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말있어요

'우리'는 누구인가?

한쪽 눈을 감은 인간


나의 복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 내가 잘 살길 바라고, 내가 복 받는 것. 복 받고, 나라도 잘살다가 죽고 싶었던 과거의 내 바람. 나는 이 바람이 나에게만 바래지고 있는 줄 알았다. 주위를 둘러봄과 동시에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 많은 사람이, ‘샤먼’으로 오염된 대통령이 ‘쾌락’과 ‘기복’, 그리고 ‘욕망’을 향해서 살아간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샤먼’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부정적이었지만, 실제로 ‘샤먼’ 적 사고와 행위를 하고 있었다. 나에게 샤먼은 ‘<종교> 샤머니즘에서, 신령ㆍ정령ㆍ사령(死靈) 따위와 영적으로 교류하는 능력을 갖추며, 예언ㆍ치병(治病)ㆍ악마 퇴치ㆍ공수 따위의 행위를 하는 사람’의 존재였다. ‘샤먼’은 ‘Shamus’ 무당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무당과 ‘나’ 자체는 아무 연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산해경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산해경에서 나온 온갖 가지 상상력의 동물들과 신들, 그리고 세상에 대한 구체적 묘사는 ‘샤먼’을 위한 것이었다. 상상력의 힘은 어마어마했고, 그 구체성에 놀라고 말았다. 남쪽에서부터 서쪽, 북쪽, 동쪽, 그리고 중으로 각 지역의 기이한 사물, 인간, 신들에 대한 기록들을 통해 고대인들의 주술적 사고방식을 알 수 있었다. 고대의 문화들과 그 문화들을 표출하게 한 ‘샤머니즘’이라는 세계관은 책의 구체적 묘사로 알 수 있다. 동양 사람들의 ‘샤머니즘’은 정치, 사회, 결혼관,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세계관은 모든 것을 연결하여 하나로 움직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앞서 말한 ‘쾌락’, ‘기복’, ‘욕망’이라는 키워드는 모두 다 ‘샤먼’이었다. 나만 잘살기 위한 것. 어쩌면 당연한 흐름. 이것이 샤먼이었다. 산해경에서 ‘샤먼’의 문화와 힘, 철학과 그리고 이에 대한 영향들을 늘어놓았다. 그곳에는 어떠한 윤리적 도덕적 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샤먼’이라는 문화의 힘은 오늘날까지 함께 했다. 부엌의 조왕신도, 동지가 되면 무심코 먹었던 팥죽도 ‘샤먼’의 흔적이다.


신과 사람, 세상의 경계가 허물어짐에 따라 사람들이 ‘샤먼 ’(기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경계의 무너짐은 사람들에게 불안을 생기게 했고, 불안은 기복(샤먼)으로 이어져 나갔다. ‘샤먼’은 애니미즘과 토템이즘을 동반하며, 동양의 사상, 문화, 세계관을 만들어냈다. 나 또한 ‘샤먼’의 피가 흐르고 있는 동양인이다.


‘샤머니즘’이라는 또 하나의 세계관은 낯설고도 친근했다. 산해경이라는 신화를 통해 동양에 대해 무지한 나의 한쪽 눈을 뜰 수 있었다. 우리는 서양에 더 익숙하고, 서양의 세계관에 많이 노출되어 버렸다. 이 시점에서 “나의 문화는 무엇인가?”, “나의 세계관은 어디인가?”라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


맹하에 초목이 자라니

집을 둘러싼 나무가 우거졌네


뭇 새들은 의탁할 곳 있음을 기뻐하고

나 또한 내 오두막 사랑한다네


밭 갈기도 마쳤고 씨 뿌리기도 마쳤으니

때때로 돌아와 내 책을 읽노라


깊숙한 골목 큰 길과 떨어져 있으니

자못 친구의 수레 돌리게 했다네


기쁘게 봄 술을 마시면서

내 동산에 있는 채소를 따네


이슬비가 동쪽으로부터 오니

좋은 바람 함께 갖추어져 있네


주왕전을 두루 보고

산해도를 훌터 봤다네


면앙하며 우주를 다 구경하니

즐기지 않고 다시 어쩌겠는가


-도연명의 <독산해경>


세계를 보는 눈은 다양하고, 그 다양함을 알아갈수록 한쪽 눈을 뜨게 된다. 다양한 세계관을 접하며, 나의 세계관을 확립해나가는 것이 바람이다. 세계를 보는 눈에 따라서 편과 편이 형성되지만, 다른 곳을 바라보아 균형을 잡는 것은 어떨까. 한쪽 눈을 뜨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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