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인문학 칼럼] 실수를 통해 알게되는 관용의 중요성

 

난 어린 시절부터 똑똑하단 소리를 정말 많이 들었다.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초등학교 수학 문제집을 풀고 오빠의 영어 수업을 몰래 엿들으며 키워나간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영어 연극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학업 외에 운동, 미술, 악기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많은 아이의 부러움을 샀다. 주변 사람들의 지지와 그런 환경 속에서 실감할 수 있는 나의 인기 덕분에 어린 나는 누구보다 자신감이 높았고 항상 큰 업적을 세울 것을 목표로 하며 달려왔다. 그렇게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줄곧 모범생 소리를 듣고 졸업을 한 후 난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교에 재학하기 시작하면서 학원 선생님들과 부모님의 추천으로 특목고와 자사고 등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항상 누구보다 우위에 있기를 원했던 나이기에 언제나 그랬듯 지역 내 특목고 진학을 목표로 하게 된다.


하지만 매사 이렇게 달려오던 나를 멈추게 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때는 중학교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약 3일간의 시험이 치러지고 드디어 마지막 시험을 치는 날이었다. 마지막 날 응시하는 과목은 수학과 도덕으로 누구보다 자신 있었던 과목이기에 약 한 달 반 동안 열심히 노력한 것을 답안지에 나타내기만 하면 2학년 한 학기를 완벽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드디어 시험이 시작되고 빠르게 앞 장 문제들을 풀어나간 후 한 장 한 장 계속해서 풀어나갔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을 더 들여 문제들을 풀어보려 해도 절반 정도의 문제가 도저히 풀리지 않는 것이었다. 시험에 제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난 뒷장 대부분의 문제를 풀지 못한 채 답을 다 찍어 답안지를 제출해야 했고 시험이 끝나자마자 화장실에 달려가서 울었다.


주변 학생들 모두 해당 시험 난도가 매우 높았으며 시험의 학년 평균 점수가 기록적인 수준으로 낮았고 주변 학원가에 근무하시는 거의 모든 선생님이 문제 난이도에 대해 비판했으며 학부모들이 직접 나서서 문제 오류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기도 했다. 그만큼 어려운 시험이었고 문제 오류까지 있을 만큼 깔끔하지 못한 시험이었던 것은 확실하나 내가 유독 절망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나의 계산 실수 때문이다. 모두가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나는 어려웠던 뒤 문제들뿐만이 아닌 쉬운 앞 문제들마저 계산 실수로 오답을 구하여 처참한 원점수를 받게 되었다.


어렸을 적부터 대부분의 학부모는 아이의 연산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시중에 유명한 계산 연습용 문제지를 구입하여 자녀에게 숙제처럼 풀게 시키고,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수업하는 가정방문 학습 혹은 교습소에서도 연산 문제들을 모아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당연히 나 역시 어렸을 적 세 자릿수 곱셈, 나눗셈, 인수분해, 등등 다양한 수학 공식들을 이용한 연산 문제들을 연습하였고 이를 체화시키기 위해 어린 나이에 정말 많은 시간을 들였다. 하지만 그런 내가 다른 것도 아닌 계산 실수로 시험을 망쳤다는 사실이 그 당시 나에게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줄곧 계산 실수했고 학원 선생님에게 정말 많이 야단을 맞았고 학원에서 시험이라도 보는 날이면 고쳐지지 않는 계산 실수 때문에 혼자 울며 집에 가곤 했다.


계산 실수는 수학 시험을 볼 때 풀이 과정을 모두 생각해낼지라도 바른 답을 도출해낼 수 없게 하는 성가신 존재이다. 또 고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더라도 습관이 된 실수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난 그런 계산 실수와 나의 인연을 끊어내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다. 틀린 문제의 계산만 계속해서 연습하고 어느 부분에서 실수했는지 꼼꼼히 살펴보았다.


또 단순히 실수를 고치기 위한 연습에서 머물지 않고 실수하지 않기 위한 방법에 대해 다른 방면으로 고찰해보았다. 나는 문제를 풀 때 매우 빠른 속도로 문제 하나하나를 정성들여 풀어나가는 것이 아닌 마치 게임 속 적을 물리치듯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처럼 해치워 나가려 했다. 그건 비단 문제 풀이에서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매사 성취를 목적으로 그 과정의 의의는 생각하지 않은 채 결과만을 중시하였다. 그런 태도는 좋은 결과를 남길 수 있었음이 사실이나 혹여나 결과가 좋지 않을 땐 나 자신을 갉아먹는 부정적인 사고가 되어 남들은 연연치 않을 일에도 집착하며 완벽함에 대한 강박을 갖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실수가 꼭 나쁜 것은 아니었다. 완벽함에 대한 집착이 지금 나의 명성과 인기를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했으나 내가 아무리 완벽만을 추구하더라도 나는 결코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없었고 오히려 잦은 실수를 하더라도 만족할 수 있는 그런 긍정적인 태도가 더 인간적이고 여유로워 보여 매우 부러웠다. 계산 실수가 내 성적을 낮추기는 하지만 계산 실수 하나로 달라지는 성적이 나의 노력마저 깎아내릴 순 없었고, 내가 진정으로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세심하게 신경 쓰며 침착하게 나아가는 태도가 더 가치 있는 것임을 계산 실수를 고쳐나가며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작은 실수를 하더라도 예전만큼 좌절하지 않는다. 물론 시험 성적은 높을수록 좋다지만 실수를 통해 내가 고쳐 나가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고 학업에서 뿐만이 아닌 나와 관련된 모든 상황과 행위에서 실수는 나를 완벽하지 않아 더 나답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장치가 되어주었다. 우리가 꼭 완벽하게만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상대방이 하는 실수를 보면서 그 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또 그런 실수를 관용하며 마음의 여유도 기를 수 있다. 또 마찬가지로 나의 실수를 발견하며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성찰을 할 수 있고 나에게 관용적인 사람이 되어 낮아진 자존감도 높일 수 있다. 그러니 우리도 실수를 아무렇지 않게 수용하자. 실수를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서로를 좀 더 다정하게 이해할 수 있고 나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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