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말있어요

[칼럼] 오천년의 소나무를 두 동강 낼 수 없듯이

남한과 북한, 통역사가 필요해질수도

   


“고저, 북한에선 SM은 스커드 미사일, YG는 요격, JYP는 박진영이라요!”

“끼니는 때우셨습니까? 고저 요즈음 우리가 요즘 밥 먹는 것 보다 더위를 더 먹지 않습니까? 우리가 평생 말은 시원하게 못해도 몸땡이는 시원하게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준비했숨다. 개마고원 선풍기~”

 

한 개그맨이 어느 잡지와 인터뷰한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그는 ‘개그맨들도 이제 개그 소재가 떨어졌는지 다 거기서 거기죠, 뭐.’라며 ‘고전 개그 소재들이 있어요. 하나는 사투리, 또 하나는 바보 캐릭터, 그리고 가장 흔한 것은 북한이죠.’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위에 두 개그맨의 대사처럼 어딘가 우스꽝스럽고 촌스러운 북한 특유의 말투를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개그의 단골 소재가 된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모란봉 홈쇼핑’, ‘태극기 휘날리며’, ‘일촉즉발’ 등 북한 혹은 북한 말을 소재로 한 개그 프로그램들은 넘쳐 난다. 그러한 만큼 개그맨들의 ‘북한말 솜씨’는 점점 더 늘어나는 것 같다. 특히 사투리 테가 나는 어눌한 서울말 개그로 인기를 끈 개그맨이 ‘북한말만큼’은 ‘유창’하게 소화하는 것을 보며 어머니께서는 “쟤 표준말도 서툰 거 보면 정말 북한 사람 아니야? 너무 똑같은데.”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정말 개그맨들의 말이 북한 말이랑 너무 똑같아서 그런 것일까? 아무리 자연스러워 봤자 평생 북한에서 지내본 적 없는 남한의 개그맨들이 하는 말인데도 듣다보면 생소한 북한 특유의 말투 때문인지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탓에 “엄마, 아까 저 남자가 뭐라고 했어?”라며 같이 보던 엄마, 아빠께 여쭈어 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녔다.

 

저렇게 한국 사람이 북한말을 흉내 내는 말만 들어도 썩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진짜 북한 방송이나 영화를 보거나 북한 사람과 직접 만나 대화를 하게 된다면, 나는 과연 얼마나 알아들을 수 있을까? 인사말이라도 실수 없이 제대로 건넬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아무래도 오랜 시간 떨어져 지속적인 교류 없이 지낸 세월이 긴 만큼, 북한과 우리나라의 말투는 이제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만큼 달라져 버린 것 같다. 어디 말투뿐인가? 남한과 북한의 어문규범과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들도 다른 부분이 많아져 언젠가는 남북한의 대표가 만나 회의를 할 때에도 통역사가 와서 통역을 해줘야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정말 남북한의 대표가 통역사와 같이 앉아서 대화하는 모습을 뉴스로 보게 된다면 남한과 북한은 이제 미국과 일본처럼 아예 우리나라와는 상관없는 다른 나라로 느껴질 것 같다. 나처럼 통일이 된다면 혹시 우리나라 경제가 크게 흔들려 버리거나, 남북한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지내지 못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였던 사람들도 정작 이런 날이 온다면 왠지 서글픈 마음이 들 것 같다.

 

얼마 전, 나는 뒤늦게나마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사실 ‘시빌 워', '엑스 맨’, ‘곡성’ 등 화려한 화면과 엄청난 관객 동원 수를 자랑하는 영화들을 젖혀두고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국제시장을 본 것은 순전히 부모님의 의견이었다. ‘재밌는 거로 보자’며 투덜대는 나에게 어머니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고 재미없으면 그때 가서 네가 보고 싶은 거로 봐.”

 

그러나 정작 영화가 시작되자 처음부터 6.25 전쟁의 긴장감과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이 나오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영화에 집중하게 되었다. 특히 주인공 덕수의 가족이 피난을 떠나다가 가족을 잃고 외국으로 입양된 막내딸을 찾고 오열하는 장면에서는 내가 마치 덕수가 된 마냥 슬퍼서 눈물이 나오는 바람에 당황하기도 했다.

