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


12월 11일은 세상이 바뀐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추축국인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왕국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막대한 자본력과 공업 시설을 이용해 연합군에게 전세가 유리하게 돌아가고, 파란만장한 노르망디 상륙 작전과 벌지 대전투 후 1945년 4월 히틀러가 자살하게 되는 것이다. 히틀러는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을까?


1918년 11월 3일, 킬 군항에서 자살 공격에 반대하던 수병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세계 대전에 염증을 느끼던 독일의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혁명에 참여하였고, 11월 9일 독일 제국은 붕괴하며 황제는 네덜란드로 도피한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시대가 열렸다. 한편 공산당은 의회주의자인 사회민주당을 적대하며 협력을 거부했고, 이는 나치당이 집권하는데 아주 크게 기여했다. 집권당인 사민당은 평화를 요구하는 당대의 목소리를 반영해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한다. 이로써, 제1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린다.


한편, 베르사유 조약에 불만을 느끼고 있던 사람들이 모여 우리가 흔히 나치당이라 알고 있는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이 조직된다. 히틀러는 군인으로서 나치당을 수사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나치당의 사상에 감명받은 그는 맥주 홀에서 의견을 말하고 나치당원이 된다.


1923년, 3,000명이 넘는 당원들과 함께 히틀러는 무솔리니처럼 국가를 지배하겠다는 원대한 야망 아래에 뮌헨 맥주 홀 폭동을 일으킨다. 그러나 국방군의 비협조와 무장경찰대의 출동으로 곧 진압되고 말았다. 히틀러는 도망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내세워 당을 장악했고, 극우 계열 판사는 오직 금고 5년형만을 선고하였다. 그마저도 그는 6개월만을 감옥에서 보낸 채(나의 투쟁이 이때 집필되었다.)


1929년, 전 세계가 암울한 세계 대공황을 겪는다. 히틀러의 연설에 넘어간 국민은 히틀러를 열렬히 지지하였으며, 대통령 힌덴부르크도 그를 수상으로 임명한다. 1933년 1월 30일, 히틀러와 나치당이 마침내 의회를 완벽히 장악해 수권법으로 진보/보수를 포함한 모든 당을 폐쇄하였다. 아름다웠던 바이마르 헌법은 찢어졌다.


파시즘이나 나치즘의 전조는 아래와 같다.

1. 인권의 경시

2. 적국에 대한 강렬한 인식

3. 군사 중심주의

4. 극도의 성차별

5. 대중미디어 통제

6. 국가방어에 대한 지나친 집착

7. 종교와 정치가 혼합

8. 자본, 재벌의 권력이 무조건 보호받음

9. 노동자의 권력이 묵살

10. 예술, 미술, 지성에 대한 경시

11. 범죄와 그에 대한 처벌에 대한 집착

12. 부패가 만연한 사회

13. 조작된 투표, 또는 법체계


나 자신이 피해를 안 본다고 둔감해지면, 그 어떤 사회도 파시즘 사회로 굴러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인권을 중시하는 사상을 몸에 새기고 널리 퍼트리는 것이 만이, 합법적으로 정권을 잡으려고 드는 파시스트를 막는 유일한 길이다.


마지막으로 '위대한 독재자'에서 나온 명대사를 적겠다.


"미안합니다. 나는 황제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다스리고도 싶지 않습니다. 가능하다면 모든 사람을 돕고 싶습니다. 유대인, 이방인, 흑인, 백인, 그 모든 사람을 돕고 싶습니다. 남의 불행을 빌기보다 행복하기를 빌고 싶습니다. 우린 남을 미워하거나 경멸하지 않습니다."


70년 후의 우리도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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