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말있어요

 

 

 

‘아이히만은 유죄인가, 무죄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희대의 화두로 거리로 남아있다. 유대인 학살의 실무자로 유명한 아이히만은 재판장에서 자신은 죄가 없고 히틀러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가 생각하기에 아이히만은 무죄이다. 그저 상부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반드시 상하 관계가 성립되기 마련이다. 더욱이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사와 부하직원과의 관계 직위가 명확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상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만 행동한다면 열에 아홉은 직장에서 해고당하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연유로 직장을 잃게 될 경우, 개인은 경제적 위기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정신적 트라우마도 느낄 수 있다. 정말 현실적인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이러한 실패를 감수하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으로 생각한다.

 

아이히만 역시 자신이 한 행동이 도덕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사회적 지위 관계와 같은 구조적인 분위기가 어쩔 수 없이 그가 자기 생각을 뒤로하고 맹목적으로 상부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결과를 도래했다고 본다. 따라서 필자는 아이히만은 죄가 없고 아이히만의 상부에 모든 죄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아이히만이 살았던 군사 독재 시대에는 히틀러가 독재정치를 했던 시기라 명령과 복종의 관계가 팽배해있던 때이다. 그 때문에 어쩌면 그러한 관계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일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시대상을 반영하지 않고 오로지 아이히만이 ‘도덕적 가치판단을 뒤로한 채 단순 명령만 따른 행위’만 놓고 평가하자면 업무 수행의 당위성을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한다. 생각하고 사유하지 않으면 사회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 이 세상에는 옳고 그름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데도 생각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옳은지, 또 무엇이 그른지 모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식별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에 의해 쉽게 세뇌당하고 자기 주관을 세우지 못하게 된다.

 

 

특히 과거 군사 독재 시대에는 오로지 정해진 매뉴얼을 강요받던 시대였다. 이로 인해 당시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없었다. 따라서 창의적인 생각은 상실된 시대였다. 그 덕분에 기계적인 사람들이 산업화의 성장은 이뤘을지 모르지만, 인간 내면의 탐구나 감정, 감성은 메말라 있었다. 시대가 점점 흐르고 오늘날 사회는 개인에게 창조적인 능력과 상상력을 기대하고 있다. 즉, 각자의 개성을 인정해주고 과거와 달리 이를 오히려 독려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사회가 사람들에게 원하는 역량이 이전과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때문에 이런 시점에서 생각하고 사유하는 행위는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창의적인 사회의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보통의 아이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나 주변 어른들에게 성실을 강요받으며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성실이라는 단어는 어느새 생활 속에서 사람이라면 갖춰야 할 덕목의 표본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정해진 사회 규범이나 윤리에 어긋나지 않고 어떠한 제도 아래 타인의 말이나 조직의 규칙에 순응하며 잘 따르는 사람들에게 흔히 우리는 '성실'이라는 표현을 쓴다.

 

물론 이러한 성실이라는 것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 타인과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에서 나의 발전을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성실도 상황에 따라 독이 될 수 있다. 아이히만과 같은 사례가 성실의 악영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성실의 옳고 그름은 그 행동을 주체하는 사람의 자각에 달린 것으로 생각한다. 아이히만처럼 자신의 의지와 생각 없이 그저 사회 구조나 타인이 정해놓은 규칙에 속박되어 기계처럼 일을 수행한다면 그것은 성실이 아닌 상실에 가까울 것이다. 즉 자신의 주관을 뚜렷이 가지고 의지대로 행동해야 성실이라는 것도 비로소 빛이 비치기를 바랄 수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성실이라는 단어 하나만 딱 떼어 놓고 보았을 때의 ‘성실’은 사실상 무의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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