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호진의 Human In Sports 3] 창원에서 런던까지, 웨스트햄 Utd 출신 배태한 분석관을 만나다

축구 종주국인 잉글랜드에는 그만큼 다양하고 뛰어난 수준의 유소년 클럽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리오 퍼디난드, 조 콜, 프랭크 램파드, 마이클 캐릭 등 수 많은 스타들을 배출해낸 유스 클럽이 있는데, 바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유스 클럽(이하 웨스트햄 유스)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난 2016년, 잉글랜드에서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에 위치해있는 웨스트햄 유스(15-16세)에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코칭 스태프로 활동했었다. 바로 전력분석관 배태한씨. 비록 올해에는 건강상의 문제로 한국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지만, 귀국 이후에도 자신의 목표를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



-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초까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15-16세 팀에서 전력분석관으로 활동했고, 현재에는 축구교육법에 대해 강의하고 글을 쓰고 있는 배태한 이라고 합니다. 저는 아직 인터뷰를 하기에 많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이렇게 좋은 자리를 제공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국내에서는 전력 분석관이라는 직업이 생소할 수도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가요?


"사실 국내에서 전력분석관의 역할은 '비디오 분석관' 혹은 '에디터' 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이 둘은 큰 차이가 있는데요. 한국에서는 아직 전력분석 이라는 것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해, 축구를 좋아하시는 소프트웨어 등의 IT 계열의 전공자분들이 비디오 에디터로(전력분석관) 활동하시는 반면, 영국에서는 축구학, 전력분석을 따로 공부하여 축구경기 코칭 프로세스를 잘 알고 있고 이에 따른 분석을 교육학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사람들이 분석관으로 많이 활동합니다. 한마디로 비디오 분석관은 경기의 하이라이트, PPT 등을 제공해주는 반면, 전력분석관은 더 나아가 영상을 통하여 팀과 선수의 성장을 위해 훈련 및 경기를 분석하여 코치 뿐 아니라 선수 개개인들에게도 조언을 해주는 교육자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죠.” 


- 축구계에는 다양한 직업들이 있습니다. 그 중 전력분석관을 하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때부터 축구가 좋아서 여러가지 일들을 해보았고, 분석 역시 그중에 하나였습니다. 축구와 관련되어 노력해왔던 그때의 여러가지 경험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이 아닌 영국에서 활동을 하셨었습니다. 언어의 장벽을 극복한 방법은?  


"사실 저는 지금도 영어를 잘 하진 못합니다. 영국에 처음 도착했을 당시에는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했었습니다. 영국에서 축구를 공부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군대에서도 연등시간을 활용해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하긴 했지만, 막상 영국에 도착하자 막막한 마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영국 친구들과 함께 지내고 공부를 하다 보니, 어느덧 영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영어를 사용하는 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현재 제가 구사할 수 있는 조금의 소통이 가능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라는 높은 수준의 클럽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운이 좋았고, 또 나름의 경력을 인정받게 되었던 것이 주된 요인이었습니다. 팀과 첫 미팅을 할 때 팀에서 저를 원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또 제가 원하는 유소년 팀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웨스트햄은 유럽 내에서도 유소년 육성으로 손꼽히는 팀이었고, 또 한국축구에 필요한부분이 바로 선진축구의 유소년 축구문화와 시스템이었거든요. 대학 및 영국 내에서의 활동으로 제 분석능력을 인정받았던 점들이 크게 작용했던 건 부끄럽지만 부인 할 수없는 부분인 듯 합니다. 한국인, 혹은 영국인이 아닌, 배태한 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던 분석능력, 그리고 교육철학 나름의 브랜드가치가 웨스트햄과 잘 맞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 영국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은? 


"사실 영국 내에서는 힘들었던 점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힘들었어도 축구를 공부하고 또 축구 안에서 일을 한다는 건 매일이 행복이었죠. 또한 날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즐거웠습니다. 오히려 영국에서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좋지 못한 소식들을 접할 때,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습니다. 특히 지난 2014년, 잊어서는 안 될 사건이 발생했을 때, 당시 영국에서 살고 있던 저는 제가 도울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또한 청춘FC 라는 방송을 통해 분석관으로 일을 할 때 여러가지 이유로 축구를 포기해야했던 친구들과 함께 대화하고, 또 운동할 때 제가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던 점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한국에 들어오고 난 이후, 축구 교육방법 등 교육적인 부분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사실 그런 사회문제들이 제게 끼친 영향 때문이기도 합니다." 


- 국내 유소년 선수들과 영국의 유소년 선수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우리나라의 유소년 선수들은 볼을 다룰 줄 아는 능력, 즉 테크닉적인 부분에서는 유럽 국가들에게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수준급입니다. 해외 코치들이 한국 유소년 선수들을 볼 때 "한국에 메시가 나올 것이다" 라는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축구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을 보았을 때 창의력을 발현하는 부분은 영국선수들이 훨씬 우세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축구는 볼을 다루는 사람, 볼, 상대편 그리고 상황이 공간과 움직임으로 이해되는 스포츠인데, 우리선수들의 경우 여러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창의성이 드러나기 힘든 환경과 창의성이 발현되기 힘든 교육법으로 육성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현재 많은 팀의 코칭스태프가 이 부분을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고, 또 대한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에서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저역시도 협회, 연맹과 함께 프로젝트, 제안서 또 선수 및 지도자 교육을 하며 한국축구문화를 바꾸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국내에는 유소년 선수들을 비인격적으로 대해 논란이 되는 감독들이 있는데 영국에도 그런 감독들이 있나요?


