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 박물관은 2009년 11월 용인 동백 택지개발 지구를 개발하면서 시민들을 위한 역사문화 공간으로 문을 연 곳이다. 1층엔 기획 전시실, 기증실, 용인 아카이브실(자료실), 야외 전시실이 있고, 2층에는 용인 역사실로 1전시실과 2전시실로 나뉘어 있다. 3층엔 어린이 노리마루가 있어 가족 단위로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된다. 지난번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사대부의 정신’을 테마로 전시하였고, 현재는 12월 25일까지 ‘할미산성, 신라의 비상’을 테마로 전시하고 있다. 할미산성 발굴은 유적과 유물에 많은 연구 성과의 축적을 가져왔다. 그래서 2007년 경기도 기념물 제215호로 지정되어 용인시는 2018년 10월 할미산성을 국가 지정 문화재로 승격 신청하였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의 할미산성 발굴과정과 할미산성 주변 지역에 살던 당대 신라인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실을 방문 했을 때 기억에 남은 유물을 몇 가지 소개해 보겠다. 첫 번째로 증보문헌비고이다. 조선의 문물과 제도를 분류 정비한 일정의 백과사전으로 1769년 편찬에 착수해 1770년에 완성하였다. 예전에도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백과사전을 만들었다니 조상들의
기자는 지난 일요일 가족들과 함께 하남에 있는 유니온타워에 다녀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올라가니 전망대가 있었다. 유니온타워는 코로나19로 인해 일요일에는 출입이 불가하였다. 하지만 휴일에 방문하는 시민들을 위해 월요일을 제외하고 화요일에서 일요일까지 개방하게 되었다. 뻥 뚫린 전망대에서는 360도로 하남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조정경기장이나 팔당대교가 한눈에 들어왔다. 3층은 이런 전망을 즐기며 음료를 마실 수 있는 편의시설이 있었고, 2층과 지하는 관계자 외에는 출입이 되지 않았다. 1층에는 리싸이클 작품들이 전시되어있었는데 헌 옷을 이용한 가방이나, 양말목으로 만든 티 매트, 폐타이어로 만든 신발 등이 있었다. 쓰레기로 여겨지던 것들이 새 생명을 얻어 쓰임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곳 유니온타워는 사실 하수를 내보내는 펌프장과 쓰레기 소각장, 재활용 및 음식물 압축시설이 있던 곳이다. 하지만 미사 지구 단지가 들어오면서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쳤고, 하남시는 ‘지하화’를 선택하였다. 총 2,730억을 써 최첨단 공법으로 밀폐 장치를 설치해 냄새가 전혀 나지 않게 했고, 하수 및 폐기물 처리시설 6종을 지하화했다. 아울러 소각
기자와 기자의 가족은 지난 토요일 태안에 다녀왔다. 태안은 많은 어민의 삶의 터전이며 그것과 연계된 상업과 관광이 활성화된 곳이다. 항구에는 출항하려는 배들과 출항을 마친 배들이 가득했고, 각종 횟집이나 새우, 게, 조개를 파는 곳에는 관광객들과 상인들이 싱싱한 해산물의 가격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또 해안 도로 곳곳, 이국적이거나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귀여운 펜션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때마침 잘 익어 가지가 부러질 듯 탐스럽게 달린 감들이 가을의 정취를 더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태안이 시커멓게 기름으로 뒤덮였던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2007년 삼성 1호와 다른 배 하나가 태안 앞바다에서 부딪혔고, 그로 인해 구멍이 난 배에서 계속해서 원유가 흘러나왔다. 순식간에 기름으로 뒤덮인 해안은 끔찍함 그 자체였다. 바다를 살리려 태안 주민들과 전국에서 몰려온 자원봉사자들은 기름을 퍼내고 돌에 묻은 기름을 하나하나 다 닦았다. 그 노력으로 바다는 다행히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갔고, 지금은 예전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우며 영롱한 모습을 자아내고 있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다가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기자가 가족들과 갔던 신진
