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말있어요

'따뜻함'의 정의는?

따뜻함을 해석하는 방법


불과 몇십 년 전, 우리는 ‘세계화’라는 멈출 수 없는 기차에 올라탔다.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네트워크로 실시간 소통을 하고, 1초에도 몇천 개가 넘는 소식들과 뉴스들이 쏟아진다. 그로 인해 우리는 남부럽지 않은 편리함을 얻었지만, 남부러운 ‘따뜻함’을 잃었다. Tuesday with Morrie와 같은 유명한 책들에서도 다뤄졌던 부분인 만큼 여전히 위와 같은 세계화의 어둠은 뜨거운 감자이다. 책의 한 구절이다. “세계 반대편에서 테러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마을 속 수많은 사람의 희생에 관한 가슴 아픈 뉴스를 우리는 고작 아침 커피와 곁들일 안줏거리로 생각한다.” 왜 우린, 왜 그들은, 공감하지 못하는가? 너무나도 많은 소식이 쉴 새 없이 들이닥침에, 우리는 각 뉴스와 소식들에 깊이 생각할 시간이 없다. 이 안타까움은 공감 능력의 상실을 불러일으켰고, 역지사지를 우리 기억 속에서 지위 버리기까지 이르렀다. 오직 자신의 삶 상관없는 일의 아픔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차가운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할까.

따뜻함의 정의는 셀 수 없이 많고도 다양하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따뜻함’은 다르다. 그러나 눈물 없이 차가워진 세상과 대비되는, 내가 생각하는 ‘따뜻함’이란 공감이다. 과연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들에 진심으로 가슴 저려 하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아픔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또, 어쩌다 켠 TV 채널을 돌리며 우연히 보게 된 공익광고를 떠올려보자. 공익광고에 나오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질병과 그들이 처한 상황에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서 바로 전화기를 들고 후원문의를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세계화라는 범위로 처음부터 넓게 들어가서 아직까진 와 닿지 않는 ‘따뜻함’일 수도 있다. 주변을 보자. 지금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해보라. 그 상대가 누구든, 심지어 내가 나와 대화를 할 때에도, 모두가 자신의 말에 공감해 주길 바란다. 누군가가 기뻐할 때, 슬퍼할 때, 화가 났을 때, 어떠한 감정일 때에도 공감하고 마음으로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린 ‘따뜻함’을 몸소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