 "완전히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죠.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프로유스 산하의 클럽 내에서는 그런 코치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 가끔 sns를 통해서 스포츠 언론계를 강하게 비판하는 글을 올리는데 그 이유와 앞으로 한국 축구 언론이 가야할 올바른 방향은 무엇인가요?

"사실 저는 언론계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릴 자격은 없지만, 감히 제가 이야기를 하자면 최근 한국 축구계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에 대한 근거없는 무조건적인 비판과 맹목적인 비난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명확한 자료와 논리, 근거들로 구성된 비판은 당연히 한국축구발전을 위해 필요합니다. 또 비판할 수 있어야 더 건강한 사회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이승우 선수에 대한 후전드기사, 신태용 감독과 김주영 선수의 관계에 대한 허구성 이야기 등 사실 아쉬운 글들이 많습니다. 많은 축구팬들이 기사를 통해 축구를 접하기 때문에, 언론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고 그런 의미에서 몇 차례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일인 미디어의 시대인 만큼, 저 역시도 항상 조심하고 또 제 자신을 경계해야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국에서 선수가 아닌 축구계의 다양한 직업을 가지려면 우수한 학력을 필요로 하는데, 이로인해 능력을 발산하지 못하는 이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쉽고 많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학교 특강을 할 때면, 정말 많은 학생들이 축구계에서 일을 하고 싶어 하는데, 우리나라의 축구산업 규모라던지 환경이 이 모두를 받아 줄 수 없다는 것이 아쉽고 미안하기만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현장에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면, 일단 도전해보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에서 부딪히게 되는 많은 힘든점들이 있겠지만 직접 경험해보지 않는다면 알지 못하는 부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것은 우수한 학력보다는 축구 안에서의 다양한 경험이거든요. 이를 위해서는 도전하고, 혁신하고, 또 다시 도전하는 강한 그릿이 필요합니다. 그런 과정속에서 자신의 장점과 강점을 파악하고 이를 갈고 닦아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 필요가 있어요. 이게 지금 21세기에 필요한 인재이기도하구요." 



- 한국에 돌아온 이후 유독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전해주고자 하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앞서 언급했듯이 지난 2014년, 우리나라에 큰 아픔이 있었습니다. 저는 세월호가 우리 한국사회가 가진 다양한 문제들을 한꺼번에 보여준 아픔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건 당시 학생들과 함께 있던 어른들은 학생들에게 그저 가만히 기다리라는 말만 했다고 합니다. “가만히 있으라” 라는 이말이 아직도 아픕니다. 제게는 이 한 문장이 너무 아픕니다. 한국에 돌아온 뒤, 학생 분들을 만나고 청소년 분들과 멘토링, 강연을 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가만히 있지 말라고, 왜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지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꿈이 있는 사람의 꿈이 되는 것이 제 꿈이고, 또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이 제 꿈인데요. 제가 가졌던 꿈들처럼, 더 많은 아이들이 꿈을 품고 그 속에서 한국 사회, 한국 축구가 성장 할 수 있었으면 하는것이 제가 강의를 하는 주된 이유입니다." 

- 사실 한국인으로서는 흔하지 않은 경험을 하셨습니다. 분석관님을 지금까지 이끌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저보다 뛰어난 분들도 많이 계시죠. 그렇기 때문에 그 분들께 어떻게라도 보답해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컸고, 비록 부유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든든하게 지원해주셨던 부모님의 역할 역시 컸던 것 같습니다. 저는 능력에 비해 받은게 많은 사람입니다. 한국 영국에서도 많은 분들이 직간접적으로 응원하고 또 격려해주시고 또 도와주셨고, 이제는 그걸 다시 돌려 드려야한다는 마음이 큽니다." 



-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꿈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유소년 선수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고 싶은 선수가 되고 싶다면 자기주도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있어야합니다. 남들이 지시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는 자신만의 플레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자신이 뛰는 이유를 계속해서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좋은 질문들이 더 나은 나를 만들고 나를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창의성이 결국은 화두입니다. 그리고 그 창의성은 자기주도적인 노력, 태도, 적극적인 의지에서 기인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플레이를 끊임없이 분석하고 공부하고 또 분석한 내용들을 토대로 깊이있게 동료, 코치선생님들과 대화하고 토의하다보면 분명히 좋은 사람으로 또 좋은 선수로 성장할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영국에서의 꿈을 모두 이루지 못한채 돌아온 그이지만, 귀국 이후 또다른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그의 인생은 어쩌면 이제 시작일 수도 있다.

누구보다 겸손할 줄 알며, 누구보다 축구를 볼 줄 아는 그였기에 한국인으로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일들도 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더 다양한 곳을 돌아다니면서 청소년들의 꿈을 찾아주기 위해 열심히 활동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그를 모든 이들이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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