백남준은 한국 출신의 비디오 아티스트이다. 1960년대 플럭서스 운동(1960~1970년 대에 걸쳐 일어난 국제적인 전위 예술 운동)의 중심에 있었으며,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공연과 전시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비디오 예술에 선구자이며 다양한 매체를 통해 예술에 대한 정의와 표현의 범위를 확대시켰다. 기자는 지난 토요일(24일) 가족과 함께 백남준 아트센터를 관람하였다. 아쉽게도 1층은 공사 중이라 관람이 불가했고, 2층에서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 바로크 백남준’이란 전시를 볼 수 있었다. 백남준의 전시 작품 중 기억에 남는 것을소개해 보겠다. 먼저 ‘시스틴 성당’이라는 작품인데 백남준은 천장이 높은 독일관의 가운데에 비계(飛階)를 쌓아 올리고 프로젝터를 매달아 영상이 벽으로 투시되도록 했다. 물고기 떼와 성조기, 요셉 보이스 등의 다양한 영상이 무작위로 재생되는 느낌을 준다. 따라서 관객들은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뜻하지 않는 영상과 사운드에 파묻히고 만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정보화 시대에 차고 넘치는 정보들 중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영상과 다양한 소리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
용인시 쓰레기 없는 제로 웨이스트 장터가 8월 27일, 기흥역 3번 출구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행사는 용인에서 열리는 두 번째 제로 웨이스트 행사라고 한다. 제로 웨이스트는 제로와 웨이스트라는 말이 합쳐진 합성어인데, 제로는 숫자 ‘0’을 뜻하고, 웨이스트는 ‘쓰레기’를 말한다. 모든 제품, 포장 및 자재를 태우지 않고, 환경이나 인간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토지, 해양, 공기로 배출하지 않으며 책임 있는 생산, 소비, 재사용 및 회수를 통해 모든 자원을 보존하는 것이다. 제로 웨이스트의 목표는 재활용과 재사용을 통해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다. 이 행사에 기자와 기자의 가족도 참여해 보았다. 토요일 1시부터 5시까지의 행사였는데 친환경 체험 부스와 간단하게 물건을 살 수 있는 매대로 구성되어 있고, 제로 웨이스트를 설명한 피켓이나, 자원봉사자들을 볼 수 있었다. 행사장 입구에선 페트병 10개를 가지고 가면 대나무 칫솔을 받을 수 있었다. 페트병을 넣는 기계 구멍에 페트병을 넣으면 기계 속에서 페트병이 갈려 나온다. 기계 속에서 갈려 나온 페트병 조각들로 다시 플라스틱 원료를 만들고 이것으로 에코백이나 옷 등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기자는 10개의 페트
지난 6월 11일 토요일, 성남에 있는 둔촌 선생 재실에서 둔촌 청소년 문학상 시상식이 열렸다. 시상식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1부에서는 내빈 소개 및 축하 말씀이 있었고, 2부에서는 경기도 내 초(4학년 이상)·중·고에서 선발된 61명의 수상자에 대한 본격적인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둔촌 청소년 문학상은 고려 말 대학자이셨던 둔촌 이집 선생의 학문과 뜻을 선양하고 지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한국 문인협회 경기도 지회와 광주 이씨 문중이 함께 시행하는 문학상이다. 올해는 총 1,200여 편의 작품이 접수되었고, 이 중 61명의 작품이 선발되었으며 광주 이씨 대종회 관계자분과 성남 문인협회, 그리고 시인, 수필가분들께서 시상해 주셨다. (사)한국 문인협회 경기지회 이예지 회장은 “매년 열리는 백일장 대회를 통해 경기도 내 초중고 학생들은 자신의 문학적 기량을 뽐내고, 둔촌 선생님의 충과 효를 기릴 수 있게 됩니다. 수상자에게는 상장과 함께 소정의 장학금이 수여됩니다. 매년 6월에 시상식을 하는 이 백일장 대회에 많은 학생이 참여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참가할 수 있기 때문에 올해로 3번째로 참가하고 있는 기자