 

‘국제시장’은 가상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진 영화이지만 정말 그 시대 상황을 그대로 찍어온 듯 실감 나게 표현하여 평론가들이 극찬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역사책 속에서 수백 번 6·25 전쟁을 민족의 비극이라고 해도 느껴지지 않았던 비통한 마음이 이 영화를 보면서는 가슴 깊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마치 6·25전쟁은 수많은 ‘덕수’네 가족들의 한이 담긴 아프고 쓰린 역사 같았다.


이 영화 속에서 덕수 네 가족의 막내딸은 외국으로 입양되어서 무사히 잘 자랄 수 있었고, 시간이 많이 흘러버렸지만, 결국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북한에 가족을 남겨두고 온 수많은 실제 ‘덕수’들은 그들의 가족의 얼굴은커녕 생사조차 알지 못하고 지내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한다.

 

비록 우리 가족 중에서는 실향민과 이산가족이 없다 보니 그 슬픈 마음이 당사자들처럼 잘 와 닿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지만 예전 초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갔을 때 고작 2일 동안 집을 떠나있었던 것인데도 따뜻한 집 밥이 너무도 그리웠었던 기억이 난다. 이때의 기억을 되살려 보면 가족의 품에서 부족함 없이 사랑을 받으며 자라온 나이지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인 이유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남북이 등을 돌리고 한반도에 금이 가는 것을 두 눈으로 보지 못해서 그런지 통일이란 것이 막연하게만 느껴지고, 미루고 싶은 부담스러운 짐처럼 느껴지고,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지고는 한다. 돈이라고는 지갑에 많아 봤자 몇만 원이 다이고, 그다지 힘도 없게만 느껴지는 학생인 우리가 솔직히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막연하고 작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북한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며 알아가려는 태도를 갖기, 통일에 대해 올바른 인식 가지기, 통일 글짓기 대회나 그림 그리기 대회 등에 참여하기 등. “이런 일로 통일이 될 거였으면, 벌써 통일하고도 남았겠네.”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그러나 실제로 한반도의 3·8선을 지우기는커녕 지도 속 한반도의 3·8선을 지울 때만 하더라도 한 번의 지우개질로는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는다. 여러 번 지우개를 들고 하얗던 지우개가 까맣게 될 만큼 지워야만 한다. 그래야만 지워질 수 있다. 지도 속 3·8선을 지우기도 쉽기만 한 일은 아닌데 정말로, 한반도 위 3.8선을 지우기 위해서는 이보다 몇십 배, 몇백 배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한 것이 당연하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우리 민족은 둘로 나뉠 수 없음도 분명한 사실이다. 피보나치 수열을 둘로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듯, 오천 년에 걸쳐 자라온 소나무를 두 동강 낼 수 없듯, 우리 민족도 둘로 나눌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주 잠깐 이 글을 쓰면서 웃찾사의 ‘모란봉 홈쇼핑’ 프로그램을 언급했을 뿐인데 갑자기 그 프로 속 북한 뉴스 앵커로 분장한 개그맨의 개그가 보고 싶어졌다. 유튜브에서 영상을 검색해 보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언젠가는 정말로 TV에서 홈쇼핑 프로그램을 돌려보다가 북한말투를 가진 북한 출신 쇼호스트와 남한 말투를 가진 남한 출신 쇼호스트가 함께 홈쇼핑을 진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 이 물건은 동무들에게 하나씩 선물해주면 동무들 입이 아주 귀에걸릴 겁네다.”

“맞아요. 부담도 없고, 명절 선물로도 아주 딱이죠?”

하면서 말이다.

 

이런 날이 언제 올지는 모른다. 정말 가까운 미래일지도 모르는 일이고, 아니면 우리가 죽고 나서도 한참 후에야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마침내 한반도가 3·8선이라는 답답한 허리띠를 풀어내고, 도덕시간에 남북한 학생들이 함께 ‘마침내 하나가 된 우리’라는 단원을 배우고, 오천년의 소나무를 완전히 반으로 나누었다며 바득바득 우길 필요가 없는 날이 온다면. 


그 날은 우리 모두에게 잊지 못할, 그리고 남북한의 많은 ‘덕수’들에게는 평생의 한을 풀 수 있는. 그런 날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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