바라보고만 있어도 사랑의 결실이 오간다는 믿음이 있다.



『사시찬요(四時纂要)』에 보면 "은행 껍질에 세모 난 것이 수 은행이요, 두모 난 것이 암 은행이다."라고 적혀 있다. 즉 뾰족한 삼각형 모양인 것을 수 은행, 둥근 모양인 것은 암 은행이라 한 것이다. 초콜릿 대신 은행을 통해 사랑을 전달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정월 대보름에 은행을 구해 두었다가 경칩날이 되면 부부가 서로 마주 보며 남편은 수 은행을, 아내는 암 은행을 먹으면서 사랑을 나눴다. 한편 처녀와 총각들은 날이 어두워지면 동구 밖에 있는 은행 암나무와 수나무를 돌면서 사랑을 증명했다. 때로는 구해 둔 은행을 교환하며 사랑을 확인하기도 했다.


흔히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알려진 밸런타인데이가 요즘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날로 변하고 있다. 마침 이 시기는 한 학년을 마무리하는 시기와 겹친다. 학생들은 선생님 및 친구들에게 초콜릿 또는 선물을 주며 한 학년을 마치는 아쉬움과 고마움을 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콜릿 선물은 제과업체의 배만 불리려는 장삿속이라는 주장이 많다. 또한 젊은이들의 '사랑'을 악용하려는 상술에서 비롯된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현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람들이 특정일을 통해 평소엔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상대방에게 진솔하게 고백하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아름다운 일이라며 밸런타인데이가 상술이라 하더라도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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