이 기자와 이 기자의 가족들은 5월 22일 일요일, 경기도 여주에 있는 세종대왕릉인 英陵에 다녀왔다. 주차장에서 입구로 들어가면 고즈넉한 자리에 ‘스승 카페’와 ‘세종대왕 역사문화관’이 나온다. 이 카페의 이름은 세종대왕의 생신을 ‘스승의 날’로 정한 것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고 한다. 세종대왕은 민족의 큰 스승인 것이다. 세종대왕 역사문화관은 세종대왕 집권 시 편찬 된 책들이나 당시 사용했던 물건들을 보관해 놓은 곳이다. 훈민정음으로 된 책들과 해석을 볼 수 있고, 세종대왕의 어진도 볼 수 있다. 카페와 박물관을 지나 왼쪽 출입구로 들어가면 세종대왕릉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입장료는 어린이는 공짜, 어른은 500원이다. 세종대왕릉 내에는 ‘위토답’이 있는데 이곳에서 재배한 쌀을 팔아 관리비로 충당하기 때문에 비싼 관람료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표를 구매해 처음으로 들어가면 세종대왕이 살아있을 때 만들었던 발명품들과 그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는 야외 전시장이 나온다. 보통 교과서를 통해 알고 있는 혼천의, 앙부일구 등의 발명품도 있고, 우리가 잘 들어보진 못했던 일성정시의, 천평일구 등의 발명품도 자세히 나와 있다. 일성정시의와 천평일구를 간단
지난 4월 1일 초당초등학교 6학년 2반 학생들은 초등학교에서 보내는 마지막 만우절이라 선생님들과 다른 친구들을 골려주려고 분주했다. 반 패널을 바꾸는 가벼운 것부터, 갑자기 쓰러지면 어떨까, 옆 반과 바꾸는 것은 어떨까 등 갖가지 아이디어를 나누며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반에서는 키가 비슷한 친구들이 스타일을 바꿔 선생님 속이기, 반 패널 다른 반과 바꿔 끼우기, 교실에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뒤집어 놓기가 채택되었다. 친구와 스타일 바꾸기는 말 그대로 두 명의 친구들이 머리 스타일, 주로 입는 옷, 장신구 같은 걸 바꿔 완전히 못 알아보게 만들어, 선생님을 놀라게 하는 방법이다. 반 패널 바꾸기는 6학년의 다른 반, 즉 1반, 3반, 4반 등과 반 표지판을 바꾸는 것인데, 여기에 더 추가해 1반과 바꾼 반 표지판은 거꾸로 뒤집은 채로 바꾸기도 했다. 교실에 있는 모든 것들을 뒤집기는 진짜 갖가지 물건들을 뒤집는 것이다. 소독제, 소독 티슈, 칠판에 붙어있는 자석들 등등 교실에 있는 물건들을 모두 다 뒤집어 놓은 것이다. 이것은 익숙하던 것을 다르게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런 만우절을 겪은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해 보았다. 4월 1일 만우절에 기
초당초 5학년 4반 아이들은 얼마 전 사회시간에 깜짝 놀랐다. 한자가 가득 쓰인 문서에 이름을 적었는데 그것이 바로 노비문서였던 것. 사회시간, 5학년 4반 담임선생님(노영은 선생님)께서는 한자로만 쓰인 쪽지를 나눠주며 ‘학교로 오는 상을 받기 위해서는 이곳에 이름을 써서 내야한다’고 하셨다. 상장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25명 전원은 이름을 써서 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지금 너희는 모두 노비 문서에 이름을 적었다고 하셔서 반 아이들은 크게 놀랐다. 선생님께서는조선 시대 글을 모르는 백성들이 어떤 일을 겪었을지 생각해보면, 그 억울함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씀을 이으셨다. 이후 기자가 실시한 설문지에서 5학년 4반 친구들은 자신이 노비 문서에 서명한 사실을 안 순간에 대해, “허망하기도 하고 감쪽같았다.”,“문서가 온통 한자로 쓰여 있던 이유를 알게 되었고 무심코 이름을 쓴 것이 후회되었다.”고 대답했다. 또한 “억울했다”,“당했다”,“글을 모르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한자를 좀 더 공부해둘 걸 후회가 된다.” 하는 대답이 이어졌다. 또한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에게 하고 싶은 말을 써보라는 문항에서는 “세종대왕님, 한글을 만들어 주셔서 정말정
