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말있어요

일제의 식민지 통치 방식과 고대 아시리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통치방식 비교

서삼릉 태실에 나타난 일제의 우리 민족정기의 유린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서삼릉(사적 제200호) 내 태실집장지는 일제가 우리 문화재를 파괴했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곳이다. 태실은 왕족의 태를 항아리에 담아 보관해 둔 곳이다. 그런데 이곳은 일제에 의해 민족의 정기가 유린당한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태실비의 뒷면은 일본 강점기에 있던 기록을 해방 후 지운 자국이 남아있고 일부는 한국 전쟁 때 포탄을 맞아 파손되었다. 일제는 우리의 전통적 태실 조성 방식을 무시한 채 태함(화강석 재질의 관으로 태항아리를 보관)을 시멘트로 바꾸고 태실 주변을 날 일자형으로 담을 둘러 민족 정기를 말살하려 했다. 또 문종, 세조, 성종 등의 백자 태 항아리 10여 점과 태조 등의 태실 봉안 기록이 담긴 태지석 17점을 빼돌리고 조잡한 일본강점기의 물건으로 바꾸는 등 전통문화 파괴를 시도했다. 그나마 1996년 문화재연구소가 철제 담을 없애는 등 왜색이 짙은 태실을 정비했다. - 일간 경기 2017.08.13


 
식민지의 왕실과 전통을 유린하는 일제의 통치 방식을 보며 고대 서아시아의 역사가 떠올랐다. 아시리아와 페르시아의 통치방식 말이다.

<아시리아>

수사, 훌륭하고 성스러운 도시…… 나는 정복하였다. 나는 이 궁전에 들어갔고, 나는 금은보화를 넣어둔 그들의 보물창고를 열었다. …… 나는 엘람의 사원을 파멸로 몰아넣었다. 나는 그들의 신들과 여신들을 바람에 날려버렸다. 나는 그들의 조상과 옛 왕의 무덤을 짓밟았고, 무덤에 햇빛이 들게 하였으며, 그들의 뼈를 꺼내어 아슈르의 영토로 가져갔다. - 마지막 왕인 이슈르바니팔이 엘람 왕국을 정복하고 새긴 문자 –


<아케메네스 왕조>

내가 호의를 가지고 바빌론에 입성하였을 때, 환호와 축복 속에서 그 궁전에 왕좌를 마련하였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수메르와 아카드 땅을 공포로 몰고 가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바빌론의 요구를 언제나 경청하였고, …… 바빌론 시민의 온당치 못한 멍에를 벗겨 주었으며, 황폐해진 그들의 거처를 다시 마련해주었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키루스 왕이 바빌론을 정복한 사실을 기록한 문자판-


아시리아는 정복지 주민을 가혹하게 다스렸다. 이 때문에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메디아와 칼데아(신바빌로니아)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였다. 반면, 페르시아는 다른 민족의 문화와 종교, 언어를 존중하는 등 피정복민에 대해 포용 청책을 펼쳤기 때문에 오랫동안 번영할 수 있었고, 또 정복지의 다양한 문화와 재능, 자원 드을 활용하여 국제적 문화를 발전시켰다.


한 나라가 힘이 세다는 이유로 다른 약소국을 점령한다는 것은 도의적으로는 옳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세계사 속에서 비일비재하게 있었다. 그러나 통치방식에서 피정복민에 대한 가혹하고 강압적인 통치와 피정복지의 문화를 유린하면서 오래도록 번영하거나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례는 없었던 것 같다. 아시리아와 아케메네스가 서아시아를 지배했던 방식을 비교하는 것으로도 잘 알 수 있다. 따라서 일제의 조선 침략이 아무리 제국주의라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침략이었다 하더라도 그 통치방식에서는 아무런 세계사적 기여나 업적을 남길 수 없었던 아시리아적인 파렴치하고 야만적인 통치방식이었다고 할 것이다.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