가을이 오는 길목, 기자와 기자의 가족들은 경기도 양평의 용문사를 찾았다. 두산백과에서 찾은 용문사에 대한 설명은 이러하다.“용문사는 913년(신덕왕 2) 대경 대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우왕 때 지천 대사가 개풍 경천사의 대장경을 옮겨 봉안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절집이 304칸이나 들어서고 300명이 넘는 승려들이 모일 만큼 번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한제국 때 전국에서 의병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될 당시 용문산과 용문사는 양평 일대 의병들의 근거지가 되었는데 이에 일본군이 1907년 8월 24일 용문사에 불을 질러 사찰의 대부분 전각들이 소실 되었다. 당시 주지 스님이었던 취운(翠雲)이 사찰을 소규모로 재건하여 유지해 오던 중 그마저 6 ·25전쟁 때 파괴되어 3칸의 대웅전과 관음전 ·산령각(山靈閣) ·종각 ·요사(寮舍) 등만 남게 되었다. 1982년부터 대웅전, 삼성각, 범종각, 지장전, 관음전, 요사채, 일주문, 다원 등을 새로 중건하고, 불사리 탑, 미륵불을 조성하였다. 또한 경내에 수령이 1,1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서 있는데, 이는 마의태자가 심었다고 전해지며 현재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어 있다.” 용문사 입구에 차를 세우고, 관람료를 내
10월 둘째 주 토요일, 기자의 가족들은 양평 양떼목장으로 체험을 가게 되었다. 거리 두기 단계가 이어지는 요즘,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야외로 나들이를 떠나게 된 것이다. 입장료 6천원을내면 건초 한 봉지를 받고 입장할 수 있다. 바로 앞에는 양우리가 있었는데 앞의 양들은 입장하는 사람마다 건초를 주어 무척 뚱뚱하였다. 그에 비해 뒤쪽에 있는 양들은 홀쭉하여 앞에서 건초를 다 써버린 것을후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귀여운 아기 염소와 아기 토끼, 새끼 돼지를만날 수 있는 ‘아기 동물 체험’도 있었는데 직접 먹이를 주고 손으로 만지며 교감 할 수 있어 더 재밌게 느껴졌다. 한봉지 탈탈 털어 먹이를 주고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곳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타조와 거위가 있었다. 타조의 목이 Z자로 꺾여 있어 거북목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거위는 엄청 시끄러웠다.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꽉꽉 거려서 엄청 시끄럽게동생이 떼를 부릴 때가 떠올랐다. 좀 더 위로 올라가면 금빛으로 찰랑 거리는 벼를 볼 수 있고, 그곳을 뛰어다니는 메뚜기도 잡을 수 있었다. ‘위험천만 놀이터’라는 곳은모두 나무로 만들어져 있는데 그네, 정글짐, 외나무다리에서 아이들이 놀고 부모님들은 잠시
7월 29일 신문 기사에서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지역이 유례 없는 폭염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뜨거워진 강물에서 헤엄치는 연어들의 몸 곳곳에 상처가 난 모습이 공개되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태평양에서 컬럼비아 강으로 거슬러 올라온 연어들이 몸에 상처가 난 채 헤엄치는 모습이 포착 되었는데 컬럼비아의 수온이 21도를 넘으면서 (연어처럼 번식기에 산란하기 위해 강으로 돌아오는 어류들이 장시간 견딜 수 없는 치명적인 온도라) 몸에 곰팡이가 피기도 하고, 배를 뒤집은 채 널브러져 죽어가기도 한다고 했다. 올해 여름엔 그린란드의 빙하가 사상 최악으로 녹아내리기도 하고, 펭귄들은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그 어떤 때보다 지구의 환경을 지키기 위해 애써야 할 때이다. 기자는 방학을 맞이하면서 “내가 GREEN 지구 생활”이라는 노트를 받았다. 우리가 지구환경에 관심을 갖어야 하는 이유와 실천 할 수 있는 일, 환경과 관련된 동화를 소개 해 주고, 직접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놓았다. 기자의 반은 7가지 차례 중에 5개 이상을 하는 것이 숙제라 방학 동안 이를 진행 하였다. 기자가 수행한 미션은 카페에 텀블러를 가져가 음료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가
기자와 기자의 가족은 8월 14일부터 2박 3일간 경주를 둘러보았다. 5학년 사회에 역사가 나오기도 하고, 경주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이라 가기로 한 것이다. 갑자기 확진 환자가 늘어나 걱정이 되기도 하였으나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며 가보기로 하였다. 기자의 집에서 경주까지는 잠깐 막히고 휴게소를 들른 시간까지 합해 5시간이 걸렸다. 처음 도착한 것은 감포 앞바다 수중 문무대왕릉이었다. 바닷가에 간다는 설렘으로 도착했지만, 그날 따라 파도가 높아 바닷가에 발조차 담글 수 없어서 아쉬웠다. 죽어서도 신라를 지키는 동해의 용왕이 되겠다던 문무왕이 높은 파도 속에서 당장이라도 깨어나 달려들 것만 같았다. 문무대왕릉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화산이 급히 식으면서 만들어진 주상절리가 있었다. 부채꼴 주상절리는 아주 독특했는데 조각가가 일부러 돌을 각지게 쪼고 차곡차곡 쌓아놓은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 해가 넘어간 뒤에 동궁과 월지에 갔다. 예전엔 안압지라고 불리었다고 하는데 이런 멋진 정원에서 노닐었을 신라의 궁인들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했다. 다음날 불국사에 갔다. 불국사의 웅장함과 함께 멋들어진 다보탑과 석가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불상 앞
기자는 아빠의 휴가를 맞아 아주 오랜만에 여행을 가게 되었다. 며칠 전 ‘소나기’ 책을 읽고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어서 ‘소나기 마을’을 가기로 했다. 솔직히 날이 몹시 더워서 시원한 여행지에 가는 것이 간절했다. 그래서 조금 투덜거리며 소나기 마을 입구로 향했다. 언덕을 올라가는 길에 호박, 옥수수, 보리 등등의 농작물과 여러 가지 꽃들이 있어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자연물들에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더 열심히 걸어 소나기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넓은 들판과 수숫단 등이 보였다. 먼저 얼굴을 내밀어 소년, 소녀가 돼 사진을 찍고, 문학관에 들어갔다.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고 문학관에 들어가니 열심히 안내 중이신 안내원이 보였다. 안내원 아저씨는 황순원 소설가의 일생을 설명해 주셨다. 안내원 아저씨는 황순원 작가가 1990년대가 돼서도 예전처럼 그대로 살고, 책상도 제자들이 만들어준 딱 하나만 쓰신 것으로 보아 (그것이 선생님의 밥상이자 술상이자 다과상이고, 책상이었다고 하셨다) 매우 검소 하셨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황순원 작가와 박목월 작가는 서로 아들딸을 낳으면 사돈이 되자고 하셨는데 둘 다 아들을 낳아
지난 22일 초당초등학교 5학년 4반에서는 국어 7단원 ‘기행문을 써요’를 수업하게 되면서 학교를 돌아보고 기행문을 쓰는 시간을 가졌다. 기자는 친구들과 초당초등학교 곳곳을알아보러 다녔다. 먼저 처음으로 기자가 본 것은 학교의 운동장과 조회대였다. 옆에 1학년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들렸다. 마스크를 쓰고 답답할 법도 한데 힘차게 놀고 있는 아이들의 소리를 들으니 기자도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운동장은 잠시 뒤로 하고 현관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열 체크 기계,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이 있는 수조가 있었다. 열 체크를 하고 계단으로 올라갔다. 계단에 속담이 적혀있는 스티커가 붙어있어 속담을 하나씩 읽으면서 가는 것도 은근 재미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니 선배님들의 그림이 걸려있는 초당 갤러리와 과학실이 있었다. 선배들의 멋진 그림을 보니 그 노력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이 들었다. 또 3층으로 올라가니 도서관과 3층 쉼터가 있었다. 도서관에는 책 소독기와 가방 사물함이 있었다. 그리고 쉼터에는 푹신한 소파, 앞에는 화장실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쉼터에서 편안하게 앉아 몇시간이고 책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요즘은 코로나 19로 인해 도서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